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와 미래의 기념비들> 4강 늦은 후기

메롱 2018.11.18 01:38 조회 수 : 158

 

첫사랑 맑스에게.......

해안을 껴안고 산허리를 돌아 버스가 달리면 학교에 도착했다. 수평선 위로 태양은 눈부셨고 햇살보다 더 눈부신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난이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며 스스로 채찍질하는 삶을 살아내야 했다. 가난은 죄이다. 노력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은 죄이다. 그런데 옆집 아주머니는 2살배기 다리에 빨랫줄을 동여매어 놓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였으며, 앞집 세탁소 아주머니는 이따금 미쳐서 날뛰다가도 정신이 있는 날에는 방파제에서 해풍을 맞으며 미역을 말렸다. 그런데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히 일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저녁 어둠과 함께 산허리를 돌아 버스를 타고 오면, 해안 주위의 불빛들은 눈물나게 찬란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의 ‘서시’를 읊으며 부끄러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고민했다. 가난이 왜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인가? 나는 왜 가난하다는 이유로 부끄러워해야하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외로움도, 사랑도, 그리움도 다 사치가 되어버린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나였으며, 내 가족이었으며, 내 이웃이었다.

중학교 도덕시간에 맑스를 만났다. 맑스는 지친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난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사회구조적인 모순이다.”라고 위로해주었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고민들의 정체는 흐르는 눈물과 함께 드러났다. 맑스가 나에게 준 선물은 위로를 넘어선 자유였다. 어느 누구보다 맑스를 사랑하였으며, 맑스가 전해 준 감수성은 연민이 되어, 사랑이 되어, 이해가 되어 내 삶을 구성하였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민족에게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을 채택할 것이냐 죽을 것이냐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며, 자기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도입할 것, 즉 부르주아 자체가 될 것을 강요한다. 한 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세계를 창조하는 것! 그렇지 않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개인이 존재하겠는가?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은 무수히 덮쳐오는 공격들을 감내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존재가 가능할까? 낮은 곳, 더 낮은 곳, 그곳에서 연민을 느끼고, 그곳에서 둥지를 틀며, 그곳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자, 그런 멋있는 사람이 존재할까? 존재만으로 세상의 빛이 되며 숨 쉬는 순간순간 꽃향기를 내뿜는 그런 사람이 존재할까? 꽃향기가 대기로 흩어져 붉은 꽃잎을 흩날리게 하는 그런 사람이 존재할까? 삶의 순간을 붉은 향기로, 붉은 꽃잎으로, 붉은 열정으로, 붉은 자유로 물들여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존재할까? 내가 아는 맑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맑스가 말한 혁명은 감수성의 혁명이다. 사회를 바꾸어 노동자의 세상으로 공공재로 돌리려는 정치적 경제적 의미보다, 나의 맑스에게는 섬세한 감수성이 느껴진다. 거대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집단이 놓치고 있는 감수성, 끊임없이 낮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 현재의 시간 속에서 약한 자의 아픔을 보려는 그 감수성이 맑스에게 통찰력을 선물했다. 미래의 징후를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을 선물한 것이다. 맑스를 맴돌고 있는 유령이 있다면 그가 느꼈던 그가 아파했던 그가 고뇌했던 그것! 우리 모두가 감각하고 있으나 부인하고픈 그것. 나를 괴롭히고 있으나 애써 외면했으며, 이 공간에 함께 숨 쉬고 있으나 배제해버린 존재들. 그 존재들이 외치는 소리. 그 소리에 겸허하고 따뜻하게 귀 기울이는 자세. 맑스에게 배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어린 시절 그가 나를 위로하던 손길에서 느껴졌던 그것. 맑스를 사랑하여 삶이 뒤죽박죽 어지럽던 그 순간에도 망령을 놓지 못하고 부여잡고 있었던 이유는 이런 막연하지만 확고한 진실 때문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우리는 진실을 마주할 때는 겸허해지니까. 반대로 겸허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면 그때 내 앞에 진실이 다가 온 것임을 직감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맑스를 사랑했고, 맑스를 사랑하며, 맑스를 사랑할 것이다.

첫사랑 맑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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