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협력의 진화론>이 개강했습니다! (우와! 와우! 오 예!)
인문학 연구 공동체인 줄로만 알았던 수유너머n에서 무려 진화론 강의를 하다니?!
물론 수유너머n이 표방하는 바가 제도화된 공부를 넘어서는
횡단적인 공부가 몸에 밴 공동체라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그리고 몇 년 전 생물학 세미나가 굉장히 흥행했었고,
여전히 물리학 세미나는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 의아했던 것도 거짓말이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요 ^^
또한 다른 한편으로 의아했던 건 진화론이라는 단어 앞에 붙은 ‘협력’이라는 수식어였습니다. 진화론이란 ‘경쟁’이란 것을 바로 그 제1원칙으로 삼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환경에 적합한 유전인자를 지닌 개체와 그렇지 않은 개체와 ‘경쟁’해 누구는 살아남지 못하고 누구는 살아남는 것이 ‘진화’이지 않았던가요? 그러나 이 의아함은 금세 풀릴 수 있었습니다.
‘협력’이란 상대방 집단(외집단)과 경쟁하는 내집단에서 벌어지는 것이라고 하면 말이 참 쉽게 될테니까요. 그런데 이런 내집단-외집단의 구분은 사회적 배제를 통해 동일성을 유지하려 하는 근대적 삶의 일상적인 문화 형식, 구조적인 인식의 틀 같은 것 인줄로만 알았는데, 진화론․생물학에서도 이런 점을 다룬다는 게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인류라는 내집단에게 위협을 가하는 뱀이라는 외집단에 대한 배제적 인식이 100만년동안의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후천적인 경험을 통해 각인된 불안과 공포가 유전적으로 전수된다고 설명하는 것이었을까요? 뱀에 대한 어떤 인식은 분명 ‘인식’일 뿐이지만, 그것은 생명에 대한 위협이라는 점은 분명 생명의 본능 전체에 관한 부분이며, 그것이 각인되는 무의식은 정신의 과학에서 인간을 구성하는 두 측면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그것이 인류집단의 100만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무의식의 차원에서 전수되어 왔다는 점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만, 그것과 유전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보니 연결고리에 대한 설명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아 궁금증만 더해지는군요.. ㅠㅠ
이런 궁금증은 이날 강의의 주제였던 ‘포괄적 적합성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었습니다. 포괄적 적합성 이론이 내 유전자와 많이 닮은 유전자를 지닌 개체일수록 더 이타심을 발휘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유전자의 본능을 설명한 이론이라고 했을 때, 상대방의 유전자를 파악하는 그 인식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가 궁금했었습니다. (이에 선생님께 질문도 하곤 했었읍죠.)
저는 처음엔 뭐 무슨 <드래곤볼>에서 베지터가 상대방의 전투력을 한눈에 스캔해서 파악할 때 쓰고 있던 ‘스카우터’ 같은 것이 유전자에 있나 싶었어요 ㅋㅋㅋ
아무튼 이런 질문에 대해 우리의 만세 선생님께서는 “그 점이 포괄적 적합성 이론이 설명해 내지 못하는 부분 중 하나”라고 말씀해 주셔서 저의 궁금증이 근거 없는 공상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 받을 수 있어 좋았었어요 ㅋㅋㅋ
때문에 수업 후반부에는 이런 포괄적 적합성 이론에 대해 도전하려 하는 사람들의 이론을 다루었지요. 이 도전자들은 포괄적 적합성 이론을 빠져나가는 반례를 들기도 하고, 그 이론적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하는 논쟁이 재밌었어요. 역시 구경은 싸움구경이 제맛이었던 거죠 ㅋㅋ
생물학이란 게 실증․실험 위주의 관찰․기록․발견의 학문일 것이다 라는 것이 기존의 저의 인식이었다면, 이들의 논쟁에서 (모든 논쟁에서 발견할 수 있듯) 역시 ‘관점’의 중요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꼼꼼이 요약하지는 못했고 쓰다보니 그냥저냥 생각나는 대로 주절주절 대기만 했네요. 아이쿠 부끄러워라
덧붙여 “기존의 지배적인 이론의 지반 설명→그 이론의 꼼꼼하고 명쾌한 강의→반론 및 논쟁의 소개” 와 같이 진행되는 강의의 전체적인 틀이 정말 입문자 라거나 혹은 다른 전공 사람들 이라거나, 예전에 생물학 세미나를 했었던 사람이라거나, 여전히 생물학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라거나, 머리 식히러 온 사람 같은 사람이라거나, 교양 강의 듣는 느낌으로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 같은 사람이라거나 뭐 그런 사람들 모두에게 포괄적으로 아주 적합한 형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돌아오는 금요일의 강의가 또 기대됩니다 두근두근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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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세
훌륭한 후기 감사합니다^^
친족 인식 가능성 여부는 여전히 많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 기준으로 살펴볼 때, 인간은 냄세나 호칭체계나 외형적 유사성으로 친족을 판단한다고 하는데, 불확실성을 둘러싼 문제가 여전하지 싶습니다.
심리적 형질과 유전자의 관계에 대한 것은, 다음 강좌나 그 다음 강좌 즈음에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네요^^
재밌다고 해주니 힘이 납니다! 고마워요~^^
계속 재미있도록 다른 강사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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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on
그런데 아직도 "역시 구경은 싸움구경이 제맛이쥬" 라는 신자유주의 양아치들의 뒤틀린 감성을 여전히 우려 먹고 있는 사람이 있군여.
구경만 하지 말고 자기 머리로 생각이란 걸 하게 되는 순간 더이상 그런 말은 못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더 바라건대는 제발 자기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런 싸구려 감정의 습한 지하세계를 넘어, 양아 부류들로부터 탈주하여 Kritik과 deconstruction의 유구하고 숭고한 학적 실천 전통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포괄적 적합이론의 취약점을 한눈에 파악했던 상빙군!
역쉬 후기도 훌륭하오.
전에 파이어아벤트 책에서 실재( real) 에 대한 글이 생각나네요...
파이어선생은 실재란 자기가 살고 싶은 세상이라고 말하지 뭡니까! 파이어 만세!!.
과학이 사실에 대한 학문인가? 라는 질문에 내 생각에 아니기도 하고 맞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사실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구성하는 것, 즉 완전히 주관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과학도 역시 스피노자식의 적합한 관념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협력의 관점에서 진화론을 보면, 또 엄청나게 많은 진화의 사실을 별견할 수 있을거고,
경쟁의 관점에서 진화론을 보면 또 마찬가지의 엄청나게 많은 사례를 발견하게 되겠죠.
문제는 나에게 무엇이 좋으냐!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으냐! 그것이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