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전에 나희덕 선생님의 '생명'을 주제로 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땐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닌 분이다 생각했었는데 이 번 '여성의 목소리...' 강의에서 만난 나희덕 선생님의 목소리는 참 힘있게 느껴집니다. 에밀리 디킨슨, 뮤리얼 루카이저에 이어 에이드리언 리치까지. 연대와 우정으로 여성 시인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계시기 때문이겠죠?
마흔 살 중반을 넘어서면서 '내가 하는 말 중에 나의 말이 있나?'라는 질문에 갇혀 버렸습니다.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기에 이 질문은 참 곤란하고,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이런 참에 '여성의 목소리...' 강의에서 뮤리얼 루카이저와 에이드리언 리치를 만난 것은 제가 새로 말을 배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유려하지 않아도 나의 말이라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그런 힘 있는 말!(나희덕 선생님께서 '자기 암시의 수행성'에 대해 말씀하셔서 느낌표를 찍어 봅니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삶과 시를 만나면서 커다란 귀를 열고, 눈을 떠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에서 조악한 장비만 갖춘 채 바다 속으로 내려 가는 행위, 두 눈을 뜨고 잠든 익사자의 얼굴과 참변을 당한 갈비뼈를 응시하는 행위에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을 안고 수 많은 문턱을 넘었을 에이드리언 리치가 내 손을 끌고 난파선의 익사자들, 남성 권력에, 자본 권력에, 모든 폭력에 강간 당한 존재들 곁에 데려다 놓은 것입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커다란 귀를 열고, 그들의 얼굴에 눈을 뜰 시간입니다. 다시 말을 배울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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