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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이라는 인식 확장의 가능성

 

  “당신의 관점을 보여주세요”라는 ‘내 사랑’이라는 영화의 대사가 와닿습니다. 시를 읽는 이유를 아직 잘 모르지만, 저에게는 이 점이 중요한 힌트인 듯합니다. 그것은 추상적인 문학론 이전의 것입니다. 가령 오규원의 ‘프란츠 카프카’를 읽어보자면- 그것을 읽기 전의 저와 읽은 후의 저는 다릅니다. 시인의 관점으로 다른 세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의 저는 인문학 서적을 보아도 조금 속물적인 경외심, 그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를 읽고 난 뒤에는 위대한 지성들이 초라하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교과과정과 인용문, 비평에서만 겨우 살아있고, 그래서 값싼 상품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저만의 사소한 생각의 일화이지만, 저는 시의 힘을 느꼈습니다.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하고,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 과장되게 말하면, 언어예술을 통해 주체의 인식을 혁명시키는 것이라고.

 

  이 강좌의 용어를 빌리면 호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다, 박선자, 기찬 딸…. 사람만이 아닙니다. 시인은 새의 이름까지도 호명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의 세계 인식은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마치 우리가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세상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우리는 저 미생물과 은하에는 놀라워하면서 (일반적으로) 시의 세계에는 등한시하는 것 같습니다. 시는 즉각적 효과를 유발하지 않고 상상력을 요구한다는 점이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극복하려는 노력만 한다면, 우리에게 많은 가능성을 줄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합니다. 마치 탐험가가 인류에게 이 세계의 놀라움을 주듯이 시인은 정신적 미개척지를 탐험하여 값진 보배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우주여행도 식상하게 느끼는 시대에 정신의 미개척지는 아직도 넓으니 우리가 모르는, 얼마나 더 많고 놀라운 미개척지가 있을까요?

 

  오든의 ‘예이츠를 추모하며’라는 시에는 ‘시는 아무 일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poetry makes nothing happen)’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정치적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의 무력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로 볼 때 이 구절은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저는 시를 통해 하나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시가 단순히 정신적 유희가 아니라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작용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우리 모두 서로가 보지 못한 것을 공유해 서로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평화로워지지 않을까요? 이것이 황당무계한 유토피아적 상상일 수 있겠지만 모든 혁명은 이상에서 시작되었다고 믿으며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든의 시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의 사막에서 치유의 샘물이 솟게 하고 세월의 감옥에서 자유인에게 찬미하는 법을 가르쳐라.’ 그러므로 시는 무언가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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