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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혜

저도 동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지하로 가야 한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해요. 지상 100층짜리 사회에서 제가 활동하는 인간권리의 영역은 그나마 그라운드였다는 생각을 동물과 만나면서 하게 되거든요. 지하 400층의 아우성이 들려오기 시작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물정치는 결코 동물만의 정치가 아니라는 점에서,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동물정치는 유의미하다고 생각해요. 모순과 불안으로 점철된 세계에서 시시각각 요구되는 선택의 순간들에 편안하고 흡족할만한 선택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희미한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한발자국씩 더듬어나갈 뿐이겠죠. 하지만, 어떤 새로운 생각(흔히 전회라고 하는)이 받아들여지는 데는 조롱과 묵살, 심지어  살해를 거쳐 논쟁이 되고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키에르케고르도 비슷한 생각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다만, 외톨이로 전락하고 싶지 않으니 계속해서 연대의 손을 내밀고, 함께 쓰는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강의안의 마지막 문구는 블랑쇼의 말인데, 동물의 의사가 어떻게 대변되는가에 대한 태도와 의지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부디 다음 시간에도 뵐 수 있기를 바라는 작음 마음을 담아, 어느 책의 조각글처럼 문학적인 후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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