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에 관하여
한때 키부츠라는 이스라엘의 공동체이자 운동이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키부츠는 사회주의와 시오니즘이 결합된 자급자족적 농업 공동체로,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기초로 합니다. 그렇지만 요새는 사유화로 인해 예전 같지 않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은 매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변질된 원인은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론되는 이유로는 공업화, 젊은 세대의 이탈, 외국 노동력의 유입, 주변 정세의 변화 등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다 보면 허망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공동체 운동이 참으로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일이라고도 느낍니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외부의 자본주의적 요소의 침입을 허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일을 할 때의 태도를 생각합니다. 비관주의자는 현실은 변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낙관주의자는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신념의 문제이지만 시야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비관주의자에게는 안될 이유만 보이지만 낙관주의자에게는 될 이유만 보입니다.
다행히도 역사를 보면 이루어질 수 없는 꿈들이 가끔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인류가 나는 꿈을 꾼 뒤로 2000여년이 지나야 겨우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평등해질 수 있다는 꿈도 어느 정도는 이루어졌습니다. 역사를 배우면 길게 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저는 맑스가 미래 사회의 설계도를 만들지 않은 점이 이런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완벽주의적이고 현실에 기반한 사고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리라 추측합니다. 설계도를 만들지 않은 것이기는 하지만 못한 것이기도 합니다(시야의 문제!). 이 점에서 맑스보다 덜 똑똑하고 더 무모한, 오웬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맑스와는 또 다른 차원의 위대함과 용기를 봅니다. 새로운 일을 벌이는 사람이 너무 똑똑하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미덕과 의의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도전하고 잘 실패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론가, 비판가만큼이나, 제 생각에는 지금 상황에서 그 이상 중요한 것이 실천가인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자본주의의 대안을 상상할 수 없기에 우리는 현실을 인정합니다. 비록 조악한 시도라도 그만큼 상상의 여지는 더 커질 것입니다. 결론은 단순합니다. 우리에게는 낙관적 태도, 더 나아가 실천가의 덕목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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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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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적 사회주의와 맑스주의
공상적 사회주의(혁명론)는 헤겔변증법(철학), 정치경제학(경제학)과 함께 맑스주의 철학의 기본토대를 이룹니다. 공상적 사회주의는 생시몽-푸리에-오언으로 대표되지만, 산업자본주의의 착취와 폐해가 극심했던 19C 중반 유럽 전체에 걸쳐 다양하게 발견됩니다. 코뮨주의적 운동이 현실적인 힘을 갖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 사회적 배치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이해가 결여되었을 때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은 비현실적 몽상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엥겔스는 생시몽-푸리에-오언의 '공상적 사회주의'와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를 구별합니다. 하지만 이 대립은 과학과 공상ㆍ진리와 허구ㆍ참과 거짓의 대립으로 귀착되었습니다. 이 대립으로 인해 코뮨주의적 문제설정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연속성이나 연관을 파괴하고, 코뮨주의 선구자와 맑스를 연결하려는 모든 시도가 금지되었지요. 헤겔ㆍ리카도와 맑스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것이 지배적이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말이지요. 헤겔 같은 보수주의적 국가철학이나, 리카도 같은 부르주아적 경제학에 대해 보여주는 호의와, 생시몽-푸리에-오언 같은 코뮨주의자들에 대해 보여주는 이러한 적의는 기이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맑스는 코뮨주의 선구자들의 시도들을 중요하게 다루고, 특히 로버트 오언의 교육실험에 주목했습니다. 오언은 “공장제로부터 미래교육의 싹이 나온다”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오언은 스코틀랜드 라나크주에서 한 실험에서 공장시설 복판에 만든 ‘새로운 학교’를 소개합니다. 공동체의 노동자아이들은 2세~5세까지는 공동어린이집 같은 곳에 보육교사와 함께 놀이를 하는데, 이 보육과정의 주된 가르침은 “온 힘을 다해 자기 친구를 행복하게 하라”입니다.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행복을 일치시키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로버트 오언의 사변형 공동체(1825년)의 생활공간 구상도 : 19C 유토피안들은 유토피아를 실재하는 장소로 만들려고 했다. 오언 또한 그런 인물 중 하나인데, 생활과 생산이 결합된 공동체가 사변형 건축물을 넘나들며 만들어졌다. -
이재훈
매우 중요한 지점을 짚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에의 몰입은 자주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정작 중요한 행동을 하는 데에 발목을 잡고는 하니까요. 사실 정직하게 이론을 하는 이상 실천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세상을 바꾸는 데 성공 확률이 높은 행동은 거의 생각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래서 말씀하신 실천가의 낙관적인 태도가 중요할 겁니다. 여기서 반대로 이론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실천을 하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을 동반해야 할 것입니다. 낙관적이고 다소 무모하기도 한 상상력으로 주어진 현실에 맞서려는 이들의 행동은 주어진 조건 안에 갇혀 사고하기 쉬운 이론가들의 시야를 확장해 줄 수 있을 테니까요. 맑스의 이론도 당시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이라는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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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을 할때의 태도의 관점에서 쓰신 후기가 돋보입니다.
오늘 아침 읽은 책에서도 태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동기부여 작가 지글러는 높이뛰기 선수가 높이 뛸수 있는 힘은 근육 자체에 있는게 아니라 매일 성실하게 운동에 임하는 태도에서 키워진다고 하더군요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