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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아셨나요? 묵은 동물성입니다. 아교풀로 응고시킨 것이랍니다.
그러니까, 숯검정을 개어 놓은 묵의 그 단단한 응고력은,
한 때 대지를 박차고 달렸을 동물들의 팽팽한 근육의 힘으로부터 온 것이죠.
뭐 쫌 느낌이 오지 않습니까?
그 묵을 벼루에 갈아 내는 것은 그 동물의 힘을 서서히 풀어내는 일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붓에 적셔져서 백지를 가로지르는 획은 단지 ‘검은 색’이 아닙니다.
그것은 으르렁거리다 포효하며, 또 때로는 웅얼대기도 하는 어떤 동물의 색입니다.
묵향의 그윽함 속에 깃들어 있는 그 역동적인 잠재력을
이제 꼴랑 2회 만에 백지 위에 살려 낸다는 것은 말도 안되겠죠.
그러나, 선생님은 항상 우리를 고무해주십니다.
그래서, 동물들처럼 일필휘지로 백지 위를 뛰노는 일이 즐겁고 신납니다.
물론, 혼도 납니다.
붓
아셨겠죠? 붓 역시 동물성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첫시간에 붓털에 자신의 가죽을 내준 동물들에게 간단한 조의를 표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같은 마음일 겁니다.
그러나, 붓을 누르고 들고 틀고 꺾고 튕기고 세우는 일들을 하다 보니
조의를 표한 건 어쩌면 동물 쪽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붓은 한 없이 가벼우면서도 또 때로는 무진장 무겁습니다.
그 붓이 나를 휘어잡아서 나아가던 걸음을 멈추게도 하고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어떤 익명의 동물과 만나서 참 알 수 없는 연애를 하는 느낌?
첫 시간에 선생님께서 붓을 애인다루듯이 하라고 하셨는데,
참 맞는 말씀입니다.
저희는 지금 익명의 동물과 연애중입니다.
음, 음각 전서로 단정하게 쓰이어졌군…
체와 법
불과 2회이기는 하지만,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 덕분에
저희는 체와 법의 대강을 주워 들었습니다.
물론, 이제 막 귓동냥을 한 것과 몸에 새겨 자유로이 운용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겠죠.
그러나, 저희는 불과 2회만에 서대문 양꼬치집의 사방 벽면에 걸린 메뉴판과 경구들의 서체를 낱낱이 짚어가며
‘저건 뚱뚱한 해서체네’, ‘저건 마른 전서체이군’, ‘어머, 메뉴판이 초서일세 그려’
라고 말하는 경지까지 되었습니다. 참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쓰는 일만 남았습니다.
체와 법을 운용하는데 있어서 저희는 각자의 문제들과 대면하기도 합니다.
어떤 선생님께서는 ‘묵의 농도’를 화두로 삼고 계시고
어떤 선생님께서는 자체와 여백 사이의 긴장에 몰두하시며
또 어떤 선생님께서는 자체의 살과 뼈를 안배하는 일에 몰두하십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매순간 저마다의 문제와 문득문득 대면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서체와 필법은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지금 가고 있는 길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 거울이었던 셈이죠.
부채
짧은 시간이지만, 저희는 할 건 다 할 겁니다. !
마지막 시간에는 부채 위에 저마다의 글씨를 새기는 일이 남아 있답니다.
어떤 익명의 동물로부터 힘을 풀어 내어서
그것과 뒤섞였던 짧은 기억은
그렇게 8월 염천의 하루를 지탱해 줄 꽤 쓸 만한
물건 하나를 남기게 되겠죠.
그런데 벌써부터,
물과 종이, 그리고 바람으로 이어지는 네 번의 강의를
그리워하게 될 것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아마도, 영자 팔법에서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듯,
매번 다시 시작하는 그 마음으로..
또 다른 기회가 생기게 되겠죠.
결단코, 권해드리는데,
그 때는 놓치지 마세요.
불과 2회만인데 표정들이 이러십니다. 뭔가 해낸….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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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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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naya
ㅎ 맞아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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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말리에
동물이 선물해준 털과 가죽을 삶아 낸 아교 ,
그리고 대지의 나무로부터 얻은 숯과 종이,
이 흐름들과의 연관을 '동물성'으로는 미처 읽지 못하고
그 붓을 잡고 종이 위를 박차고 내리 긁으며 다녔군요.
오늘 종일 굶으며 밀린 일들에, 사람에 살짝 치여 지치고 있었는데,
빠빠나야님의 '붓 사랑'을 읽으니, 감동에 젖어 힘을 얻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는 해서와 행서로 유명한 구양순과 왕희지 등의 세계로
함께 달려가 보아요~~~!
그런데 사실은 첫날 역입과 회봉의 필법을 익히던 시간,
먹을 갈던 여러분들의 모습이 제일 흥겹고 즐거웠습니다.
왜냐구요? 각자의 모르던 성격? 개성이 숨길 수 없이 막 분출했거든요.
모두들 무슨 말인지 아실 거예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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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말리에
애인을 다루듯 살살 꼼꼼이 물에 씻은 붓을, 옷걸이를 활용하여 걸 수 있도록 해주신 빠빠나야님의 솜씨!
그래서 태가이버라는 별칭을 선물해드렸지요.
지금은 새로운 식구로 강의실 귀퉁이를 조용히 굳건하게 자리잡은 붓걸이로 붓들이 총총 이사했지만,
빠빠나야님은 새로운 붓걸이 구상으로 옷핀도 친히 구입해 오시는 열의를 보여주셨습니다.
무더운 날, 피곤한 퇴근길에도 모포 깔고, 벼루 나르고, 종이 펴고, 책상 배열 다시하고, 등등의
궂은 일을 함께 해주시는 최샘과 윤반장님, 그리고 태가이버와 서예반 여러분, 감사합니다.
태샘!역시나 풍류 넘치는 후기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진이 안보이는 건 저한테만 그런 건가요?
혹시 올리시려던 사진이 이런 것들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