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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허브

아이고, 재연샘 이렇게나 긴 후기를 쓰시다니! 깜짝 놀랐어요.

만난 기간이 좀 더 길었으면 단편소설이 될 뻔 했네요.^^

관심과 애정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가 다른 사람 눈에 제법 괜찮게 비친 듯해서 조금 우쭐한 기분도 드네요.ㅎㅎ

 

샘이 쓴 후기 중에 제 시를

몇 편 보지도 않았는데 감정 몰입이 금방 되더니 눈물이 흘렀다. 란 대목에

눈으로 밑줄을 긋고 또 긋습니다.

욕설과 사투리가 뒤엉켜 자반뒤집기를 하고 있는 제 시집을 읽고 눈물을 흘리다니!

재연샘의 남다른 감성과 좋은 시를 볼 줄 아는 높은 식견에 두 번째 놀랍니다.

(“에이, 이건 좀 짜고 치는 것 같다.” 는 원성이 들리는 듯 ㅎㅎ)

 

첨부하신 문정희 시인의 시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손으로 잡을 수 없게 만드셨다

이 구절을 읽고 떠올린 시가 있어요.

 

눈보라

사이토 마리코

 

수업이 심심하게 느껴지는 겨울날 오후에는 옆자리 애랑 같이 내기하며 놀았다. 그것은 이런식으로 하는 내기다. 창문 밖에는 풀풀 나는 눈송이 속에서 각자가 하나씩 눈송이를 뽑는다. 건너편 교실 저 창문 언저리에서 운명적으로 뽑힌 그 눈송이 하나만을 줄곧 따라간다. 먼저 눈송이가 땅에 착지해버린 쪽이 지는 것이다. ‘정했어’ 내가 작은 소리로 말하자 ‘나도’하고 그 애도 말한다. 그 애가 뽑은 눈송이가 어느 것인지 나는 도대체 모르지만 하여튼 제 것을 따라간다.

잠시 후 어느 쪽인가 말한다. ‘떨어졌어.’ ‘내가 이겼네.’ 또 하나가 말한다. 거짓말해도 절대 들킬 수 없는데 서로 속일 생각 하나 없이 선생님께 야단맞을 때까지 열중했었다. 놓치지 않도록. 딴 눈송이들과 헷갈리지 않도록 온 신경을 다 집중시키고 따라가야 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나는 한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났다. 아직도 눈보라 속 여전히 그 눈송이는 지상에 안 닿아 있다.

 

 

이 시를 3강에서 얘기할 건데요.

사이토 마리코는 일본 시인인데 우리말 눈송이란 단어가 너무 좋아서 이 시를 썼다고 하네요.

문정희 시인의 시에 나오는 ‘당신의 호명을 기다리는 좋은 언어’ 중에 하나가

이 시인에겐 ‘눈송이’였던 셈이지요.

재연샘이 이 시를 낭송해주시면 어떨까요?

차분하고 멋지게 낭송해 주셔서 저와 벗님네들을 한 번 더

깜짝 놀라게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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