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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인간 행위자는 무엇과 관계하고, 무엇을 선택하고, 그리고 인간은 무엇을 주체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행하고 있을까.

‘주체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선택’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개 스스로 행위하고 있다고 믿는 ‘능동’안에서도 수많은 사물들과 영향을 주고 받음으로써 ‘수동’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들이 대다수이다. 한 공간에서 한동안 인간과의 마주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장소, 공기, 노트북, 식물, 의자, 고양이 등등….수많은 사물-물질들과 관계한다.  칸트는 물질에서 어떤 생기를 포착하려 했고 베넷은 인간의 의도와 무관한 이 고유한 ‘사물-권력’은 인간의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를 ‘생기적 유물론’이라 하였다. 인간의 관점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사태와 진상들에 대한 부분은 이 비인간들이 대체한다. 이들은 우리가 보는 시선, 지각, 감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인간의 판단과 앎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인간과의 관계는 이 비인간들과 비인간 행위자의 활기 없이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베넷의 주장이고 이로써 관계의 지평은 더 넓어질 수 있다. 

카프카의 소설 <가장의 근심>에 등장한다는 오드라덱은 어원이 러시아어인지 독일어인지도 불분명하고, 어느 해석으로도 이 말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이 애매한 존재이다. 실제로 이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며 그저 납작한 별 모양의 실패처럼 보이고 별 모양 한가운데에 작은 수평봉이 하나 튀어나와 있다는, 모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있기는 하나, 상상해보면 뭔가 서있기는 한데 절름발이처럼 어느 하나에 의지하며 서있는 그런 모양새인듯 하다. 하지만 아무도 이 오드라덱을 본 적은 없는것 같으며 그렇기 때문에 다양하게 상상하고 저마다 해석을 하며, 뭔지 모를 이 사물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기는 한 것 같으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불안하게 한다. 이해할 수 없는데 긍정할 수도 없는 그런 존재.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은 후에도 그것이 남아 돌아다니는 것이 고통스럽다니. 게다가 쏜살같이 움직이고 있어 잡히지도 않는 오드라덱은 참으로 기묘한 사물이다. 그리고 사물이 아닐수도 있겠다.

내게는 두대의 노트북이 있다. 그 중 하나는 10년간 사용하고 있는데 보통의 노트북은 삼사년, 길면 오년이면 수명을 다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노트북은 10년전에 구입을 했고 내년이면 열한살이 된다. 예전에 참으로 기계처럼 나도 이친구도 열심히 일했는데 조금 느려진것 빼고는 무리없이 아직도 쓸만하다. Macbook pro. 이참에 ‘이 매킨토시에 관하여’를 클릭해 버전을 보니 ’10.6.8 Mac os x.’이다. 누군가가 보면 놀랍기도 할만큼 업데이트도 잘 안하고 참 오래쓰네…곱게 잘 관리했나보다 하겠지만 이 노트북은 한 때 정말 화려하게 부지런히 밤새도록 일했던 노트북이다. 생각해보니 내 손으로 산 첫 노트북이다. 그 전엔 IBM 중고 노트북을 사서 그저 텍스트 작업이나 ppt 만드는 정도의 소소한 작업들을 하며 들고 다녔었다. 느리고 아주 서툴게 버벅거리며. 중고였던 탓에 오래쓰지 못했고 디자인 대학원을 진학한 친구가 강력하게 맥북을 사라고 권하는 탓에 정말이지 야심차게 맥북을 구입했다. 처음에 이 세련된 외관이 너무 멋진데다가 신기해서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가 자연스럽게 친구가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깔아 주게 되었고, 또 어느날 공짜로 출판사에서 인디자인을 깔게 되었다. 이 노트북이 없었으면 일하지 못했을텐데 이 친구 때문에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었고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 노트북이 없었으면 안했을, 그리고 못했을 일들을 참 많이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심하게 아날로그인 나는 자연스럽게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떠듬떠듬 사용하게 되었고 어느덧 인디자인까지 작은 모니터에 번갈아 띄워가며 이 노트북이 윙윙 소리를 내며 열이날때까지 일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버벅거림없이 그 많은 일들을 잘 소화해 주었고 몇년전 다른 노트북이 하나 더 생겨서 요즘은 조금 쉬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10년간 큰 고장없이 살아남아 준 것이다.  이 후기를 쓰면서 문득 너무 고맙고 더없이 소중한 마음이 드는데 이런 마음이 생기는 크기만큼이나 오드라덱에 대한 상상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마우리치오 랏짜라토는 기호와 기계를 통해 담론이나 기호계의 복종과 저항의 프레임만큼이나 기계계의 예속 상태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한다. 기계와의 관계에서 예속상태를 깨닫는 것은 기계에 대한 앎으로부터 주체성이 야기되고 그 관계속에서 다른 생각 그리고 그것을 내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기계에 대한 예속이라는 개념은 주체성이 된다는 것이다. 

관점을 바꾸는 것, 개념을 달리해 보는 것. 그것은 그 자체 만으로 관계의 위상을 바꾼다. 하지만 그것이 기계로부터 소외됨, 그리고 기계적 가속주의로부터 밀려나는 주체성에 대해 어느정도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다시 오드라덱으로 돌아와서 죽은 후에도 돌아다닐, 그래서 나를 불안하게 하고 당혹스럽게 하는 오드라덱을 생각해본다. 이 오래된 노트북이 어느날 갑자기 고장나서 이제 다시는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어디선가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어딘가 떠돌아 다닐 자료들 또는 실제로는 완전히 사라졌음에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있을것이라 상상되는 정보들. 이 존재하는지 조차도 인지되지 않는 이것들이 내가 아닌 누군가에 발견되어 어딘가에서 오드라덱처럼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그러다가 불쑥 나를 당황케 하는 상황으로 등장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교환과 사용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린 이해 불가능한 오드라덱’ 으로 이 카프카의 ‘가장의 근심’의 불안이 아닐까 싶다.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 공간 어딘가를 실체도 없이 돌아다니며 검색될 불필요하고 쓸모도 연원도 없이 돌아다니는 무엇인지도 모를 가늠도 안되는 이것들에 대한 찜찜한 오드라덱스러운 상상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기계로부터, 기계와의 관계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또 다시 던질 수 밖에 없다. 그야말로 검색되지 않을 자유, 예측되지 않을 자유, 완전히 사라질 자유는 가능할까. 

기계에 예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계를 알고 배치를 달리하고 다른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지만 다른 누군가의 정보와 자료도 아닌,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정보, 정작 나를 소외시키는 나의 정보와 자료는 10년된 노트북 어딘가에서 노트북이 완전히 눈을 감아도, 그리고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원치않게 존재해 떠돌 수 있는 가능성. 

 

“쓸데없이 나는 그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자문한다. 대관절 그가 죽을 수 있는 걸까? 죽는 것은 모두가 그것에 일종의 목표를, 일종의 행위를 가지며, 거기에 부대껴 마모되는 법이거늘 이것은 오드라덱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훗날 내 아이들과 내 아이들의 아이들의 발 앞에서도 그는 여전히 노끈을 끌며 계단을 굴러 내려갈 것이란 말인가? 그는 명백히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죽은 후까지도 그가 살아있으리라는 상상이 나에게는 거의 고통스러운 것이다._카프카 <가장의 근심>”

 

이것으로부터 과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간의 신체가 고루하다 느껴 자연적인 몸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기 위해 자신의 감각을 다른이와 공유하고, 신체의 부분인 귀를 팔에 이식하는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처럼. 또한 적극적으로 신체를 개조함으로서 사이보그적인 성형의 기계적인 접근과 존재의 드러냄이 주체적인 해방에 이르려는 고민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종이 노트보다도 더 가깝게 내 신체와 밀착하고 관계하는 10년된 노트북에 있는 자료와 사이버 공간 속에서 자유로워질 오드라덱적인 해석과 고민을 해본다. 

‘교환과 사용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렸을 때 가질 수 있는 이해 불가능한 오드라덱, ‘쓸모도, 연원도 알 수 없이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어느날 불쑥 등장하는 타자이면서 그야말로 주인의식 마저 비웃고 뒤흔드는 사물. . 오드라덱은 집안에 불쑥 등장한 타자이면서, 동시에 나의 주인의식 마저 비웃고 뒤흔드는 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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