지난 시간 <독일 비애극의 원천>강독강좌는 "멜랑콜리"에 대해 배웠어요.
멜랑콜리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벤야민은 루터주의자들이 구축한 세계로 먼저 다가갑니다.
이들은 선행을 통한 구원을 거부하고 4가지 원칙, sola christo, sola scriptura, sola fide, sola gratia를 새롭게 원칙으로 내새웁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행동이 일체 가치를 박탈당하고 공허한 세계가 생겨났다고 벤야민은 말합니다.
이 공허한 세계 속의 감정을 멜랑콜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비애극에서의 군주, 음모꾼으로서 신하 등은 멜렌콜리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멜랑콜리는 체액병리학에서나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프로이트까지 병적 대상이거나, 극단적 양극성 등으로 파악되고 있었어요.
고지현 쌤은 프로이트를 예로 들며 멜랑콜리에 접근하는 프로이트와 벤야민의 변별점을 설명해주셨어요.
프로이트는 애도와 멜랑콜리를 구별하면서 애도는 상실에 대한 작업으로 필요한 것, 상실한 것과 정성적으로 결별하게 되는 과정으로 파악했으며
멜랑콜리는 결별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상태, 비정상적인 병리상태로 파악합니다.
하지만 벤야민은 슬픔의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하지 않으며 멜랑콜리의 양극성 그대로로 접근합니다.
그 양극단 속에서 숭고한, 영웅적인 멜랑콜리와 일상적, 해로운 멜랑콜리를 분리해내는 것이 요구되는데
이를 벤야민은 "햄릿"에서 찾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 잠깐 또 혼란스러웠는데요, 독일 비애극에서 멜랑콜리, 멜렌콜리아를 탐색하던 벤야민이
갑자기 햄릿으로 논의를 방향 전환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강의 말미에 "그[햄릿]의 삶은 본보기로 놓인 비애의 대상으로서 사멸되기 전에 기독교적인 섭리를 지시한다"는 부분을 쌤이 자세히 설명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계시"는 정치적 선언과 같다는 선생님 말이 알듯, 말듯 아직 잘 잡히지가 않네요.
저는 이번 강독강좌에서 요 부분만은 잘 정리해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리 될른지는ㅠㅠ
벤야민님이 조금만 더 쉽게 글을 써 주셨더라면!!
우선은 쌤의 설명을 잘 따라가보아야 겠어요^^
독일 비애극에서 햄릿으로 전환하는 것은 햄릿이 독일 비애극보다 우월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햄릿이 '기독교 정신 속"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멜랑콜리를 극복" 했다는 코멘트가 바로 그러한데, 역으로 독일 비애극은 멜랑콜리를 빠져 나오지 못하고 광기에 빠지는 결말이 주를 이루지요. 칼 슈미트는 햄릿이 '신의 은총의 구경꾼'이라는 벤야민의 견해에 매우 혼란스러워 합니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신학적 정치를 지향하는 그로서는 신의 섭리를 내려다보는 비(애)극의 주인공이란 상상하기 어려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