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사항
지난 강좌를 듣고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었는데 시간 관계상 여의치가 않아 이렇게 질문올립니다~~
1) 공유지는 비극인가 축복인가
중세를 넘어 근대로 넘어오면서 노동자가 대규모로 발생한 이유 중 하나가 공유지의 소멸이라고 하셨는데요. 사유권의 확립/사유권 경계설정이라고 할 수 있는 인클로져 운동이 공동 사용을 없애고 소유로 전환시키면서 공유지가 소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유지는 일반 농민뿐 아니라 여성 등 사회적 약자층들이 공동체 속에서 자기 토지가 없더라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토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공유지는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봅니다.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하면서 공유지는 개인들의 이기심 때문에 자칫 황폐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유지에 대해서 개인 사유권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해 주는 방식 등으로 관리 통제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합니다. 물론 공유지를 국가 관리나 공동체 관리 방안 등도 있지만 공유지 자체를 긍정적인 것으로 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더 나은 인간 삶을 위해 공유지를 확대하고 보존하는 것은 좋은가요 그렇지 않은가요( 비극 대 축복) ? 물론 여기서 공유지는 공공 영역의 확대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유지 축소는 민영화 확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구요 , 공유지 확대가 이상적인 사회 건설의 지침이 될 수도 있는 건가요?
2) 인클로져 운동의 탄생 배경 - 공유지 소멸이 왜 이루어졌는가
강의에 따르면 양모의 수요 급증으로 식량 경작지 대신 양 사육을 위한 목장을 만들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봅니다. 간략히 정리하면 돈벌이가 되니까 사유의식 강화된 것이 원인이라고 정리됩다. 그 전에는 돈벌이가 안 되어서 그랬던 건가요? 그래서 명목적 소유에서 실질적인 소유로 소유 정책이 바뀐건가요 ? 1강 때 이진경 선생님이 기존 귀족층 지배층 사람들은 배포 넓은 사람들로 부르주어지들은 찌질한 사람들로 표현하셨는데요 ... 선생님 말씀대로 지배층의 성향이 변해서 그런건가요?
3) 노예나 농노는 노동자와 무엇이 다른가?
노동자는 노예나 농노와 달리 그 자신의 생산수단의 일부가 아닌 자유인이다. 노예나 농노는 말하는 가축 또는 말하는 도구로 간주되었다.
한편 봉건제 자유농민은 생산수단을 소유했는데요 . 근대 노동자는 자유를 얻은 대신 소유권 확립으로 사유지 청소작업 때문에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고 유리되었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은 모든 생산수단을 빼앗기고 봉건제도가 그나마 제공하던 일체의 생존보장을 박탈당했다는 것입니다.
첫째, 노동자는 노동력 이외에 생산수단이 없는 존재라고 규정됩니다. 노예나 농노는 노동력 이외에 생산수단이 있었나요?
둘째, 그렇다면 노동자 보다는 생산 수단을 보유한 농노나 노예가 더 행복한 존재인가요?
질문이 다소 두서 없었습니다만 다소 궁금했던 점들을 질문해 보았습니다.
2. 건의 사항 - 강의안 배부관련
강의록을 당일 수업시간에 받다보니 저의 경우는 수업 쫒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능하시다면 선생님들이 미리 강의안을 공지란에 올려주시거나 전 강의시간에 배부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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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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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유지의 비극]과 관련해서 생각이 다른데요. 최근에 공유지를 제거해야할 대상이라고 보나요? 공유자원은 제대로 관리될 수 없기에 사유화 해야 한다거나(자본주의적)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는(사회주의적) 오래된 견해에 맞서, 요즘에는 과거 공동체에서 공유자원을 관리하는 방식에서 배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사유화는 특정 개인에게 부가 쏠리는 문제가 발생하고, 국가가 관리하면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 부정부패가 항상 생길 수 밖에 없으니까.
대표적으로 앨리너 오스트롬의 [공유의 비극을 넘어] 가 있겠죠. 이런 연구를 한 사람에게 꽤나 보수적인 학계에서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여했다란 사실이 차라리 '최근'의 경향과 흐름을 보여주는 단서가 아닐까요?
건의사항 관련하여
강의안을 한 주 전에 배부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미 완성된 원고가 있는게 아니라, 강의 시작 전까지 고치고 다듬어서 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강사 선생님들 개개인의 스케줄을 무시하고 일주일 앞 당겨서 원고를 완성해달라고 부탁드리기도 난감합니다^^;;
강의의 모든 내용을 따라가기가 어려우시다면, 강의 시간엔 큰 그림 정도만 어렴풋이 감을 잡은 후에, 집에 가는 길에 원고를 차근차근 읽어보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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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조
네 알겠습니다. 답변 감사드려요~~
질문을 기다릴때는 10초의 긴-침묵을 견뎌야 한다고 이진경샘이 예전에 말씀해주셨는데, 그 10초를 못기다리고 마무리해서 죄송합니다^^
일단 짧게 답변드리고, 모자란 부분은 중간 뒷풀이때 더 이야기 나누도록 하지요
1)
강의때도 말씀드렸지만 공유지(common wealth)를 대체한 것은 소유/소유의 감각이었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이러한 소유와 경쟁의 감각위에서 공유지가 얼마만큼 황폐화될 수 있을까의 문제가 아닐까요?
저는 오히려 공유지의 비극이 아니라 소유의 비극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유지의 확대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나와 사물들간의 common한 관계의 재구성이 관건이 아닐까 합니다.
2)
이진경샘이 부르주아지들이 찌질하다고 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네요^^.
영국의 산업혁명은 경제발전의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과학의 어떤 발명 때문에 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한 결과가 아니라, 봉건제의 저발전 상태에 따른 유럽 지배계급의 타개책이었습니다.
당시 유럽 지배계급이 자신의 이윤의 원천을 다시 창출하려는 폭력적 시도가 인클로저 운동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본원적 축적’ 이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3)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자면 생산수단의 소유여부가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행복은 **순이 아니잖습니까?
암튼, 노예나 농노와 노동자의 차이는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유리와 신분적 자유인데, 노예와 농노의 경우 시대적, 지역적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농노는 생산수단을 점유하고 있고, 노예는 생산수단이 없이 예속된 존재였다고 하는게 통상적인 이해입니다.
어느 시대의 민중들이 더 행복할까. 가령 조선시대의 사람들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을 비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습니다. 맑스라면 조선시대의 삶의 조건들과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삶을 규정짓는 조건들을 규명하는 것, 그리고 다른 시대의 행복과 오늘날의 행복의 ‘가치’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더 의미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