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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으로 정화스님의 <법성게> 강의가 지난주에 끝났습니다. 언제 다시 수업을 하시냐고 여쭈어보니 올해 겨울 강좌(아마도 반야심경? 아직 미정)가 있을거라고 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6번의 강의와 6번의 뒷풀이(차담회)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스님과 나누었던 소중했던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어떻게 내 안에 품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으나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말씀들을 그냥 내 삶에 천천히 녹여 보려고 노력하는 수 밖에요. 그래서 올 가을과 겨울 동안엔 꾸준히 스님의 책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마지막 강의 후 뒷풀이 자리때 ‘무외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보시수행의 세번째 덕목으로써, 다른 생명체들로 하여금 두려움[畏] 없이[無] 살 수 있는 생명의 장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施]는 뜻이라고 스님의 책(『마음챙김』p144)에 적혀 있었습니다.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가치 없다고, 보이지도, 인식되지도, 언급조차도 되지 않는 ‘존재들’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이 시대의 긴급함 아니겠냐고, 자리에 함께 하셨던 진경샘께서도 ‘무외시’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라고 했습니다. 뒷풀이 마무리 시점이라 좀 산만한 분위기속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스님께서는 시작도 보시, 마지막도 보시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스님의 목소리가 모기소리만큼 작았지만, 그게 진짜 마지막 수업을 끝낸 스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인 것 같았습니다.

 

‘앎’과 ‘함’은 언제나 일치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기에 예기치 않은 사건들에 의해 앎과 함을 일치시키려는 힘도 커지다가, 그 힘이 임계점을 넘게 되면 (『마음챙김』p110)

 

지난주 폭우속에서 공사장 작업을 하다가 감전(심정지)되어 제가 일하는 응급실로 실려온 조선족 남자 노동자분이 있었습니다. 53세의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왔을테지요. 결국 소생되지 않고 돌아가셨고 그 순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저렇게 한 순간에 종결되는 삶, 죽음에 대해서 심각해지는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뒷풀이때 심각한 표정으로 꺼냈고 그에 진경샘께서 응답을 주셨습니다. 죽음과 관련하여 심각해지면 어느덧 우리들은 다시 통념적인 생각들로 되돌아가게 된다. 삶은 허무한 것 아니냐는 통념으로 돌아가는 위험성이 있다. 삶은 무의미이다. 허무가 아니다. 의미는 구성되는(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로 삶의 본질이 있지 않다. 그렇기에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삶인 것이지, 다른 어떤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뜻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수유너머 13년차 대선배님인 고키님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속세인들은 기대 혹은 희망이 없으면 일상이 무기력해질 수 있다. 스님의 수업 시간에 배운, 기대를 하지 말라. 기대가 고통을 낳는다. 그렇다면 ‘스님 되는 길 빼고’ 기대없이 어떻게 우리들은 일상을 살아갈 수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을 진경샘께서 해주셨는데, 결과에 대한 기대를 가지지 말라는 소리다. 열심히 살아라. 최대한으로. 뭔가를 이루려고도 노력하라. 열심히 산 만큼 그 만큼의 삶의 의미는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떤 결과에 의해 지난 삶이 의미가 있다/없다로 가치 매겨지는 것이 아니다. 결과에 연연해 하지 말고 이 순간을 최대한으로 살아라 라는 말로 이해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업 중에 기억에 남는 스님의 세 가지 말씀이 있는데요.

 

(말씀1)

모든 부처님들이 우리들에게 약속을 했다. 너를 반드시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겠다. 조건이 하나도 없다. 내세에 번뇌의 세계에 살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사람들은 그걸 안 믿는다. 왜 그런가. 깨달은 분들이 하는 약속들을 왜 안 믿는가. 혹시라도 죽고나서 어떻게 될지 걱정되는 분들은 그 분들의 약속들을 철석같이 믿어라. 사는데까지 잘 살다가 갈 때 되면 안녕 하고 가면 된다.

세상을 적시는 보배로운 비가 내리는데 그 보배를 자기 그릇만큼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덕만큼 역량만큼 보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공짜로 주는데도 못 받아 가는 건 자기의 역량이 덕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

 

(말씀2)

구약 레위기를 보면

다음 죄를 범한 사람은 돌로 쳐 죽이세요

1. 갑각류를 먹은 사람을 돌로 쳐 죽이세요

2. 동성애자를 돌로 쳐 죽이세요

3. 혼방을 입은 사람을 돌로 쳐 죽이세요

4. 생리중인 부인과 잠자리한 남편을 돌로 쳐 죽이세요

왜 동성애자만 뭐라하나. 갑각류는? 혼방은? 잠자리한 남편은 왜 안 죽이나? 우리 학교 교육도 이것과 크게 다릅니까? 고시만 패스하면 모든 특혜를 주는 게 당연하다고 모두들 생각하는데 그게 당연한 이유가 있습니까? 공부 잘 했으니까 그만큼 가져도 돼. 위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과연 당연한가?

참 통쾌하고 재미있는 말씀이었습니다. 퀴어퍼레이드에 맞불집회 하는 이들이 주로 성경의 구절을 근거로 들며 반대집회를 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언급하신 내용이었습니다. 살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 관점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빈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만큼 열려 있어야 하겠지요. 빈 마음이란 마음이 텅 빈 것이 아니고 딴 사람의 세계관을 접하고 ‘아 그렇구나’ 그렇게 본 만큼 자기 마음이 비워진것과 마찬가지다 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3)

나는 부모님께 해준 게 없어 라고 다들 그러는데, 한 인간(부모)에게 25년간 살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준 것은 어마어마한 미덕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23세에 출가한 나는 어떻다고 말할 수 있는가.

들판에 정신없이 무성히 핀 잡꽃들이 꼭 장미가 아니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각자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하다. 가치는 결국 분별하는 인간이 매긴 것. 각각의 존재 자체가 이미 소중하다. 뭘 더 하려고 애쓰지 마라. 로 들렸습니다.

 

인터넷도 하지 않으시고 핸드폰도 없어 이 후기를 스님께서 보지 못하시겠지만, 스님의 이번 강의에 대한 감사한 마음에 그만 후기를 적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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