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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개념의 성좌 3강 후기

sprezzatura 2023.04.25 11:40 조회 수 : 85

 #1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과거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고등학교 학창시절, 윤리시간에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시대의 철학에 대해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는 시험을 위해서  들은 내용을 달달 외웠다.  시험을 위해서 외워야만 했던 내용들 중에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 스토아주의는 금욕주의라는 메모도 있었다.  실제로 시험에서 그 문항이 나왔고, 나는 외운 것이 나왔다는 것에 효능감을 느끼면서 그것을 정답으로 골랐다.  그런 식으로 쌓인 나의 지식들은 머리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좋은 시험성적을 얻기 위해서 활용했던 그 지식들은 특별히 의심할 계기가 없었으므로 아직까지도 남아있었다. 

 그렇게 배운 수많은 지식으로 점수를 얻고, 그 점수들이 나의 성취도가 되어서 상급학교를 진학하였으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니 사실 별로 손해본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내가 살아온 환경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건축물들에 대해 의심을 하고,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공부'가 내가 기쁨을 주는 '삶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지금 나에게 던진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답은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해주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이번 시간의 강의는 내가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을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 스토아주의는 금욕주의라는 큐브같은, 벽돌같은 지식이 왜 우리에게 조립되어서 전달되었는지 그 맥락을 집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지금 나는 박준영샘이 수업중에 보여주신 하나의 삽화를 출력해서 책상위에 놓고 자세히 보고 있다.  A.A.Long 의 스토아철학에 관한 책에서 가져오신 것이라 하는데, BC 4,5세기의 아테네의 모습을 스케치한 풍경화 같은 삽화이다. (강의를 들은  여러분은 모두 보셨으리라. 그 점에서 우리는 행운아이다.) 이 삽화를 보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내가 그 상황속에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나씩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그들의 사상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것을 공간속에서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서로 끌리는 것들이 모여서 별자리를 이루듯이, 그들은 서로 감응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았다. 그들이 아테네라는 공간의 어디에 자리잡고 살았는지, 그 배치를 보여주는 그림은 지금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모습과 유비관계로 생각해볼 때 더욱 더 생동감있게 살아난다.  이 삽화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잠시 내 식으로 묘사하는 것에 양해를 구한다.

 우선 삽화의 맨 앞에는 플라톤이 세운 아카테미학당이 보인다. ACADEMY의 문을 걸어 들어가는 학생이 있고 교정 안에는 학생들이 나무 그늘아래 벤치에 삼삼오오 앉아 있기도 하고 운동장에 서서 이야리를 나누기도 하고  혼자서  구석진 곳에 앉아서 무언가 먼 곳을 바라보는 학생도 있다. 아카데미 문 뒤에 나서면 넓게 펼쳐진 들판에 EPICURIAN GARDEN이 있다.  에피쿠로스와 그의 제자들이 세운 정원공동체이다. 그 들판옆에 있는 작은 도로를 쭉 따라서 한참을 올라가면 멀리 높은 언덕위의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그 언덕이 보이는 곳 아래에 Agora 광장이 있다. 마치 지금의 광화문 광장위에 보이는 북악산같다.  이 곳이 아테네의 도심이었으리라.  아고라광장의 북쪽의 넓은 중심 대로를 따라서 스토아학파들이 걸어가고 있다. STOA POIKILE라는 곳이다.  (이번에 관심이 생겨서 찾아보니 STOA POIKILE라는 곳은 '여러가지 색의 스토아'라는 뜻으로 가로 36m, 세로 12.5m의 큰 주랑이며 그 주랑에는 그림이 그려져있는 나무판넬이 있었기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주로 그려진 그림은 트로이전투라든지 마라톤전투등 전쟁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Stoa에서 키티온의 제논이 제자들에게 자신의 철학을 가르치면서 스토아학파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스토아학파의 스승들은 제자들과 함께 번화가인 이 곳을  걸으면서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면서 교육을 받았단다. 그 옆의 멀리 대로의 서쪽 끝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LYCEUM이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 학당의 가장 큰 수제자였으나 스승이 자신의 친척에게 아카데미를 물려주자, 그 곳에서 나와서 이 학당을 세웠다는 박준영샘의 여담을 들으니 참 흥미진진했다. 그들의 현실적인 문제의 갈등들이 느껴졌다.  늘  머릿속으로 따로 있는 것처럼 보였던 철학자들의 상황을 오늘날 내가 사는 곳에 비추어서 생각해보니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에피쿠로스는 정원에 공동체를 세우고 사회로부터 떨어져서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산 것 같은데 반해 스토아학파들은 시내 중심가를 활보하면서 공부를 하던 이들이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에피쿠로스는 왜 쾌락주의 철학을 주창했고 스토아철학은 금욕주의라고 도식화했을까.  "이거 시험에 나오니까 꼭 외워라"라는 윤리선생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 같다.

#3  '하나'를 찾고자 한 철학자들의 계보

   하나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즉 숫자의 단위로서의 하나(Unit), 통일성으로서의 하나(Unity)이다. 즉 Unity란 일상의 다양한 감각속의 사물들과 현상속에서 하나의 원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있음'뿐이라 했던 파르메니데스, ~은 무엇인가라고 하며 whatness라는 본질을 묻고 다녔던 소크라테스, 그리고 '형이상학'에서 최초의 체계적인 논증으로 '하나'의 4가지 의미를 분류한 아리스토텔레스, 로마시대의 플로티누스, 하나의 신의 존재철학을 세운 아우구스티누스가 바로 통일성으로서의  '하나'를 찾는 계보를 잇고 있다.   특히 플로티누스는 이 '일자의 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므로 그에 대해 좀 더 정리를 해두려고 한다.

 - 플로티누스: '철학이란 사유불가능한 것을 사유하고자 하는 시도다' . 이 때 사유불가능한 것이 바로 일자 (the One)이다. 그가 말하는 일자는 모든 범주적 존재자들은 넘어서는 '초월자'이다. 그의 사상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영향을 주어 중세 기독교 철학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일자'는 변화불가능하지 않으며 운동하지 않고 단지 존재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자'는 창조를 하지 않는다. 창조를 하면 '일자'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이상 '일자'라고 할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AD 354~430): 플로티누스가 기독교를 경멸한 로마인이었음에도 그의 '일자'철학은  중세시대의 교부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플로티누스의 '일자'의 개념을 빌어와 창조주 유일신의 철학을 세웠다. 그로 인해서 히브리인들의 지역종교인 기독교는 철학적 체계를 지니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creatio ex nihilo). 

      수적으로 하나이면서 끊임없이 존재하며, 통일된 하나의 실체이자 존재 그 자체, 창조주! 

  그로 인해 처음에 우리가 언급한 '하나'의 두가지 의미를 모두 지닌 '신' 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주목하자.  이 통일성으로서의 신은 근대의 주체, '자아동일성'으로  확립된다. 아것이  내가 박준영샘이 첫장에서 언급한 '일자'의 철학자들이 인류에 가져다 준 굉장한 이익들이었나 짐작해본다. (이에 대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4 '여럿'을 사유한 철학자들.   

 - 에피쿠로스: 세계의 가장 단순한 물질적 요소로 '원자'를 상정한 데모크리토스를 따라 그는 원자론의 세계를 깊이 사유했다. 우주의 본성은 물질들(원자들)과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원자의 수는 무한하며, 그들은 허공에서 영원히 운동한다. 어떤 것은 곧장 떨어지지만 어떤 것들은 비스듬히 떨어지고 서로 충돌한다. 이런 비스듬한 편위운동을  '클리니멘'이라 하였는데, 이 '클리나멘'은 어떤 법칙에 따른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것이다. 모든 것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던 점에서 의식과 의지에서 발생하는 '클리나멘'도 있을 것이므로 어떤 사람이 자유롭다는 것은 '클리라멘'의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이 우발성의 원인을 모르는 무지의 상태를 해소하고자 '종교'를 개입시키지 않는다. '하나'로 모든 것을 위탁하는 종교적 사유를 지적인 불성실이나 게으름으로 생각한다. 다만 끊임없이 탐구할 뿐이다.(-->이 때문에 그들은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그다지도 배척당하지 않았을까.)  우연성, 그것이 그에게는 자유이다.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가 '우연성'에 관심을 두었다면, 스토아학파의 주된 관심사는 '운명(Fatum') 다시 말해  필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그들에게 세계는 로고스(logos)의 표현이다. 운명이란 인간사의 결정된 경로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연의 법칙, 다수의 물체들이 운동하는 물리적인 경과이다. 자연은 모든 사물들의 운동과 통일성,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필연적 힘이다. 여기에서 자연과 이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근대인들의 사고와 달리 자연에는 인간의 이성도 포함된다. 필연적 힘은 '하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서 '하나'가 먼저 선행하고 나서 다음에 여럿이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여럿으로서의 하나'로서 여럿이 먼저 생성되고 거기서 '하나'가 나온다는 것이다. 운명이란 여럿의 긍정이다. 매우 현대적인 개념이 아닌가.  또한 이 여럿은 '자기원인'으로 스스로 움직이므로, 이들이 말하는 자연도 우발적이다. 따라서 그들은 당시의 그리스 철학의 보편주의를 비판하려 했다는 점에서 에피쿠로스학파와 다르지 않다. 이것이 그들의  새로운 존재론이다.

물체/비물체/물질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면, 그들에게 물체는 물질(수동)+로고스(능동)이다.  비물체는 '무'라기 보다는 물체성이 희박한 것이다. 그들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무'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비물체는 레크톤, 허공, 공간, 시간을 말한다. 레크톤이란  생소한 용어는 '말해질 수 있는 것, 단어와 같은 것'이라 한다.  이렇게 들어도 다소 애매하게 머리속에 잡히지는 않는데, 그들도 레크톤, 허공(사이-공간), 시간, 공간이 모두 애매한 특성을 가진다고 했다고 한다.  애매하다는 것을 참지 못하고 없애려고 하지 않고 견뎌내는 힘. 나는 그들의 이런 태도를 배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스토아철학 초기의 새로운 존재론에 대한 이해보다는 제정로마시대의 도덕적인 후기 스토아사상가들, 키케로,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상에 치우쳐져서 알려져 있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나 역시 제논보다는 학창시절부터 후기 스토아사상가들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다. 특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실려있지 않았던가.  후기 사상가들의 금욕주의 도덕으로 인해서 기독교와 통하는 점이 있기에 더욱 강조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강의를 통해서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점, 그래서 과거의 '나'의 모습을 불러올 수 있었고, 그 과거의 고정관념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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