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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이어던과 모비딕

리바이어던은 바다의 괴물이다. 히브리어로 그것은 고래를 뜻한다고 한다. 어쩌면 더없이 거대하고 더없이 망망한 바다 그 자체, 

에측불가능하고 통제불가능한 사건의 장으로서 바다 그 자체라고 해야 할 이 괴물의 이름에서 토마스 홉스의 저서를 표상하게 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서로 간에 등가성을 갖게 된 개인들이 각자의 욕망을 추구하게 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라는 최악의 형상으로 상정하고는, 그에 대한 두려움을 빌미 삼아, 누구도 한 적 없는 ‘계약’이나 ‘합의’란 말로 만들어낸 국가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예측불가능한 괴물로서의 리바이어던과 반대편에 있는 괴물이란 점에서 사실 애초의 말에 대한 가장 나쁜 용법이라 해야 할 듯하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국가 이전의 상태를 전쟁이라는 ‘무질서’에 귀속시키고, 그것을 제어하거나 제거하는 질서의 표상을 국가에 부여함으로써 탄생한 것이기에, 

여기서 리바이어던은 ‘질서’를 상징하는 표상이 되어버렸으니까. 더없는 망망하고 예측불가능힌 사건의 장을 표현하던 괴물의 형상이 모든 것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통제하는 국가의 표상에 잡아먹힌 것이다. 

이를 두고 푸코라면 “전쟁의 표상게임”에 의해 실질적인 전쟁이, 전쟁처럼 충돌하고 대결하는 힘들이 잡아먹힌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들뢰즈/가타리라면 전쟁기계의 잠재적 힘이 마술사와 사제들이 사용하는 속임수와 포획의 기술에 잡아먹힌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천의 고원(Mille Plateaux)>). 

단어의 기원을 찾아 <성경>으로 되돌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거대한 고래 모비딕에 매혹되어 대서양, 아니 바다의 감응(affect)을 응결시킨 멜빌의 <모비딕>을 따라가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원시적’ 기원의 표상이 근대적 표상에 포획된 마당에, 다시 기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는 근대적 표상의 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리바이어던에서 거대한 향유고래를 보았던 멜빌은 홉스와 다른 방향으로 리바이어던을 몰고 간다. 바다 그 자체의 무규정적 잠재성을 향해, 정복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으며 예측 또한 할 수 없는 괴물 같은 힘을 향해. 그는 에이허브를 앞세워 존재자들의 규정성을 먹어치우고 존재자의 개체성마저 먹어치우는 존재의 무규정적 힘을 따라 간다. 

삶 전체를 온통 걸고 모비딕의 그 거대한 힘을 따라 가는 존재론적 드라마, 그것은 필경 떨리는 전율 없이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겠지만, 매혹의 힘에 휘말릴 줄 아는 자라면 결코 떨칠 수 없는 유혹임이 분명하다.

바다는 존재론적 장이다. 거대한 파도나 파도라 할 것도 없는 잔물결을 포함해 수많은 물결들이 일어나고 사라져 들어가는 장이다. 존재자들은 자신의 개체성을 잃으며 그 존재의 바다 속으로 사라져 들어간다.

 “거기서 신전들은 열리고 무덤들은 입을 벌려/ 빛나는 파도와 보조를 맞춰 하품을 한다.”(에드거 포, 「바닷속 도시」) 

또한 바다는 모든 개체적 존재가 탄생하고, 예측 못한 사건들이 솟아오르는 장이다. 어디 바다뿐이랴. 바닥없는 심연, 갈라진 틈새, 밀림 같은 거대한 숲처럼 알려지지 않은 힘들의 장, 무규정적 존재의 장은 모두 그렇다. 

바닥없는 계곡과 끝없는 바다
갈라진 틈과 동굴, 타이탄 같은 숲에는
온통 이슬이 떨어져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형체들이 있다
산들은 해변 없는 바닷속으로
영원히 쓰러져 들어가고
쉴 새 없이 솟아오르는 바다는
불타는 하늘로 파도쳐 들어간다.
(에드거 포, 「꿈나라」 부분)

멜빌이 고래에 매혹되었듯, 포는 바다의 어둠에 매혹되었다. 그러나 모비딕을 그저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는 한 마리의 고래, 하나의 존재자라고 해선 안될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불가능한 고래’, 바다 속에 존재하는 거대한 잠재성 그 자체를 표현하는 형상이라고 해야 한다. 모든 개체들을 집어삼키지만 또한 바다 어디서든지 솟구쳐 오르는 사건과도 같은 개체의 출현을 표현하는 형상이다. <모디딕>은 바다의 괴물성 그 자체의 드라마다.

이렇듯 예측불가능한 힘, 규정할 수 없는 힘은 흔히 ‘무질서’라고 불리고, 이 무질서는 통상 ‘악’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모비딕이 악을 상징하는 동물로 해석되는 것은 이런 흔한 통념에 따른 것이다. 존재, 그 무규정성의 어둠은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이 제공하는 빛을 거부하며 거기 있지만, 그것을 악이라곤 할 수 없다. 존재, 그 안에서 예측불가능하게 닥쳐오는 사건이나 통제불가능한 힘은, 종종 재난이나 재앙으로 올 게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악이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만인의 전쟁을 막기 위해 탄생했다는 홉스의 국가에게 이 괴물을 넘겨주기보다는, 그 ‘선한 질서’의 표상으로 이 괴물적 형상을 칠해버리기보다는, 차라리 ‘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가는 것이 더 낫다. 질서와 통제를 행사하는 권력이란 아무리 그럴 듯한 이유를 안고 다가온다 해도, 고래의 야생성, 바다의 야만성이 아니라 그것을 길들이려는 인간들의 ‘간교한 지혜’와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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