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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칼

승희 님, 이렇게 성실하게 후기를 써주시면 저의 부담은 점점 커져만 가고... ^^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언제 또 제 강좌에 대한 이런 정성어린 후기를 받아볼까 싶네요. 

 

"타자성을 지닌 절대적인 타자로 유지하되, 한국문학장 내부로 불러들일 수 있는 방법"이라... 정말 큰 숙제죠. 이건 문학뿐 아니라, 다른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영원한 고민거리네요. 최근 미술분야에서  역시 이 '타자의 재현' 문제가 논의되는 걸 봤어요. 특히 세월호 이후 엄청난 상실과 고통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가 더 긴급히 부상한 듯합니다. 제가 가장 설득력 있게 들었던 의견은, 역시 '타자 재현의 불완전성/기만성'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재현의 정치이자 미학'인 문화예술은 결국 '끊임없이 재현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재현을 포기한다'는 것은 문화예술의 근본적인 존재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니까요. 

최근 문학계에는 이런 논의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재현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재현에의 공포'란 기실, '세계 해석의 무능 혹은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자 그것을 합리화하는 것이라는 지적... 최근 유행하는 아카이빙식 글쓰기, 혹은 브리콜라주나 모자이크식 소설 처럼 각종 정보와 역사적 사실을 "짜깁기"할 뿐, 세계에 대한 작가의 직접적인 해석을 드러내지 않는 소설들에게 다소 비난조로 그런 비판이 가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비판에는 거의 동의하기 어렵지만, '재현의 무게'가 훨씬 더 엄중한 예술의 과제가 될수록 작가와 비평가들이 '재현의 기율'에 민감해지는 것도 사실인 듯합니다.

 

제 생각도 아직 여기에서 더 멀리 나아가진 못했습니다만, 제가 믿고 있는 것은 '진정으로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재현은 어떠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론적 언사는 '재현'에 대한 견해로서 어떤 의미값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성사와 운동사, 문화사의 구체적인 맥락들과 함께 형성하고 작동하고 변형하는 변인으로서 재현의 문법을 숙고할 때 보다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꼼꼼한 후기 덕분에, 제 사유가 나아가고 멈춘 곳이 어디인지를 좀 더 명료하게 알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오혜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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