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기원 : 국가, 자본주의, 주체’ 강의에 대한 단상
- 제가 오래전 공부했던 것들(한국사회성격논쟁 등)이 대부분 쓸모없게 되었고,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점은 이론 공부에 대한 회의를 갖게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렵고, 나이가 들수록 미래가 더 암울해 보인다는 점은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하여, 다시 강의를 듣거나 책을 사게 되는 것 같습니다.
훌륭한 강사분들의 명강의를 듣고 제대로 후기를 쓰고 싶었지만 시간과 능력이 부족하여
스쳐간 인상과 의문들에 대한 단상들만 간단히 남깁니다.
개론적 성격의 강의라서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강의에 대한 의문만 생각나서, 죄송합니다.
1. 근대성과 자본주의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더 듣고 싶게 만드는 탁월한 강의였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공리계와 멩거의 스폰지 등)이 있었습니다.
수학에서 증명된 이론을 현실 사회에 적용해서 설명할 수도 있지만, 비유해서 제시한 가설이 현실 사회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 책이 생각났고 (교환양식으로 잉여가치를 설명하는 부분은 도무지 동의할 수 없지만),
그 책을 읽으면 강사분들의 가설을 체계적으로 해석 및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노동의 탄생, 자본의 탄생
- 자본과 노동의 탄생에 대한 인클로저 운동과 국가의 폭력(칼뱅주의)의 영향을 과대평가한 것 같았고, 서유럽 이외의 지역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승욱의 ‘자본주의 역사강의’, 조반니 아리기의 ‘장기 20세기’ 책이 생각났습니다.
한편, 제 책상에 아직 읽지 않은 맬서스의 ‘인구론’ 책이 있고,
문득 노동의 탄생과 인구수 변화의 상관관계를 검토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영국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의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인구 증가와 노동자의 탄생 사이에 상관관계는 있어 보이는데,
다음에 인과 관계 여부를 검토해서 주장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3. 규율권력과 주체화
- 강의는 학교 급훈 등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계태엽 오렌지] 작품을 소개하면서 규율권력이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고, 균열이 존재하고 자유(저항)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에서 강의를 마치는 것은 그 다음 이야기를 추론해보면 좀 당황스러운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 작품에서 규율권력의 균열(실패)과 주인공의 자유로운 삶은 타인에 대한 끔찍한 범죄행위의 실행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이 생각났습니다.
한편, 소련은 왜 혁명 후 70년 동안 사회주의적인 규율권력/통치권력/미시권력으로 ‘사회주의적인 인간 주체’를 만들어 내지 못했을까?
1990년 당시 소련 사람들은 대부분 혁명 이후에 소련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고, 혁명 이전 사람들은 대부분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본주의적인 주체들이 인민의 다수가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4. 근대국가와 통치권력
- 탁월하고 재미있는 강의였고, 특히 저는 남한사회에서 매일 평균 40명 정도가 자살하고 있는데, 그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현상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미 오래전에 뒤르켐이 ‘자살론’에 설명했다는 설명을 듣고 놀랐습니다.
한편,
사람들이 각자 자유로운 삶과 행복을 추구하고, 스스로 삶의 비전을 만들어보고 상상력을 발휘한 실험을 해서 만들어 온 세상이
지금의 현실 세상 아닌가요?
마치 지금의 현실 세상은 국가 권력이 만든 세상이고,
사람들이 저항과 자유를 통해 지금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은 의문입니다.
최근 사토 요시유키의 ‘권력과 저항’ 책을 샀고, 책 57쪽 푸코의 “권력이 있는 곳, 거기에는 저항이 있다”라는 문구를 읽었습니다.
‘저항’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냥 권력 작동의 ‘대상’이 거기에 있는 것 아닌지, 저항이라고 표현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5강, 6강은 다음에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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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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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광
안녕하세요 선생님, 조원광입니다^^ 글 남겨주신 걸 좀 늦게 봤네요. 후기 감사합니다. 아마도 제가 남겨주신 의문에 대해 답을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딱히 답을 기대하시진 않으시겠지요. 하지만 의견을 나누어보자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4강에 대해 남겨주신 메모와 아래 추가 메모에 대해 제 생각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우선 지금 세상이 사람들이 각자 자유로운 삶과 행복을 추구한 결과라는 말씀에는 솔직히 동감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의 삶은 생존의 위협에 의해(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죽을지도 몰라!), 어디서 왔는지 애매하지만 그래야만 한다는 신념과 관습에 의해(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지금은 허리띠를 졸라매야지! 납득이 가지 않지만 어른이 하는 말은 일단 참고 들어보자), 객관성을 가장한 표준과 정상에 의해 (내 나이 쯤이면 이 정도 지위는 가져야지. 그러지 못하면 정말 부끄러울거야) 많은 부분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각자 스스로의 삶의 비전을 자유롭게 펼치고 있다면,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살률이 그토록 높을까요? 시장에서의 자유는 주어져 있지만, 자유롭다고 믿고 있는 이면에서 작동하는 미세한 권력이 있다는 주장에 저는 동의하는 편입니다.두 번째로,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푸코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푸코 책을 읽어본지 하도 오래되어서^^;; 푸코의 주장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으나, 일반적인 관점에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설명, 그러니까 서로 다른 지시 사항 혹은 교육 사항들이 혼선을 일으켜 지배적인 규율에 반하는 저항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설명에 대해, 저는 정말 그렇기도 하다고 생각하며 동의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과 같은 현상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푸코 역시 그와 비슷한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푸코는 권력의 총체적이며 일관된 전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오래된 군주제 권력 표상이 가진 한계라고 생각했지요. 대신 도처에 존재하는 권력 효과들이 접합하며 전체적인 효과를 일으킬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것들은 서로 삐걱거리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고 보는데, 그런 면에서 푸코의 기본 입장은 선생님의 생각과 크게 거리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그렇다면 왜 푸코는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고 하는가? 규율에 처하면 그에 저항하는 신비한 반항 정신(?)이라도 생긴다는 말인가? 제 생각에 선생님의 의문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푸코 역시, 저항을 권력 외부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어떤 것이라고 여긴 것은 아닙니다. 언급해주신 요시유키의 책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본 푸코의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라는 언급은 [성의 역사] 제 1권 4장에 나옵니다. 거기서 푸코가 그런 말을 하는 까닭은, 권력의 관계적 속성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아시다시피, 푸코가 보기에 권력은 실체가 아니라 특정한 행사로 존재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 행사 안에는 대상이 있지요. 반대자, 표적, 버팀목, 공략 대상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것들과 다른 것들이(시간표일 수도 있고, 건축 양식일 수도 있고, 그걸 무질서하다고 보는^^;; 걱정 많은 어르신일 수도 있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권력이라 부를 만한 현상이 관찰됩니다. 쉽게 말해, 뺀질거리는 수도사가 없다면 수도원의 시간표가 출현할 일이 없고, 세금이나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하는 신민이 없다면 경찰이나 행정 체계가 소환될 일이 없겠지요. 그렇기에 저항 역시, 어떤 궁극적 정신이나 추상적 흐름으로 존재하기보다, 항상 구체적인 ‘여러 가지’ 저항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다른 것들과 만나면서 역시 무수한 방식의 ‘권력’이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규율’이란 이런 다양한 저항 지점을 제압하기 위해 17세기 무렵부터 유행한 하나의 노하우이자 전술일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말이 그렇게 무리한 주장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별적인 여러 행사에서 통제의 목표이자 교정의 대상이 늘 존재한다는 말일테니까요. 그게 없으면 권력이라는 현상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오히려 그렇기에 저항은 완전히 권력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권력에 특유한 성격을 부여해주기까지 합니다.쓰다보니 길어졌네요. 만약 선생님의 의문이 푸코가 마치 어떻게 해도 제압되지 않는 순수한 저항의 정신 같은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것이라면, 오히려 푸코는 그런 것을 계속해서 경계하려 했던 듯합니다. 반대로 푸코의 이런 주장은 권력에 대한 ‘진정하고 순수한’ 저항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좀 답답한 느낌이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푸코라면, 권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짜 가능하며 지향해야 할 바냐고 묻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 의견이 선생님 의문을 해결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선생님께서 고민을 진전시키시고 답을 찾으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도 좀 더 생각해보고,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이야기 나누시지요. 편한 하루 되십시오. -
보헤미안
게으른 질문에 대하여, 조원광님이 답글을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문제 (현실에 대한 인식) 의 차이는
"사람들이 각자 자유로운 삶과 행복을 추구하고, 각자 스스로 삶의 비전을 자유롭게 펼치면 그 결과는 ?"
조원광님은 지금보다 좋은 사회가 된다고 생각하시고,
저는 지금과 같은 나쁜 사회 (예컨대 자살도 많이 하는 사회) 가 된다고 생각하는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저는 20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각자 자유로운 삶과 행복을 추구하고, 각자 스스로 삶의 비전을 자유롭게 펼친 결과"
21세기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문제는 새로 산 사토 요시유키의 책을 읽은 후에 다시 답변드리고 싶습니다 (언제 읽을 지는 모름 ^^)
빠뜨린 부분 추기하면,
저는 국가의 기원에 관한 여러 저자들의 다양한 글을 정리하지 못하다가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를 읽고 드디어 정리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혹시 안 보셨다면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제6강, '국가 없는 사회' 부분에 대해서도,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가 정리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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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 저항(탈주적인 힘)이라고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
- 규율들이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사람들이 습득하는 규율들 사이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고,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이 먼저 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사람들은 어릴때부터 부모/교사 등으로부터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과 함께 자존감을 배우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삶을 개척하라는 등등의 교육(규율)을 받거나 그런 내용의 책을 공부하고,
친구들과 무엇이 멋있는 행동인지, 자존심을 건 경쟁 또는 교제 등을 하면서
동시에
그와 상충되는 다른 수많은 규율들을 학교/사회/직장 등에서 동시에 습득하기 때문에,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에는 서로 모순되는 규율들이 무질서하게 작동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면 마치 누군가가 규율에 대하여 저항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만약, 학교 등의 교육에 의해 습득된 규율인 '저항하라'는 규율에 따르는 주체가 존재하는 현상을 보고,
권력에 대한 저항의 선차성 등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