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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2강 후기] 고양이 집사라는 말의 당위성

이은임 2022.04.18 05:54 조회 수 : 78

나는 인간사회 속에서 여러 숱한 ‘동물’ 같은 순간을 마주한다. 그리고 또 한편 인간보다 나은 동물에 번번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특히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대해 토론씩이나(이게 과연 토론할 문제인가!) 벌이고 있는 요즘엔 더 그렇다. 그런데, 이런 말과 느낌은 얼핏 참 인간적으로 느껴지지만 여기엔 이미 동물과 인간 존재를 위계서열 속에 배치하는 인간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권력관계가 포함돼 있다. 이런 식으로 이미 오염돼 있는 언어와 사고법을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듣고 싶어서 이 강의를 신청하게 됐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동물권에 대한 담론은 한마디로 ‘무엇이 우리 인간과 같은가’에서 ‘동물은 어떻게 다른가?’로 관점이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같기 ‘때문에’ 동등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존재의 가치와 권리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과정, 그 속에서 인간 행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미에게 버림받았던 길고양이를 데려와 12년을 녀석의 집사로 살아보는 기회를 누렸고, 올 초 아이가 긴 투병 끝에 떠나면서 나에겐 뭔가 큰 숙제가 남겨진 느낌이었다. 슬픔과 동시에 찾아온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남들은 거리에서 일찌감치 죽을 뻔했던 아이가 그만하면 오래 살았고 행복한 생을 누렸다고들 하는데, 그럴수록 이상하게 더 억울해졌다. 도시를 장악해버린 인간의 삶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권리이고, 그 안에서 구조 받은 길고양이는 행복한 묘생인가...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 지구상에서 나 혹은 우리가 부당하게 행사하는 인간의 권리에 대해, 그것이 과연 정당한 권리가 맞는지 묻고 싶었다.    

 

이제 겨우 두 번째인 이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이상하게 매번 뭉클하다. 동물권에 대해 좀더 체계적으로 논리를 세우고, 문제들에 대한 다양한 접근 키워드와 사례를 얻을 수 있던 것도 물론 좋았지만, 그저 여기 계신 강사님의 솔직한 고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질문들이 오가는 그 시간 자체가 조금 감동스러웠다. 떠난 아이를 제대로 애도하는 방식을 찾은 것 같은, 위로를 받았다. 

 

나는 고양이 집사라는 명칭을 좋아한다. 당연히 고양이(혹은 반려동물 외 지구상의 다양한 동물들)가 주인일 수 있는 환경과 조건들이 갖추어지는 것은 비단 고양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데리다의 지적처럼 과연 인간에게도 진짜 그 언어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인간세계에서 상호 소통한다는 의미에서의 언어) 동물 타자를 대변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종과 관계 맺기의 문제이고, 이 다른 종과의 관계 맺기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해결방식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인간집단과 광대한 생명체의 다수성을 수용하는 방식, 과연 무엇이 인간적인가라는 근본 질문을 던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권 담론은 그 어떤 정치담론보다 더욱 정치적이고 윤리적/현실적으로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 혐오와 폭력이 여기에 맞물려 있고, 생명정치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모색될 수 있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익히 들어 익숙한 명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속에 자명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듯 인간은 포유류의 한 종일 뿐이고,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 '사회적'인가라는 질문 아닐까. 

 

쓰다 보니 두서없이 길어졌는데, 내가 받은 위로에 대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유기동물문제나 안락사 등의 현실에 막막한 절망감이 들 때 내가 자주 꺼내보는 문장을 공유하고 싶었다. 

“배운다는 것은 하나의 지식을 다른 지식과 연결하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려고 하느냐의 문제이다” -랑시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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