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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논리] 계열 30 발제문

지훈 2021.02.04 15:12 조회 수 : 77

의미의 논리 5강 발제문. 2021.02.05.

 

계열30. 환상(Phantasm)

 

 

1. 환상과 사건

환상은 능동이나 수동을 나타내지 않으며, 단지 그 결과로서의 순수 사건이다. 사건들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상상적인가, 현실적인가가 아니라 사건 자체와 사건을 유발하는 사태 사이의 구분이다. 사건들이 효과들인 한에서, 사건들은 내인적인 원인(사건들 사이의 관계 또는 대사건과의 관계)과 외인적인 원인(물체적인 것과 사건들과의 관계)과 연결된다.

환상은, 자신이 재현하고 있는 사건처럼, 물적 상태들과 그 성질들 뿐만 아니라 심리적 삶들 및 논리적 개념들과도 구분되는, 하나의 “노에마적 빈위”이다. 노에마적 빈위로서의 환상은 존재하나 주체의 심리적 삶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체에게 대상으로서 인식되기 이전 의식 속에 스스로 주어지는 어떤 것으로 존재하는 이 잠재적 현실로서 환상은 존재한다. 따라서 환상은 자신이 하나의 효과로서 생산되는 이념적/관념적 표면에 속한다. 그것은 내부와 외부의 구분을 넘어서는데, 왜냐하면 환상의 위상학적 속성이 “이드”의 내적이고 외적인 측면들이 하나의 표면 위에서 펼쳐지도록 그 두 측면들을 접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상-사건은 한편으로는 환상을 심층에서의 결과로 만드는 외적이고 내적인 원인들과 관련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표면에서 자신에게 작용하는 그리고 자신이 다른 모든 사건-환상들과 소통하도록 만들어주는 어떤 준-원인과 관련되는 이중인과를 따르는 것이다.

환상들은 능동적, 수동적, 내적, 외적, 상상적,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때문에 환상들은 사건의 되돌릴 수 없음과 이념성/관념성을 갖고 있다. 이 되돌릴 수 없음의 관점에서 환상들은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기다림을 야기한다.

사건은, 자신을 생산하는 물적 상태들로부터 그리고 자신이 그 안에서 현행화되는 물적 상태들로부터 구별되는 한에서 의미 그 자체이다. 하나의 표면 효과로서 나타나는 것이 출현하는 지점에, 즉 또 다른 유형의 사건이 출현하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정신분석이 “핵심 콤플렉스”로서의 오이디푸스의 역할을 상기시키는 것은 옳은 일이다. 왜냐하면 사건이 심층의 원인들로부터 해방되고, 표면 위에서 스스로를 펼치며, 동적 발생의 관점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신의 준-원인과 결합시키는 것은, 바로 오이디푸스와 함께이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신화 속의 사건들은 각각의 하나이자 동일한 환상의 이본(異本)들 속에서 다른 모든 것들과 소통하고 있다.

우리는 전체 사건이 거주하는 곳이 현행화가 달성될 수 없거나 원인이 생산할 수 없는 지점이라면, 사건이 스스로 반-현행화에 제공해주는 곳도 동일한 지점이고, 우리의 자유가 자리 잡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우리는 그 자유를 통해 사건을 전개한다.

 

2. 환상, 자아, 그리고 특이성들

환상의 두 번째 특성은 자아와 관련해서 그 상황, 아니면 차라리 환상 자체 내에서의 자아의 상황이다. 환상의 출발점을 팔루스적 자아에서 찾고, 환상이 저자에게 등을 돌리는 속성을 갖고 있다면, 환상과 분리할 수 없는 펼쳐짐이나 전개를 고려할 때, 환상 속에서 자아의 장소는 무엇인가?

원환상(originary phantasm)은 “장면 속에 주체의 현존을 수반하는 주체화의 부재에 의해 특징지어질 것이다.” “주체와 객체의 어떤 분배도 폐지된다.”, “주체는 대상이나 그 대상의 기호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의 시퀀스 속에 포함되어 있다. 주체는, 원환상에 가까운 형식들 속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장소를 갖지 않은 채 무대에 참여하는 것으로 재현된다. 결국, 이것은 자아가 능동도, 수동도 아닌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하게 되고, 자아가 소산한다 하더라도, 심층들의 생성과 이 생성이 함축하는 무한한 동일성에 있어 일어나는 듯이 대립자들의 그 어떤 동일성에 의한, 능동이 수동이 되는 일종의 전복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저자들이, 여전히 자아에 호소하고, 심지어 자가-성애적인 “이전(this-side, 분열적-편집증적 위치)”을 참조하는 대명동사 모델 속에서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을 넘어서서 대립자들의 동일성을 추구할 때, 그들을 따를 수 없다[대명동사 ex>보다(to see), 보여지다(to be seen), 스스로를 보다(to see oneself)]. 그러나 이러한 대명 동사 모델은 더 깊은 가치평가를 부여하거나 둘의 종합하는 수단들에 의존하는 대립자들의 동일성이라는 관점을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의 저편에 있는 것은 대명동사가 아니고, 능동들과 수동들의 결과, 표면효과, 사건이다. 환상에서 나타나는 것은, 자아로 하여금 표면으로 자신을 열게 하고, 그때까지 자신이 가두어 놓고 있었던 무-우주적이고, 비인칭적이고, 전-개체적인 특이성들을 해방시키는 운동이다. 자아가 짐을 덜게 됨에 따라 운동은 글자 그대로 그 특이성들을 홀씨들처럼 풀어 놓고 파열되게 한다. 우리는 “중성적 에너지”라는 표현을 전-개체적이고 비인청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이러한 중성성은 특이성들을 방사시키는 운동으로 본질적으로 환상에 속한다. 따라서 자아의 개체성은 환상 자체의 사건과 합쳐진다.

 

3. 환상, 동사, 그리고 언어

환상에 내재적인 전개가 문법적인 변형들의 놀이 안에서 표현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환상이 말해진다거나 의미화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사건에 명제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 단순히 말해진다거나 말로 의미화된다는 것이 아님). 사건은 그로부터 자신이 발생하는 물적 상태들과 그것만큼이나 자신을 표현하는 명제들과도 많은 차이를 제시한다.

그래도 사건이란 적어도 가능한 한 명제 바깥에서는 실존하지 않고, 결국, 순수 사건으로서 환상은 부정법 동사에 내속한다. 환상은 부정법 동사로부터 분리 불가능하며, 이는 환상이 순수 사건임을 증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환상이 언어 내에 나타나는 한에서 모든 인칭, 시제, 법, 태로부터 독립적인 부정법으로 생각해야 한다. 태, 법, 시제, 인칭 각각은 특이점들의 다양한 결합을 나타내는, 그리고 이 특이성들 주위에서 특정한 문제에 대한 하나의 사례를 구성하는, 선언들 안에서 발생할 것이다.

“이리가레는 환상과 부정법 동사 사이의 본질적 관계에 주목한 뒤, 그런 발생의 몇몇 사례들을 분석한다. 일단 환상 속에서 한 부정사를 결정한 후(가령, 살다to live 등) 그녀는 몇몇 연결의 유형들을 조사한다(주어-목적어의 합언, 능동적인 것-수동적인 것의 연언, 긍정-부정 선언, 또는 이 동사들 각각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화의 유형).”

이것이 아이온의 부정법적인 선 위에 분배된 특이성들의 수준에서, 사건들이 아이온에 거주하는 방식/모습이다. 우리는 유사한 방식으로, 동사가 한 순수 부정사로부터 출발해서, 한 물음으로 개방되고, 하나의 물적 상태나 하나의 해의 경우에 대한 지시작용 위에서 닫히는 현재 직설법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 전자는 명제의 고리를 열고, 후자는 명제의 고리를 닫는다.

환상의 탄생 지점을 결정하고 언어와 맺는 실질적 관계를 규정하는 과제가 제기된다. 이 물음은 환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각각의 방식은 다른 것들과 연루되어 있는데, 각자가 동적 발생의 과정에서 필수적이라고 가정되는 어떤 결정된 순간과 관련시키면서 환상이라는 단어의 사용과 의미를 고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라플랑슈와 퐁탈리스는 자가 성애를 가지고 환상을 정초했고, 클라인은 환상적인 삶의 전개는 분열적이고 우울증적인 위치들의 항구성에 의해 좌절된다고 말했다. 환상은 자기-성애적 자아에서만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환상은 문법적인 변형들과 분리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 변형들의 비물질적인 질료로서의 중성적인 부정법과도 분리 불가능하다.

환상은 표면의 현상이고, 표면들의 전개에서 한 특정 순간에 형성되는 현상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심층의 대상들, 그리고 이들에 상응한 생성과 이들을 특성화하는 전복들을 지시하기 위해 ‘시뮬라크르’라는 말을, 상층들의 대상과 그 모험들을 가리키기 위해 ‘우상’이라는 말을, 물체적인 부분적 표면들과 관련되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이마주’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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