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개강한 이진경 선생님의 고전소설 강의에서는
기존의 국문학에서 연구하던 방식과는 다른 독해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 문학, 그 중에서도 고전문학은 당대 사회의 반영이라는 도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강의는 문학이란 "통념적인 것과 그에 반하는 것", "익숙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다시 말해 "서로 상반되고 상충되는 성분들이 공존"하는 것이라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문학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한다면 그 다음에 와야할 것은 고전소설을 읽으며 기존과는 다른 절단면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인륜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선시대의 작품들을 '반인륜적'으로 읽는 실험이 시작된 것이죠.
이러한 문제의식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강의에서는 <심청전>과 <콩쥐팥쥐>을 주로 살펴 보았습니다.
2. 우선 <심청전>을 다루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장님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임당수에 몸을 던지는 것이 과연 '효'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논의는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심청이의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당대 사회가 강요했던 '효'라는 가치를 과잉 준수함으로써 오히려 그 폭압적 질서에 균열 가하는 심청이의 모습을 그려냈죠.
전 폭력적 명령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 낳은 실질적 효과는 "명령의 지고함이 아니라 황당함"이라는 분석과
심청이가 빠진 바다를 "끊임없는 변화의 공간", 심청이가 스스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심연'이라는 분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논리적 흐름 속에서 이제 심청이는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바친 효녀가 아니라 심연을 경험하고 새로운 탄생을 맞이하는 인물이 되고,
그 후 심청이가 만들어내는 것은 "강력한 탈영토화의 벡터"가 됩니다.
3. 다음으로 이야기된 작품은 <콩쥐팥쥐>였습니다.
1강에서 계속 강조된 내용은 '내재적 독해'의 중요성이었습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내재적 독해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항, 자리나 행동이 그 바깥에 있는 상징적 의미가 작가가 부여한 의미가 아니라,
그 텍스트 안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이나 항, 자리, 행동 등에 의해 그 의미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내재적 독해'를 기본틀로 하여 <콩쥐팥쥐>를 다시 읽을 때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콩쥐가 풀어야 하는 세 가지 과제 부분입니다.
콩쥐는 (1) 집에서 먼 밭을 나무 호미로 매기, (2) 깨진 물독에 물을 채우기, (3) 베를 짜고 쌀을 만들기의 과제를 수행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콩쥐가 이 과정에서 동물들과 연대하여 오롯한 주체로 형성되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과제를 완수한 후에 집 밖, 즉 외가의 잔치에 갈 수 있는 옷과 신발을 얻는다는 점이에요.
그러나 콩쥐는 옷과 신발로 대변되는 탈영토화의 능력을 얻지만 다시 불모지인 집으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합니다.
4. 선생님께서는 문학은 작가의 사상을 담고 있다는 표현론적 관점, 문학은 그 작품이 창작된 시대와 문화의 거울이라는 반영론적 관점,
그리고 구도에 작품들을 끼워맞추는 유비적 관점과 고전소설을 분석하면서 현대의 이론들을 성급하게 끼워맞추는 방법 등을
'초월적 독해'라 부르고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셨습니다. 그리고 내재적 독해의 필요성을 역설하셨죠.
그러나 최고의 창작방법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고 믿는 저는...
아직까지 '당대성'이나 '당사자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은 존재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은 늘 바뀌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생각들이 남은 강의들을 들으며 바뀔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전 <변강쇠가>를 마저 읽어야 해서
그럼 이만 총총.
내일 뵙겠습니다.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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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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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최고의 창작방법론이 새빨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니....
이거야말로 당대성 아닌 반시대성의 증거 아닐까?
그렇다면, 당대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그렇지 않다는 말로 스스로 증명하는 역설을 예시하려는 셈이겠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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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
그렇게 되나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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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덧붙이면,
심청전에서 또 하나 중요한 건,
임당수에 빠진 심청이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연꽃 속에서 내다보곤 밖이 자신이 빠진 임당수임을 알았으니
연꽃을 건진 이들이, 자신을 샀던 배꾼들임을 알았을 텐데,
그리고 자기가 떠난 뒤 눈먼 부친 어이할꼬를 그리 걱정했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게 당연했을 텐데....콩쥐팥쥐는 세계 곳곳에 있다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비슷해 보이지만
거기 없는 결정적 뒷부분이 있어서
앞의 모든 것을 다른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슴다.또 숙향전과 바리공주 무가가 비슷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는
어느 연구자의 생각은 지지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했죠.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바리공주와
도적들의 전란 통에 할 수 없이 부모를 잃은 숙향이
'아버지 박해'라는 점에서 같다고 하긴 어렵고
(금방울전에선 아들 해룡이 전란 통에 똑같이 부모를 잃죠).
바리공주에선 마지막의 구약여정이 없으면 서사가 성립되지 않는데
숙향전에서 마지막의 구양여정은 없어도 별 문제가 없죠.
(한자활자본에선 아예 그걸 없애버렸죠.)음...이런 강의 안들은 이라면 이거 뭔 소린가 싶을 얘기를 하고 있네요.-.-;;
요즘 머리 속에 그런 거 밖에 없어서리...죄송함다, 헤헤헤 -
달팽이
배꼽을 위한 연가 5 김승희 인당수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저는 살아서 시를 짓겠습니다 공양미 삼백 석을 구하지 못하여 당신이 평생 어둡더라도 결코 인당수에 빠지지는 않겠습니다 어머니, 저는 여기 남아 책을 보겠습니다 나비여, 나비여, 애벌레가 나비로 날기 위하여 누에고치를 버리는 것이 죄입니까? 하나의 알이 새가 되기 위하여 껍질을 부수는 것이 죄일까요? 그대신 점자책을 사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점자 읽는 법도 가르쳐 드리지요 우리의 삶은 모두 이와 같습니다 우리들 각자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외국어와 같은 것 어디에도 인당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스스로 눈을 떠야 합니다 @; 십이년 전 쯤 무작정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집에서 뛰쳐나와 미술을 배웠지요. 그 때 이 시를 인용했었지요.^^ 광주비엔날레에서 박영숙사진작가의 연작 "미친년 프로젝트"를 보며 달팽이도 그렇게 살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수유너머N, 끌림있는 많은 강좌와 세미나들 중 요건 ( 어찌보면) 가장 듣고 싶었던 강좌였지요. 어찌됐든 다 읽은 책들이고, 나름 재해석을 했던 책들이 이진경교수님의 새로운 시각으로 부서지는통쾌함을 느껴보고 싶었지요. ᆞ ᆞ ᆞ 염천에 건강하시길 ...! 모 두
와~ 변강쇠가 읽고 계시구나. 나도 읽어야되는데, 아직 안 읽고 이러고 있음요.
열의를 불태워주는 후기군요. 우오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