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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 기원의 신화 : ‘고전건축’과 그 분신들

 

 지난시간에는 르네상스 건축과 바로크 건축에 대해 얘기하였습니다. 르네상스 건축은 정형화된 형태를 추구하였기 때문에 비례가 중요하였습니다. 바로크 건축은 이진경선생님에 의하면 “선을 구부러뜨리는 기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건축은 최초의 투영기술인 절석법과 사영기하학이 결합하여 발전하였는데, 두 가지 경향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하나는 시선의 다양성과 동선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식민지 바로크이고, 다른 하나는 시선의 다양성을 초월화시키는 제국주의적 바로크였습니다. 그리고 후자의 바로크 양식이 바로크 후기에 ‘장식적’경향(로코코 양식)으로 나아갔습니다.

 

 18세기 이러한 장식적 경향에 대한 반발로 ‘고전주의적’경향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당시 고대에 대한 관심은 ‘그랜드 투어’라고 불리는 여행의 유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개 여행의 목적지는 로마였는데, 19세기 초까지는 터키 지배 하에 있어서 그리스 본토가지는 여행이 곤란했지만 여행의 부산물로 체계적인 연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또, 이 당시 있었던 고대에 대한 관심은 고대를 하나로 묶지 않고 로마와 구별되는 ‘그리스’를 기원으로서 특별한 위치에 두었다는 점에서, 르네상스 15세기에 있었던 것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빈켈만은 <그리스 미술 모방론>이라는 책에서 그리스의 문화의 탁월함을 상대적인 것이 아닌 절대적 위치에 두기 위해 그리스 민족이 다른 민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위상을 지닌다는 것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세계가 모든 세계라고 사고하기는 쉬우나 당시 이 생각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몇 백년간 주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것은 그리스를 영원한 초월적 이상이자 규범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 당시 사람들의 시대정신이었음을 입증합니다.

 

 하지만, 그리스 건축에 대한 예찬하는 입장에 반대하여 로마건축의 위대함을 역설한 입장이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피라네시’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책과 판화로 유명했는데, 그의 1000여장의 동판화를 보고 로마로 여행을 갔던 사람들은 막상 직접 로마를 보고는 실망했다고 합니다.ㅋㅋ

 

 앞에서 말했듯이 18세기 고전주의적 경향으로 ‘신고전주의적’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바로크 양식의 루브르 궁 동쪽 입면과 관련된 논쟁을 통해 본격화 되었다고 합니다. 클로드 페로라는 사람이 루브르 궁 동쪽 입면을 만들었는데, 긴 수평보를 받치기 위해 쌍기둥을 만들고 긴 수평보를 만들기 위해 작은 돌들을 철심과 보강물로 연결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프랑수아 블롱델이라는 사람이 고전주의적 입장에서 자연에 기반한 고전적 형태와 비례에 따르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다시 페로는 고전건축은 관습에 따라 적절한 미적 비례형태가 출현할 수 있는 것이고, 시각적 가시성 혹은 시각적 표상이 중요하기 때문에 재료가 자연적 관계를 통해 기둥과 보의 관계를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반박했답니다.(철심을 이용)

 

 페로를 통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은 구조적 합리성(구조적 형식)과 가시적 합리성(미적 형식)의 차이였습니다. 미적인 형식을 위해 돌들 사이를 철로 보강하는 것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자연의 비례를 끼워 맞추는 것이 때문입니다. 이후 가시적인 비례로 이루어진 건축과는 다른 차원에서 구조적 합리성에 기초한 건축에 대한 관심이 생깁니다. 대표적인 것이 고딕성당입니다. 고전적인 기둥과 건축에서 벗어나 높은 지붕과 벽을 버티는 고딕적 구조에 대해 관심을 둔 것입니다.

 

 18세기 중반 이러한 상황에서 신부 로지에는 구체적인 치수들의 체계와는 무관한 어떠한 객관적 실체로서의 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건축의 본질적인 부분은 기둥, 보(엔타블라춰), 지붕(페디먼트)였습니다. 또, 그는 기둥은 자립적이어야 함으로 벽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딕적인 빛과 장대함을 살리면서 벽기둥이 아닌 실제적 본성을 표현하는 고전적인 기둥을 통해 성당을 만드려고 했습니다. 이렇듯 실체의 존재가 가정된 건축이 ‘진실’내지 ‘진리’를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가 초월적인 진리라는 개념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실체, 목적으로서의 기원으로 존재한다는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계보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한 사람의 책이 있습니다. 버날의 <블랙아테나>입니다. 그리스가 이집트 즉, 아프리카의 기원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진경 선생님이 몇 번 언급하셨지만 책의 두께에 겁먹고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책의 내용을 설명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흥미가 생겨서 일단 도서관에 가서 한번 빌려볼 생각입니다. 히히

 

 다음으로 19세기 ‘고전주의’건축에 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18세기 말 19세기 들어오면 유럽에서는 그리스가 이집트적 근원을 갖는다는 것을 불편하게 여겨 이집트적 근원을 지우려는 노력이 많았다고 합니다. 로지에는 그리스주의를 얘기하면서도 다른 요소들(이집트, 고딕)을 배제하지 않았는데 19세기 들어오면서 사라져 버립니다. 이로써, 19세기에는 그리스모델이 기원신화로 확립하게 됩니다.

 

 그런데 19세기 건축에 대해 얘기하려고하면 16세기는 르네상스 시대 17세기는 바로크 시대라고 하는 것처럼, 한 단어로 얘기할 수 없을 만큼 양식의 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당시 고전주의는 상이한 양식들을 묶어주는 건축의 실체적 본성을 전제하고, 그 것이 그리스적 형태로 출현했지만 그리스로 환원되지 않는 자연적 본성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자연적 본성을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4개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먼저 신고전주의는 그리스적인 스타일을 원용해서 강한 원칙적인 입장을 갖습니다. 실체적 본성을 가정하고 그리스적인 기둥과 보의 관계로 표현되는 가시적인 형식을 요체로 합니다. 이 핵심적인 요소로 건축을 진실하게 드러내야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로지에신부의 생각을 통해 얘기했던 것들이 신고전주의 흐름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 신고전주의는 간결함을 추구합니다. 이에 따라 바로크 양식마저 안정적으로 가게됐고 제국주의적 바로크로 가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엘이라는 사람은 고전적인 기둥을 철로 보강한 것을 비판하면서 철 보강에 의존하지 않는 고전주의적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보강재를 쓰는 것은 정직, 진실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고전으로 가야한다는 완고한 태도를 보여준 사람은 캬트르메르 드 캥시입니다. 그는 구조적 합리성에 근거한 건축이 아닌 예술로서의 건축을 가르쳤습니다.

 

 둘째, 역사주의 혹은 절충주의란 한마디로 말하면 역사적인 양식들을 그때마다 건물의 성격에 맞게 가져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 가지 비례들의 차이들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에서 실체적인 것을 더욱 심층적으로 밀고나갈 수도 있지만, 역으로 그러한 실체를 다양한 형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입장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조금 더 나아가면 건축기념물, 미술관, 저택, 극장, 전시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적의 건축물에 고전적인 것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실체를 담보하면서 그 건축물의 성격에 맞게 짓는 것입니다.

 

 셋째, 기하학적 형태주의란 건축의 실체적 본성이 그리스의 기둥형태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더욱 심층적인 차원에 있는 것이라면, 그리스적 형태로부터 더 근원적 형태로 환원하는 추상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가장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과 입체는 건축 언어의 음소나 형태소를 이루는 것이란 점에서 분절형식이라고 합니다. 이런 입장에 대표적인 인물은 에티엔 불레와 르두입니다. 가령 블레는 지을 수 없는 거대한 건축물만 그렸습니다. 이유는 그가 건축은 집짓는 기술이 아닌 디자인으로서의 예술이라고 생각한 데에 있습니다. 그는 건축물에 성격을 드러내는 특질을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종합하면 기하학적 형태주의의 한쪽은 형태적인 기본요소로 도형과 입체들이라면, 다른 한쪽은 건축물의 목적이나 과제와 관련된 것을 드러내고자하는 이미지라고 합니다.

 

 넷째, 철골건축과 합리주의(구조주의?)는 건축의 보조적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던 것들에서 건축물의 실체적 본성을 보려고 하는 입장입니다. 이런 생각이 19세기 건축양식의 한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철골건축의 발전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철의 비용이 싸지면서 점차 철골건축물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당시에 철골건축은 하나의 건축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편견 속에서 철골건축은 건축물이란 아름다워야한다는 강박으로 고전적인 형태의 장식을 취하게 됩니다. 이렇듯 구조적 건축은 예술로 일컬어지는 건축과 형태와 구조적 관계를 드러내야 한다는 강박 사이에서 동요하였습니다. 에펠탑도 이때 만들어졌는데, 기능적인 요소가 없이 상징물로서 철골건축물이었던 에펠탑은 그 당시 많은 건축가들에게 욕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철골건축이 하나의 건축물로 인정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나봅니다. 철골건축에 관해서는 이상헌선생님 책 <철 건축과 근대 건축이론의 발전>을 추천하셨습니다.

 

 강의 마지막으로 앞의 네가지 고전주의 건축의 입장을 푸코적인 방식을 써서 언어의 형식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 이는 이전에 이진경선생님이 게시물로 올리신 것을 보면 되는데, 강의듣고나서 바로 봤을 때는 눈에 잘 안들어왔는데 쭉 복습을 하고보니 눈에 들어오는 듯합니다. 다른 강의에 비해서 한 강의에 많은 양을 배우는만큼 복습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금방 까먹는 듯합니다. 여하튼 설 연휴동안 틈틈이 다시 읽어보고 정리해봤는데 선생님이 언급하신 책도 많고 강의내용 자체도 여기에 정리한 것보다 많아서 공부할게 끝이 없는 듯합니다. 내일 강의 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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