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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논리_발제] 계열21 사건

oracle 2021.01.14 23:26 조회 수 : 139

#조에 부스케 :: 사건으로서 비인칭적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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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운 ‘조에 부스케’                                                                       장 뒤뷔페가 그린 ‘조에 부스케’

 

전쟁의 총상으로 평생 침대에서 지냈던 시인 :: 조에 부스케(Joe Bousquet)는 1897년 프랑스 나르본에서 태어나 1950년 카르카손에서 사망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세에(1916년) 자원입대했는데, 1918년 5월 27일 바이이 전투에서 독일군의 총탄이 척추를 관통해 하반신 불구가 된다. 53세로 사망할 때까지 30여년 남은 생을 카르카손의 자택 침대에 누워지냈다. / 하지만 병상에서 폴 엘뤼아르, 막스 에른스트, 장 폴랑, 루이 아라공, 르네 마그리트, 시몬 베유 그리고 갈리마르 가의 사람들 등 수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 1928년 《작업장》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바람의 약혼녀》(1928), 《정말 어두워선 안 된다》(1932) 등의 시집과 소설 《어느 겨울 저녁의 랑데부》를 발표했다. 1940년 잡지 《남쪽의 노트들》을 창간하고, 《침묵에서 번역된》(1941), 《저녁의 인식》(1945), 《달몰이》(1946)를 발표했다. 

사고accident는 어떻게 사건evenement이 되는가? :: 스무살의 조에 부스케는 부상의 후유증으로 고통에 시달렸고, 아편을 피웠고 자살까지도 기도했다. 불구가 된 자기 몸에 대한 고통과 환멸, 수치, 치욕은 매 순간 왔다. “세계는 내게 적대적이다. 외부로부터 온 총알이, 사고가, 나를 망쳐놓았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자신에 몸에 당도한 사고를 다른 차원의 사건으로 만들어간다. 좁은 방 침대에서 갇혀있는 불구의 몸을 우주를 유영하는 몸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부스러기 몸을 거대한 우주의 별 부스러기로 깨닫는 순간, 그는 그것을 가장 시적인 세계로 증언한다. 보통의 육체와 감각으로는 닿을 수 없는 초현실적인 세계를 자유롭게 떠다니면서 그는 초현실적인 언어들을 생성한다. 사고accident가 사건evenement이 되는 순간.

사건과 비인칭적 죽음 :: 들뢰즈는 조에 부스케의 하반신을 뚫었던 총탄을 '사건 하나가 그의 몸에 당도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를 괴롭히는 참혹한 사고와 불구의 몸이 생성해내는 초현실적인 세계는, 총탄 이전에는 결코 불가능했을 어떤 것들이다. 고통과 상처를 체념하고 인내하는 것(상처에 순응)도, 그것에 저항하고 대결하는 것(상처에 저항)도 아닌, 고통과 상처에 대한 순수긍정. 즉 고통을 다르게 감각하는 것, 고통에 대한 다른 퍼스펙티브! 사고와 불구를 통해 새로운 감각으로 생성된 조에 부스케, 그래서 '총탄을 사건으로 긍정'하는 조에 부스케. 그것은 그의 내부에서 비인칭적인 누군가의 죽음으로 출현한 새로운 인칭이다. 이처럼 '새로운 인격의 출현과정에서 이전의 비인칭적인 누군가의 죽음'을 들뢰즈는 블랑쇼를 따라 '비인칭적 죽음'으로 정의한다. '일상의 누군가' 개인의 인칭적 죽음이 생물학적 죽음이라면, '비인칭적 누군가'의 죽음은 존재론적 죽음이다. 전자가 죽음이라는 존재의 소멸에 멈추는 것이라면, 후자는 존재의 소멸을 새로운 생성의 지점까지 밀어부치는 것, 그래서 죽음을 생성의 재료로 이용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문제는 강도!

황현산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 :: 마비된 육체와 그만큼 확장된 의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저자는 육체에 대한, 정신에 대한, 생명에 대한 질문을 우리가 결코 체험할 수 없는 자리에까지 밀고 간다. 제 사지를 제 사지 속에 잠재워 놓고 있는 그의 감각 앞에서, 사물은 그것이 지닌 가장 시적인 것으로 폭발하면서도 가장 완전한 현실로 그 자리에 놓여 있다. 우리의 멀쩡한 육체와 감각은 그 현실에까지 미치지 못하기에, 저자의 현실은 자주 초현실로 우리에게 감지된다. 실제로 가장 성공한 초현실주의적 기술인 부스케의 《달몰이》는 현실표현의 언어와 초현실의 언어를 연결하여 현실을 초현실의 자리로 끌어가고 초현실을 현실 이편으로 데려옴으로써 초현실주의적 글쓰기의 이해에 매우 신비한 교과서가 된다.

운명애Amor fati :: “나는 우연한 나쁜 경우들을 자기에게 유용하게 만들 줄 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내게 가장 의심스럽고도 가장 위험한 것마저도 내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충분히 강하며, 또 그로 인해 더 강해지는 나이기에, 나는 (*나를 몰락시켰던) 바그너를 내 삶의 큰 은인이라고 부른다.” [이 사람을 보라] 삶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바로 자기 운명을 사랑하는 ‘운명애’로 표현된다. ‘운명에 대한 사랑’은 주어진 숙명에 순응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어떤 경우든지 내 건강의 재료로 이용할 수 있는 능동적 힘과 긍정하는 의지, 즉 운명에 대한 힘에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다른 것을 갖기를 원하거나(운명을 회피), 필연적인 것을 감당하려고 하거나(운명과 대결)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는 것(운명을 사랑)이다. 이러한 운명애는 세계의 모든 존재에 대한 순수긍정으로 확장된다. "존재하는 것에서 빼버릴 것은 하나도 없으며, 없어도 되는 것은 없다!" [이 사람을 보라]

 

[의미의 논리] 계열21_사건  (*주제 :: 사건과 비인칭적 죽음)

"인칭적 사고가 비인칭적 사건으로 변이하는 지점에서, 비인칭적 죽음이 출현한다!" 

"비인칭적 죽음이란, 내 안에서 하나의 인격이 죽고 다른 인격이 출현하는 사건을 말한다. 

 

사건의 영원한 진리

“위기와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든다. 위기와 시련은 그릇을 찌그러뜨리거나 깨뜨린다! 당신은 누구인가?”

조에 부스케는 몸에 새겨진 상처를 영원한 진리에서의 순수사건으로 이해했다. 사건들이 우리에게서 효과화되는 만큼, 사건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열망하며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내 상처는 나 이전에 존재했으며, 나는 그것을 구현하려고 태어났다.” (···) 사건이 우리에게 만들어주는 이 의지에 도달하는 것, (*우리가) 사건의 담지자가 되는 것, (···) 사건은 비인칭적이고 전개체적인 것으로 소유하는 빛나는 중성을 우리에게서 드러낸다.

도덕이 말하려는 것은 오로지 이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가 되지 말라.”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구현한 조에 부스케는 위대한 모럴리스트이다!) 반면, 자신에게서 발생하는 일을 불공정하고 부적격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경우, 일어난 일은 언제나 누군가의 잘못이 된다), 이것이 우리의 상처, 인칭적인 원한, 사건에 대한 원한을 가져온다. (*어떤 것을 나에게 닥친 불행으로 받아들였을 때, 그것은 원한이나 자책을 가져온다.)

그렇다면 사건을 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전쟁을 받아들이고, 상처나 죽음이 일어났을 때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인가? (*이러한) 체험/인내는 여전히 원한의 형상일 수 있다. 사건을 원한다는 것은 사건으로부터 영원한 진리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면, 이 원함(*사건을 원한다는 것, 사건을 의지한다는 것)은 전쟁이 전쟁에 대립하는 지점, 상처가 모든 상처들의 흉터로서 생생하게 그어지는 지점, 죽음이 모든 죽음들에 반해 바람(*의욕ㆍ의지)으로 뒤집힌 죽음이 되는 지점에까지 이른다. 의지적인 변이. (*힘에의 의지는 사고를 사건으로 변이시킨다!)

부스케는 말한다. “나는 의지의 좌절인 죽음(*생물학적 죽음, 인칭적 죽음)에 대한 내 취향을 의지의 신격화인 죽음(*존재론적 죽음, 비인칭적 죽음)에의 바람으로 대체할 것이다.” 이러한 의지의 변화는 유기적 의지를 정신적 의지로 교환하는 것이다. 운명애가 자유로운 인간들의 전투와 하나가 되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모든 사건 안에는 나의 불행이, 또한 그 불행을 말려버리고 의지의 대상으로 만들어 사건을 정점 위에서 효과화되게 만드는 빛남과 파열이 존재한다. 사건의 파열과 빛남은 바로 의미이다. 사건은 사고(발생하는 것)가 아니라,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며) 우리에게 신호하고 우리를 기다리는 순수표현된 것이다. 부스케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그러한 불행의 인간이 되라, 그 완전함과 파열을 구현하는 것을 배우라.” 우리에게 발생하는 것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그래서 그것을 원하고 그로부터 사건을 이끌어내는 것, 그 고유한 사건들의 아들이 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것. (*비인칭적 죽음)

 

사건으로서의 죽음의 두 측면

"비인칭적인 죽음 :: 비현재적 순수사건, 현재의 심연이며 현재없는 시간, 나는 죽지 않고 누군가가 죽는"

사건의 이중적 구조 :: 인칭적인 사건 vs 비인칭적인 사건 > 왜 모든 사건은 페스트, 전쟁, 상처, 죽음 같은 유형들일까? 문제는 사건의 이중적 구조에 있다. 한편에서 사건은 사물의 상태ㆍ개체ㆍ인칭에 의해 사건이 구현되는 효과화의 현재순간(*인칭적 사건)이라면, 다른 한편 그것은 비인칭적이고 전개체적이며 표면효과로만 정의될 뿐 대응하는 어떤 사물의 상태를 갖지 않는(반효과화), 현재를 비켜가는 시제를 갖는 순수사건(*비인칭적 사건)이다. 효과화의 현재적 순간과, 반효과화라고 써야 마땅한 비현재적인 순수사건. "한편으로는 현재화되고 실행되는 사건의 부분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사건의 부분'이 있다."

삶의 이중적 구조 :: 인칭적 현재 vs 비인칭적 순간 > ① (연약한 삶 - 인칭적인 현재) 전자의 경우, 나에게 연약한(비물체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나와의 일정한 관계 안에서 현재가 된 한 점으로 도망치는 것)은 나의 삶이다. ② (거대한 삶 - 비인칭적인 순간) 후자의 경우, 삶과 관련해 연약한 것은 나이며, 삶은 나에게 너무나 거대하다. 거대한 삶은 도처에 그 특이성들을 뿌리며, 나와도 현재로서 규정될 수 있는 한 순간과도 관계맺지 않는다. 단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이미 지나간 과거로 분할되는 비인칭적인 순간과 관계맺을 뿐이다.

상처ㆍ죽음의 양의성 :: 인칭적 죽음(효과화) vs 비인칭적 죽음(반효과화) > 이 양의성이 상처와 죽음의 양의성이라는 것을 블랑쇼만큼 잘 보여준 사람은 없다. 블랑쇼에 따르면 죽음이란 나ㆍ내 몸과 극단적인 관계에 놓이는 것(내 안에서 정초되는 것)이며, 동시에 나와 관계없는 것(비물체적이고 비인칭적인 것이자 그 자체 내에서만 정초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칭적 죽음과 비인칭적 죽음) / 각 사건은 이중적이고, 또 그 이중체 안에서 비인칭적 죽음과도 같다. “죽음은 현재의 심연이며, 현재 없는 시간이다. 내가 죽음과 관계 맺을 수 없는, 내가 그리고 나 자신을 던질 수 없는 시간이다. 왜냐하면 죽음 안에서 나는 죽지 않기 때문에, 나는 죽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죽음에 있어 누군가가(on) 죽는다. 누군가가 죽기를 멈추지 않으며 죽기를 끝내지 않는다.”


사건을 원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건을 의지한다는 것은, 내가 상실되고 죽음마저 상실되어 다른 인칭이 출현하는 비인칭적인 죽음을 원한다는 것!"

이 누군가는 일상적인 진부함의 누군가와 얼마나 다른 것일까. 이 누군가는 비인칭적이고 전개체적인 누군가이며, 순수사건의 누군가이다. (···) 이는 자유로운 인간에게만 참이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인간은 사건 자체를 포착하기 때문이며, 행위자로서 사건의 반효과화를 조작하지 않고서는 효과화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 이 사건은 더 이상 사고에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으며, 개인의 원한뿐 아니라, 사회의 억압까지도 파괴하고 복구시킨다. 독재자가 동맹군들을(노예들과 하인들을) 얻는 것은 원한을 퍼트림으로써다. 오로지 혁명가만이 (사람들을 억압적인 질서에 참여하게 만들고 그 질서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존재로 만드는) 원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 변이가 이루어지는 것은, 죽음이 다시 죽음에 맞서 돌아서는 지점, 죽음의 비인칭성 내가 상실되는 순간만이 아니라 죽음이 그 자체로서 상실되는 순간까지, 그리고 나를 대체하기 위한 가장 특이한 삶이 취하는 형태까지 표식하는 지점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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