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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세번째 강의 후기

고키 2013.01.30 02:40 조회 수 : 3009

 이번시간에는 벤야민과 매우 친했다는 아도르노의 역사철학적 시선과 관련하여 그의 인식이론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전에 먼저 최진석선생님이 아도르노라는 사람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듣고보니 아도르노라는 분. 이 시대의 용어로 말하자면 엄.친.아 였습니다. 당대 훌륭한 철학자였던 것만으로 모자라,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었답니다. 저서가 20여권되는데 그 중 절반이상?이 음악론에 관한 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그랜드피아노를 열어 가볍게 교향곡 하나 쳐주시고 머리 좀 맑아지면 철학을 하셨답니다. (재수없죠?ㅋㅋ)

 

 

그렇다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아도르노는 시선과 형이상학, 역사철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습니다. 기존의 역사철학에서는, 역사는 항상 진보하는 방향으로 선형적으로 나아간다는 전제를 갖고 있습니다. “이성의 간지”, “절대정신”이라는 말로 유명한 헤겔뿐만이 아니라, 헤겔과 대립하는 사상가로 불리워지는 맑스 또한 역사란 항상 진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도르노에게는 모두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이들의 사유 밑에는 공통적으로 주체-객체 이원론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주체(인간)와 객체(자연)의 대립은 불가피하고, 그 대립은 노동으로 극복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유전개는 인위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생각이었습니다. 아도르노가 살았던 20세기가 파시즘과 나치즘, 전체주의로 얼룩진 폭력의 세기였던 것을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인 상태에 들어서기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상태에 빠지게 되었는가?”(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공저,『계몽의 변증법』) 계몽의 지칠줄 모르는 자기파괴 때문이라는 것이 이 문제제기에 대한 아도르노의 답이었습니다. 아도르노의 생각에는 비단 근대적인 사유에서 뿐만이 아니라 원초적인 역사의 시원에서부터 지배하고자하는 욕구가 주체-객체 이원론의 사유형태를 만들어냈고 그런 지배욕구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바로 ‘계몽’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주체-객체 이원론적인 사유형태이전의 사유형태가 있었습니다. 아도르노는 이를 ‘미메시스’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객체에 대한 대립과 적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객체에 대한 주체의 완전한 ‘동화’를 말합니다. 즉, 대상을 도구적인 태도로 관찰하지 않고 ‘친숙함’을 통해 가까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그렇다고해서 아도르노가 미메시스적인 사유상태(원초적인 자연상태)를 인류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원초적인 자연상태는 인류가 자연의 힘 앞에서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카오스’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역사 안에서 계몽의 사유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또, 그는 역사란 지배가 끝없이 강화됨에 따라 몰락에 이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는 것은 아도르노의 이러한 역사인식 또한 하나의 일관된 역사철학적 시선이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그의 역사인식은 지배의 역사인식에서 동일화의 경향을 물리치고 ‘차이’를 끄집어내어 지배에 저항한다는 점입니다. 또, 역사가 언제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희망은 궁극적인 어떠한 진보사회의 이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믿음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고통에 대해 눈 감아버리는 것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제가 듣기에 멋진 말이네요.)

 

 

 이러한 역사에 대한 아도르노의 부정적인 인식은 역사철학이라는 말 자체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아도르노의 고백처럼, 계몽의 역사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결국에는 계몽의 방법을 원용해야하기 때문에 그는 역사철학을 포기하고 아포리아로서의 시선을 택한 것입니다. “세계사는 구성되어야하며 동시에 부인되어야 한다.”라는 아도르노의 말을 보면 그의 고민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강의를 듣기전에 이진경의 철학교실에서 『코뮨주의』를 수강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책 서문 제목인 ‘도래할 실패를 기다리며’라는 말이 이 말 뜻을 잘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뮨주의란 그 끝없는 실패로 인해 영원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반복의 긍정이다. 실패할 수 없는 완전성에 안주하는 ‘게으른 영원성’(블랑쇼)이 아니라, 영원히 되돌아 올 그 실패마저 긍정하는 것이다. 그 실패가 되돌아올 때마다 다시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그 영원한 실험의 장을 기꺼이 긍정하는 것이다. 메시아로서 도래할 어떤 사건을 기다리는 것이라기보다는, 도래할 또 한 번의 실패를 기다리는 것이다.”(이진경 저, 『코뮨주의』)

 

 

최진석선생님, 잘 이해한 거 맞나요? 맞으면 참잘했어요 도장 하나 찍어주세요. ㅋㅋㅋ

다음 강의는 문화 선생님의 벤야민의 보들레르, 알레고리와 파편화된 시간이네요. 기대됩니다.  강의 시간 때 뵙겠습니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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