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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논리_발제] 계열25_일의성

생강 2021.01.21 02:06 조회 수 : 93

개체와 사건

발산이 긍정되는 한, 선언이 적극적 종합(sinthése positive)이 되는 한, 모든 대립적 사건들까지도 서로 양립가능한 것으로, 그리고 ‘서로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양립 불가능함은 두 사건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과 (발산하는 것으로서, 다른 사건을 효과화하는) 세계 또는 개체 사이에 존재한다. 여기에 술어들 사이의 논리적 모순으로 환원되지 않는, 그럼에도 하나의 양립 불가능성, 즉 라이프니츠의 독창적인 규준들을 적용해야 할 익살로서의 양립 불가능성이 있다.

개체와의 차이를 통해 정의한 인칭은, 바로 이 양립 불가능성들이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이들의 얄궂음/아이러니와 더불어 유희하고자 한다.

 

영겁 회귀의 계속

문제는 어떻게 개체가, 논리적 모순들만이 아니라 비논리적 양립 불가능성까지 뛰어넘어 사건들의 보편적 소통, 즉 선언적 종합의 긍정에 도달하기 위해 그의 형식을, 세계와의 그 통사론적 연결을 넘어설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개체는 스스로를 사건으로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효과화되는 사건을 또한 그에게 접붙여진 다른 개체로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개체는 개체들로서의 다른 모든 사건들을 이해하고 원하지 않고서는, 다른 모든 개체들을 사건들로서 표상하지 않고서는, 이 사건을 이해하지도 원하지도 표상하지도 않을 것이다. 각 개체는 특이성들의 응축을 위한 하나의 거울과 같을 것이고, 각 세계는 거울 안에서의 거리와 같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반효과화의 궁극적인 의미이다.

이것은 우연한 경우(cas fortuit)로서의 개체에 대한 니체적인 발견이며, 클로소프스키는 이것을 영겁회귀와의 본질적인 관계에 있어 재포착, 재발견했다.

“격렬한 진동들이 한 개체를 뒤흔들며,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의 중심만을 찾도록 하고, 또 자신이 그 부분을 이루는 원환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 진동들이 그를 뒤흔든다면, 그것은 각각의 진동이 개체가 (사실상 찾을 수 없는) 중심의 관점에 놓인다고 믿는 것과 달리 한 개체성에 응답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하나의 동일성은 본질적으로 우연적이기 때문이며, 개체성들의 한 계열은 (이 개체성 또는 저 개체성의 우연성이 각 진동을 모두 필연적인 것들로 만들고자 한다면) 각 진동에 의해 주파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Klossowski, “La Period turinoise de Nietzsche”)

우리는 대립하는 성질들의 동일성을 긍정하기 위해 이들을 무한으로까지 고양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각각의 사건을, 발생하는 것에 의해 태어나는 개체가 다른 모든 사건들로부터의 거리를 긍정하도록, 또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건들에 함축된 모든 다른 개체들을 통과함으로써 그 거리를 따르고 그와 결합하도록, 나아가 그로부터 새로운 자기자신에 불과한 하나의 유일한 대사건, 우주적 자유를 추출해내도록, 영겁회귀의 잠재력으로 고양시킨다.

영겁회귀는 성질들과 이들의 원환적인 변환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순수사건들과 이들의 선형적인 또는 표면적인 응축에 대한 이론이다. 또한 영겁회귀는 선별적인 의미를 고수하며 하나의 양립 불가능성-정확히, 그것[영겁회귀]이 그것의 구성과 기능작용을 방해하는 형식들과 더불어 제시하는 양립 불가능성-에 연계된 채로 머문다. 각각의 사건을 반(反)효과화함으로써, 행위자-무도자는 다른 모든 사건들과 소통하는 순수사건을 추출해내며, 다른 모든 사건들을 가로질러 그들과 더불어 스스로에게로 돌아온다. 그는 선언을 종합으로서, 즉 선언적인 것 자체를 긍정하고 또 각각의 계열을 다른 계열 내에서 공명하게 만드는 종합으로서 받아들인다.

회색의 나비는 ‘숨다’라는 사건을 확실하게 이해한다. 때문에 그것은 나뭇가지에 달라붙어 같은 자리에 머묾으로써 검은 나비의 ‘강하게 하다’로부터의 모든 거리를 주파하며, 개체로서의 다른 사건을 (그러나 사건으로서, 우연적인 경우로서의 그 고유한 개체 안에서) 공명하게 만든다.

나의 사랑은 거리의 탐구이자, 하나의 긴 주파이다. 다른 세계 그리고 다른 개체에서의 친구에 대한 나의 증오를 긍정하고, 갈라져 가지를 치는 계열들을 서로 공명하게 만드는 주파. 이것은 여전히 대립자들의 동일성에 근거하는 인칭의 낭만주의적 아이러니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익살의 해(解)이다. “당신은 나의 집에 도달한다. 그러나 가능한 하나의 과거에 당신은 나의 적이고, 다른 한 과거에 나의 친구이다...시간은 헤아릴 수 없는 미래들로 항구적으로 갈라진다. 이들 중 하나에서 나는 당신의 적이다...미래는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친구이다...그것[미래]은 나에게서 이제 막 등을 돌렸다. 나는 나의 연발 권총을 준비했다.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 방아쇠를 당긴다.”(Borges, Fictions,『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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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성의 세가지 의미

철학은 존재론과 동일시되지만, 존재론은 존재의 일의성*과 동일시된다. 존재의 일의성은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존재자들은 복수적이고 상이하며, 언제나 하나의 선언적 종합에 의한 생산물들로서 그들 자체 분산적이고 발산하는 존재들이다.

1) 존재의 일의성(uni-vocité)은 존재가 목소리(Voix)라는 것, 존재가 말해진다는 것, 모든 대상의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의미에 있어 말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가 언표되는 대상은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존재가 언표되는 모든 것에 대해 존재는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존재는 극히 다양한 사물들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하나의 유일한 사건(Eventum tantum)으로서, (그것 안에서 분산된 것들로 머무는, 그러나 그들의 선언을 반향하게 만들고 가지치게 만드는) 모든 형식들에 대한 극단적인 형식으로서 도래한다. 존재의 일의성은 선언적 종합의 적극적 사용, 극단의 긍정과 일치한다. 인칭에서의 영겁회귀, 또는 우리가 이미 비물체적인 놀이에 관련해 보았듯이 단 한번의 우연의 긍정, 모든 수(手)를 위한 유일한 던짐, 모든 형식과 모든 경우(fois)를 위한 하나의 유일한 존재, 실존하는 모든 것을 위한 하나의 유일한 심급, 모든 생명체들을 위한 하나의 유일한 환영, 모든 소음과 바다의 모든 물방울들을 위한 하나의 유일한 목소리. 언표된 한에서의 존재의 일의성을 그것이 언표되는 대상의 의사일의성(pseudo-univocite)과 혼동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2)그러나 동시에, 존재(l’Etre)가 어떤 일어남 없이는(sans arriver) 언표되지 않는다면, 존재가 그 안에서 모든 사건들이 소통하는 하나의 유일한 사건이라면, 일의성은 일어나는 것과 언표되는 것을 동시에 가리킬 것이다.

3) 순수 말하기이자 순수사건인 일의성은 언어의 내적인 표면(내속)을 존재의 외적인 표면(열외 존재)과 접촉시킨다. 일의적인 존재는 언어 안에 내속하며 사물들에 부대한다. 능동적이지도 수동적이지도 않은 일의적 존재는 중성적이다. 그것은 그 자체 열외 존재, 즉 현실적인 것, 가능적인 것, 불가능한 것에 공통적인 이 최소존재이다. 하나로서의 모든 사건들의 공허 내에서의 위치, 하나로서의 모든 의미들의 무의미 내에서의 표현인 일의적인 존재는 아이온의 순수형식, 사물들과 명제들을 관계 맺어주는 외재성의 형식이다. (주; 사건의 분석에 있어 ‘공허한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B.Groethuysen, “De quelques aspects du temps”을 보라. “모든 사건은 말하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안에 있다”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가로질러 텅빈 시간의 항구성이 존재한다. 조 부스케의 저작(Les Capitales)이 지니는 심오한 관심은 이미 둔스 스코투스에 대한 성찰을 통해 존재의 일의성에 따른 언어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존재의 일의성은 세 규정성을 띤다. 모든 것을 위한 유일한 사건/ 일어나는 것과 언표되는 것을 위한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무엇/ 불가능한 것, 가능한 것, 현실적인 것을 위한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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