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의 제목은 <위안부는 말할 수 없는가? -재현의 윤리와 연대의 정치> 였습니다.

 

저는 이번 강좌로 처음 수유너머를 알게 되었고, 그보다도 위안부 문제에 관해 자발적으로 공부하려고 마음먹은 것 자체가 처음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제가 알고 있던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역사적 사실 혹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이뤄져온 활동 등은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접하는 정도이거나, 평화나비 서포터즈 활동을 하는 친구들에게서 주워듣는 것이 전부였던 셈입니다. 부끄럽게도 거의 사전 예습 없이 수업에 함께하게 됐고, 때문에 제게는 강의의 모든 내용이 하나도 놓칠 것 없는 공부이자 이 다음에 어떤 내용을 찾아보고 무엇을 공부해야할지 알려주는 지표로 다가왔습니다.

 

1강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발화와 그로부터 이루어지는 재현, 재현을 둘러싼 논쟁들에 대해 학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 사건을 두고 논하는 관점과 이에 대한 논쟁들을 살펴보면서, 위안부 피해자라는 하위 주체에 이루어지는 검열들에 대해서도 확인해보았습니다.

 

‘위안부를 ‘소녀’로 재현하는 것이 위안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하고 한국의 가부장적 민족주의가 요구하는 ‘순결한 피해자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고착시킨다는 비판’은 『제국의 위안부』 이후 종종 제기된 의견으로, 저 역시 칼럼이나 SNS 등을 통해 종종 접했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단편적으로 접했던 의견은 일견 타당한 측면을 가지고 있었고, 자극적인 정보가 퍼지기 쉬운 SNS의 특성 상 이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는 페미니즘 의식이 (다소 과격한 방식일지언정) 퍼지고 있던 때라 이 주장이 더욱 힘을 얻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이 주장을 처음 접했을 때 어딘가 맞는 소리인 것 같으면서도 기이한 위화감을 지울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이번 강좌에서 스피박의 「하위주체는 말할 수 없는가」에 대해 소개받고 제가 받았던 위화감의 실체를 본 것 같습니다. 위안부를 ‘소녀’로 재현하는 것이 가부장적 관점의 폭력이라는 의견은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제가 위화감을 느꼈던 지점이었습니다. 강의록 5페이지의 “모든 역사적 기억이 재현이고, 해석이며, 특정한 플롯에 따라 구성된 이야기라고 주장하면서 내세우는 ‘다른 목소리’란, 정형화된 목소리가 하나의 재현인 것만큼이나 또 하나의 재현된 구성물일 뿐이다”라는 부분은 제가 고민하던 문제에 대해 시원한 답을 주는 대목이었습니다.

 

학술자로서의 윤리는 ‘선한 의도’만으로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1강 강좌에서 제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강의 이후 친구와 나눴던 대화 중에도 그 친구가 가장 먼저 한 이야기 역시 "그게 옳아?" 였습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지에 대해 누구의 관점에서 생각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덧) 후기가 많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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