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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24. 사건들 사이의 소통 (탁선경)
 
1. 비논리적 양립 불가능성들의 문제
 
- 스토아적 사유는 기존 인과 관계로부터 단절하고 그 관계는 사건들에, 운명을 따랐어야만 하는 필연성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장해준다. 스토아적 역설은 필연을 부정하고 운명을 긍정하는 것이다. 
 
- 스토아적 역설은 영혼이 두 가지 이유로 자유로운데 완전한 물리적 원인들의 내부성에 도달할 수 있는 이유로, 마음이 어떤 순수한 외부성의 상황에서 효과들 사이에 확립되는 특수한 관계들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 
 
- 사건-효과들은 물리적 원인들과 인과의 관계를 맺거나, 비물질적인 준원인과 인과의 관계를 맺지 않는데. 이는 필연의 관계가 아니라 표현의 관계이다. 
 
“사건들 상호간의 표현적 관계들은 어떤 것들인가?”라는 물음의 제기 :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아닌 비인과적인 상응들의 총체는 메아리, 재개, 공명의 체계, 기호들의 체계를, 필연적 사태를 만들어내는 인과관계가 아닌 표현적인 준-원인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동일성과 모순의 논리. 두 사건은 모순되기 때문에 양립 불가능한 것일까? : 스토아주의자들은 모순이란 하나의 유일한 층위에서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원리 자체와 결과의 부정 사이에서 정의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예: 날이 샌다 해도, 밝아지지 않는다)
모순의 이러한 층위상의 차이가 모순으로 하여금 언제나 다른 본성의 과정으로부터 결과가 있도록 한다.
사건들은 개념들과 같지 않다. 사건들의 양립 불가능성에서 결과하는 것이 개념 안에서 드러나는 모순이지, 그 역은 아니다.
 
질문1) 나비의 예에서 ‘회색이 되다’는 안전성의 증가(나뭇가지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몸을 숨길 수 있음)을 표현하며, 그만큼 ‘검어지다’는 강함의 증가를 표현한다. 이 둘의 일차적인 양립 불가능성의 관계가 있다 -> 이 말은 사건들의 양립 불가능성에서 결과하는 것이 개념 안에서 드러나는 모순이다라는 것의 예인가요?
 
 
2. 라이프니츠 
 
공가능성은 시원적인 방식으로, 전개체적 수준에서, 사건들의 특이성들이 보통점들의 선분들 위에 펼쳐짐으로써 형성하는 계열들의 수렴에 의해 정의되어야 한다. 불공가능성은 그러한 계열들의 발산에 의해 정의되어야 한다. 두 사건은 그들의 특이성들을 둘러싸고 조직되는 계열들이 모든 방향으로 서로 뻗어갈 때 공가능하고, 계열들이 그것을 구성하는 특이성들의 이웃에서 발산할 때 불공가능하다. 수렴과 발산은 비논리적(개념적 모순 관계 이전의)양립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풍부한 영역을 덮는, 그 결과 의미 이론의 본질적인 부분을 형성하는 전적으로 시원적인 관계들이다. 
 
 
3. 적극적 거리와 선언의 긍정적 종합
 
사건들이 신이라는 가설 아래 파악되어 있는 한에서 라이프니츠는 발산 또는 선언에 의해 부정적 사용 또는 배제의 사용을 행한다. 
하지만 순수 사건들 그리고 탈물질적 놀이를 생각할 경우 계열들의 발산 또는 구성 요소들의 선언은 사건들을 양립 불가능하게, 공가능하지 않게 만드는 배제의 부정적 규칙들이기를 그친다.
 
긍정의 대상으로서의 발산 또는 선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무화되거나 극복된 거리로서가 아니라 거리인 한에서의 긍정적 거리라는 관념은 본질적이다. 왜냐하면 그 관념은 차이를 측정할 수 없는 대립/불일치와 동일하게 만들거나, 대립을 어떤 동일성과 동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유한한 차이를 통해서 대립되는 것들을 측정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헤겔이 부정적인 것을 수용하고자 하는 욕망 속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모순으로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 차이인 것이 아니다. 자신에 상응하는 차이를 따르면서 자신의 차이의 본성을 드러내야만 하는 것이 모순인 것이다. 긍정적 거리라는 관념은 위상학과 표면에 속한다. 니체는 어떤 절차의 사례를 제시하는데, 그 절차는, 어떤 상황들에서도 (정신주의나 비탄주의 철학에서 흔히 그런 것처럼) 대립되는 것들의 미지의 동일성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세 종류의 종합
1) 합언적 종합(그리고)은 하나의 유일한 계열의 구성을 가져 온다
2) 연언적 종합(만일…라면, 그러면…)은 수렴하는 계열들의 구성을 가져 온다
3) 선언적 종합은 발산하는 계열들을 배치한다. 
선언은 발산에 의존하기 때문에 연언으로 환원되지 않고 하나의 선언으로 남는다.  그러나 발산은 순수 긍정이 되는 방식(포함적 선언)으로 긍정된다. 일련의 술어들이 한 사물로부터 그 개념적 동일성에 따라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은 자신이 통과하는 무한한 술어들에로 스스로를 개방하며, 동시에 그 중심을, 즉 개념으로서 또는 차이로서의 그 동일성을 상실한다. 술어들의 배제는 사건들 사이의 소통으로 대체된다.
 
질문2) 이 부분은, 어떤 말인지 느낌상으로는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하면 어렵습니다.
⇒ “아담이 죄를 짓는다.”가 아담이라는 개념의 동일성에 따라 ‘죄를 짓지 않는다’라는 술어를 배제하는 것에 해당한다면, “아담이 죄를 짓거나 짓지 않는다”는 아담이라는 사물이 무한한 술어들에로 스스로를 개방하면서 개념으로서의 그 동일성을 상실하는 것에 해당한다.
 
긍정적인 종합적 선언의 과정 : 이 과정은 발산하는 것들로서의 발산하는 계열들을 주파하고 그들의 거리 안에서 공명하게 하는 우발점. 역설적인 심급의 수립에 있다. 하지만 일상적 선언(라이프니츠와 같은 선언의 배제적 사용)은 엄밀하게 말해 하나의 종합이 아니며, 단지 연언적 종합에 봉사하는 규제적인 분석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보통의 선언]은 수렴하지 않는 계열들을 서로 분리시키기 때문이다[배제적 선언]. 선언적 종합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 또한 합언적 종합에의 종속을 향해 나가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 선언적 종합이 수렴하는 계열들을 조직화하되, 자신이 그 수렴하는 계열들을 연속성의 조건으로 연장시키면서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캐럴의 비밀스러운 단어들의 전체적인 의미는 이 경로(배제적 선언의 경로)를 우회했었다. 선언은 하나의 종합이 되었고, 연언은 이미 발산하고, 이질적이며, 불일치하는 계열들을 통합하여 세부적인 것들에 영향을 미쳤으며, 합언은 다수의 분기하는 계열들을 응축시켰다. 
 
 
4. 영겁 회귀, 아이온, 직선
 
심층들의 생성과 표면들의 아이온은 구별해야 한다. 둘 모두 대립되는 것들의 동일성으로, 무한한 동일성 안에서 각각의 사물이 갖게 되는 동일성을 용해시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심층에서 대립되는 것들이 소통하고 각각의 동일성이 부서지고 나누어지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무한한 동일성을 통해서이다. 이것이 각각의 항을 동시에 순간이자 전체인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표면에서는 오로지 부정법적인 사건들만이 전개된다. 
각각의 사건은, 거리의 적극적 특성들, 그리고 그 선언의 긍정적 성격을 통해서만 소통하고 자아는 이 선언 자체와 동일시된다. 이는 이미 반효과화이고 대립자들의 동일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질문3) 부정법적인 사건들이 어떤 건지. 거리의 적극적 특성들과 선언의 긍정적 성격을 통해서만 소통하는 사건은 어떤 것일까요?
 
선언이 종합적이고 긍정적인 가치를 주는 원리에 도달할 때, 자아, 세계, 신은 모든 배제, 연언, 합언을 넘쳐나는 발산하는 계열들 그대로를 위해 하나의 공통의 죽음을 인식한다. 
 
질문4) '공통의 죽음을 인식한다' 선언이 종합적이고 긍정적인 가치를 주는 원리에 도달하는 것이 왜 공통의 죽음을 인식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여기에서의 죽음은 선언을 부정적, 배제적 방법으로 사용함으로써 보장되는 ‘자아, 세계, 신’의 공통의 죽음, 즉 이하에서 설명되는 ‘자아, 세계, 신의 정합성을 배제’를 의미한다. 

 
만일 자아가 명제에 관련해서의 현시의 원리라면, 세계는 지시 작용의 원리이고 신은 기호 작용의 원리이다.
사건-의미는 언제나 자리를 옮기는 역설적인 심급으로서 무의미로부터, 영원히 탈중심화되는 이심적인 중심으로부터 방출되며 자아, 세계, 신의 정합성을 배제할 뿐인 순수 기호이다. 표면의 무의미, 특이성들을 가로지르고 비인칭적이고 전개체적인 것들로서 방출하는 이 우발점은 시원적인 개체성으로서의 신을, 또 인칭으로서의 자아, 자아의 요소이자 신의 피조물로서의 세계를 존속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긍정된 계열들의 발산은 ‘카오스모스’를 형성할 뿐 더 이상 라이프니츠적인 세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우발점은 반자아를 형성할 뿐 더 이상 자아를 형성하지 않는다. 종합으로서 제기된 선언은 악마적인 원리와 그 신학적인 원리를 맞바꾼다. 이것들은 계열들 사이에서, 아이온의 직선, 즉 거리를 긋는 존재이다. 세계의 위대한 카논, 자아의 균열, 신적인 해체. 또한 직선 위에는 보르헤스가 말한 가장 끔찍한 미로로서, 크로노스의 순환적이고 일중심적인 회귀와는 매우 다른 영겁 회귀(더 이상 개체들, 인칭들, 세계들의 영겁 회귀가 아니라 선 위에서 자리 옮기는 순간에 의해 이미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끊임없이 분할되는 순수 사건들의 영겁 회귀)가 놓인다. 이제 모든 대립자들 대신 오로지 대사건이, 대사건만이 존속하며, 대사건은 그 모든 선언들을 가로질러 공명함으로써 그 고유한 거리에 의해 스스로와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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