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의 여성문학사를 재독해했던 지난 2강에 이어 3강에서는 2000년대 한국문학장에서 이방인이자 동화 및 포섭의 대상으로 그려진 '다문화' 담론에 대해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강의에서는 구체적인 텍스트를 예시로 들어주셔서 한국영화와 한국문학에서 '다문화' 담론이 어떻게 다뤄지고, 양식간의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에 대해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다문화'로 대표되는 이방인을 그릴 때조차 한국문학은 결코 기존의 젠더화된 구조를 포기하지 않는데요. 하층 남성 이주노동자는 성장을 통해 한국 사회의 내부로 편입이 가능한 반면, 여성의 경우 상층여성들이 세계를 전전하며 성적 훼손과 신분적 강등을 겪는 서사를 통해 여성의 타락과 오염을 상징화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후자의 구체적인 텍스트로 오혜진 선생님께서는 <<바리데기>>, <<리진>>, <<덕혜옹주>> 등을 들어주셨습니다.

  나아가 한국영화의 '다문화' 담론에 대해서는 <완득이>와 <마이 리틀 히어로>를 예로 들어 설명해주셨는데요. 한국문학은 '다문화' 담론에 대해 혼혈아, 즉 다문화가정의 2세 문제에 대해 천착하지 않았던 반면 영화의 경우는 대다수가 이 혼혈아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혼혈아의 경우 한국 사회에서 크게 2번의 사례가 있다고 보여지는데 그것은 각각 식민지기 조선사회의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혼혈아와 1950~70년대 미군과 양공주로 불리는 여성 사이의 아프리카계 혼혈아입니다. 이 혼혈아의 표상에 대해 일찍이 다뤘던 작품으로서 전자에는 염상섭의 다양한 단편과, 후자에는 김기덕의 <수취인불명>을 들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다시 한국영화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두 영화 모두 포스터에 어머니가 등장하지 않고, '부재하는 아버지'의 자리가 문제시될 뿐 실제 혼혈아의 문제인 '언어'나 '시민권'에 대한 상상과 질문이 부재하고 무관심하다는 점을 통해 한국영화계 역시 타자를 동화의 대상으로만 그려낸다는 점이 문제적이었는데요. 나아가 두 영화 모두 실제 '다문화' 담론과 관련된 문제인 강간, 폭력, 학대 등에 대해서는 강박적일 정도로 기피한다는 사실을 통해 '다문화'의 실제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다문화'를 포섭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이익만을 취한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또한 젠더적 관점에서 이질적인 것은 언제나 여성에게 할당되며, 이방인인 여성이 한국사회에서 동질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똑같은 이방인 남성보다 높은 수준의 '정상성', 즉 모성과 노동력, 나아가 지성까지 겸비해야 가까스로 그 가능성이 부여된다는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010년대의 한국문학계의 코스모폴리탄적 상상력에 대해 언급해주셨는데요. 백수린, 최은영 등 최근의 작가들은 한국의 외부를 상상할 때 과거 2000년대의 외국인 노동자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 재난을 목격하는 코스모폴리탄적 동시대성을 그려내거나 불확실한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기제로서 그려낸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조선족 작가인 금희의 경우 과거와는 달리 성장, 동화, 비약이 사라진 이방인의 서사를 통해 타자의 재현, 그리고 '환대'의 (불)가능성을 그려내고 있다고 평가하셨는데요. 이는 언제나 온정, 환대, 포섭, 동화의 대상으로만 한국 사회에 편입될 수 있었던 타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과연 내부인은 외부인인 타자와 평등한 소통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이 생격나기 때문입니다.

  이번 강의에서 유난히 인상깊었던 점은, 한국문학장에서 언제나 이방인의 고유성과 타자성을 삭제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그들을 내부로 포섭한다는 분석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는 오랫동안 갖고 있던 생각과 비슷했는데요. 평소 불완전한 논리에 대해 이번 강의를 통해 몇 가지 힌트를 얻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아가 2000년대 '다문화' 담론의 의의로 설명해주신 타자 재현의 윤리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했습니다. '과연 타자를 재현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본질적 한계에 대해서 현재까지도 자주 문제가 되는 것처럼 타자와 재현의 문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신중해야겠지요. 당위적인 말에 지나지 않겠지만 결국 '타자'를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자신이 결코 타자가 될 수 없다는 그 불가능성을 인지함으로써 비로소 생겨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김애란 작가가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이야기했듯, '타자성'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한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고통 그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가까스로 재현가능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타자의 재현'에 있어 그들의 고유성과 타자성을 지닌 절대적인 타자로 유지하되, 한국문학장 내부로 불러들일 수 있는 방법, 2000년대의 축소되고 고립되는 방식의 서사가 아니라 진정으로 한국문학장을 그 외부로 넓힐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지 여쭈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물론 이는 단순히 '다문화' 담론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이방인으로 그려지는 소수자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2시간이 꽉꽉 차있는 수업이었어서 요약하기가 쉽지 않네요. 재현이라는 서사적 장치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에 대해, 그리고 그 이면에 작동하는 다양한 정치적 맥락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부분이 누락되었고 오독한 부분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후기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수강생분들뿐만 아니라 오혜진 선생님께서 직접 준비해주신 다과도 잘 먹었습니다.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도 좋은 강의 기대하겠습니다. ^^

 

+) 덧붙여,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이진경 선생님의 <<서비스 이코노미>>를 빌려 일부분만 읽었는데도 상당히 많은 내용이 담겨있는 책인 듯합니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 승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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