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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에 대한 니체적 독해

solaris 2017.04.15 01:38 조회 수 : 439

오늘 강의, 어떠셨나요?
힘드셨지요?
많은 내용을 빠른 속도로 말을 해서리...
하여 강의안을 달라는 얘기들을 하셔서
강의안은 없으니 메모는 있어서
그걸 늦게 나마 올립니다.

오늘 강의한 내용 중에서 9장, 고귀함에 대한 부분을 읽기 위해
혹은 이전의 니체를 읽기 위해, 
아니 니체를 읽기 위해 필요한 독해의 방법에 대한 것인데,
특히 뒷부분, 힘에의 의지에 대한 얘기는
시간에 쫓겨 넘 빠르게 말을 한데다
얘기는 빽빽하여 기억하기 힘들실 듯하여
제가 강의를 위해 메모했던 것을 올립니다.
복사해서 한글 프로그램에 붙여 읽으시면 좀더 읽기 편할 겁니다.^^


니체에 대한 니체적 독해
 
1)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선악의 저편 9장은 정말 고귀함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한다! 이 장에서 니체가 말하는 고귀함이나 고귀한 자는 “노예‘와 대비하여 ‘귀족’이란 말로 요약되는 데, 이런 요약은 그의 말대로 ‘문법의 환상’을 통해 귀족이라고 불리던 자들의 가시적 특징들을 고귀한 자의 특징으로, 고귀함으로 오인하게 하는 것 같다. 반면 고귀함에 대한 말로 끝나는 <에티카>의 저자 스피노자는 고귀한 자를 ‘노예’와 대비하여 ‘자유인’이라고 명명한다. 이럼으로써 포착되는 고귀한 자의 도덕, 즉 자유인의 도덕은 니체가 말하는 귀족의 도덕과 크게 다르다. 어떤 것이 고귀한 자의 도덕이라고 해야 할까?-->고귀함이란 대체 무엇인가?가 다시 물어져야 한다.
 
2) 니체의 ‘악조건’
니체는 시대정신을 벗어나 반시대적으로 고찰하고자 했지만 그런 니체조차 넘을 수 없는 시대적 제약이 있었다. 니체의 사유를 조건짓고 있는 것들. 이것이 고귀함에 대한 그의 사유를 조건짓고 제약한다.
-->니체에 대한 니체적 독해: 이런 요소들을 걷어내고 니체에게서 핵심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근간으로 니체를 다시 읽는 것!
a) 19세기의 유럽과 유럽주의: 민족에 대한 그의 고찰은 민족주의라는 19세기 유럽을 조건으로 해서 탄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럽주의, 아니 유럽중심주의 또한 19세기 유럽을 조건으로 하여 탄생한 것이다.
--그리스에 대한 예찬은 18세기 중반 이래 유럽의 ‘시대정신’이었다. 이는 고귀함의 모델을 그리스에서, 그리스의 귀족에서 찾도록 만들었다.
니체의 유럽주의는 민족주의를 넘어서려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반시대적이지만, 국경을 넘어선 사유가 유럽을 넘지 못한 것은, 비유럽지역과 대비되는 유럽적 고유성에 대한 예찬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는 19세기에 전면화된 식민주의의 소산이었다. 오리엔탈리즘.
(‘동양’이나 동양의 ‘종교’에 대해 니체는 기독교를 넘어선 것으로 종종 평가하지만, 언제나 기독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고 위치지워진다. 여기에는 동양이나 동양종교, 사상에 대한 정보와 이해의 현저한 결여라는 조건이 또 다른 시대적 제약조건이 되었다.)
b) 19세기의 ‘생명’ 개념 내지 생물학: 니체의 사유는 그가 참조할 수 있었던 19세기 지식을 지반하고 한다. 가령 영원회귀에 대한 사상은 에너지보존법칙에 대한 지식을 자원으로 한다. 모든 것을 생명의 본성에 따라 이해하고자 제안한 힘에의 의지 개념은 당시의 생명개념을, 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 이로 인해 그 또한 그 지식의 제약에 매이게 한다.
가령 귀족도덕의 발생과 퇴락을 다룬 262절은 불리한 조건과의 오랜 투쟁 속에서 강한 힘이 발생한다고 시작한다. 그러나 이는 생존이 단위로 개체를 설정하고 개체들간의 생존경쟁을 통해 생명의 운동을 파악하는 19세기 생물학에 기대고 있다. 그런 개체조차 사실은 수많은 하위개체들의 공생체라는 점, 유기적 개체의 생존은 투쟁 이상으로 협력과 공생에 기대고 있다는 점,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생태계 차원에서보면 역설적인 공생적 순환계의 한 형태라는 점 등을 안다면 어떻게 말했을까?
-->투쟁과 협력은 개체나 생명을 보는 스케일의 문제다. 작은 스케일에서 투쟁으로 나타나는 것도 큰 스케일에선 공생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작은 것과 큰 것 역시 니체가 ‘정치’ 개념을 다룰 때 빈번히 사용되는데, 정말 큰 것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고 재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대립?: 니체는 대립을 약화하고 협력을 강조하는 것을 비판하며 이기주의를 강조한다(9.262, 265). 그러나 공생은 이기적이며 또한 이타적이다.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것의 대립개념 자체가 죽음과 대비되는 생명 개념 하에서 개체의 생존만으로 생명을 이해했던 19세기 서양인들의 사고의 산물이다.
-강함이란 투쟁과 저항인가?:
영국인들이 호주에 가져간 토끼의 급증과 이를 죽이기 위한 바이러스의 예: 바이러스와 토끼의 생존경쟁만으로 본다면 누가 이기는가를 보게 된다. 먹고 먹히며 죽고 죽이는 과정, 거기서 살아남는 것이 강자가 된다. 그러나 토끼의 치사율이 빠른 속도로 저하한 것은 토끼가 바이러스를 이겨서만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토끼 신체에 적응한 결과기도 하다. 상호적응과 협조가 생존의 이유다.
면역계의 작동양상도 마찬가지다. 과민한 면역반응은 신체적 약함의 결과지 강함의 결과가 아니다. 노말 플로라는 강한 자들은 적들마저 자기 신체의 일부로 살게 함을 보여준다. 요컨대 먼역력은 신체의 강함이란 신체의 수용능력임을 보여준다.
-투쟁이나 저항, 공격성은 강함의 징표인가?: 동물의 공격성은 약함의 징표다. 니체가 강조하는 투쟁이나 저항은(서구적 사고방식!) 강함의 징표가 아니라 약함의 징표 아닌가?
-->투쟁과 비관용, 폐쇄성이 정말 고귀한 자의 특징인가?
c) 대결하는 적 자체가 제약조건이다: 니체는 자랑할 만한 적을 가지라고 했다. 강한 적은 내가 더욱 강해지는 조건이 되고 약한 적은 나를 약한데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적과 싸울 때, 싸움의 양상을 그 적에 의해 크게 규정되기에 그 대결의 지형에 갇히기 쉽다. 이로 인해 적과 싸우며 적과 닮아가는 것은 흔한 일이다. 니체 말대로 “괴물과 싸울 때는 괴물과 닮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니체는 어떠했는가? 그의 적은 천민이고 노예다. 평범성과 평균성에 갇힌 자들, ‘세인’들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이해하기 쉽게 하고 평준화한다. 이와 싸우기 위해 니체는 그의 사유와 언어를 평준화에 반하는 도드라지는 것으로 다듬었고 이해하기 쉬운 것에 반해 이해하기 어려운 것, 대개는 충돌을 야기하기 위해 저항과 반발을 야기할 수 있는 것들로 첨예화했다. ‘이기주의’에 대한 예찬, 악덕의 예찬 같은 ‘위악적’ 언표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 역시 문법의 환상 속으로 우리를, 니체를 끌고 간다.
-->이런 투쟁의 구도 속에서 그는 천민이나 노예, 고귀한 자와 귀족을 과거의 어떤 인간들이 갖는 가시적인 특징을 빌어 대비하고 분류한다. 이로 인해 가시적인 외양들을, 즉 그가 귀족이라고 부른 자들의 외양을 고귀함으로 오인한다.
 
3) 고귀함과 비천함을 산출하는 것
니체가 말하는 강함과 약함은 개인이나 개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이전의 미시적 성분에 대한 것이다. 앞서 쇼펜하우어 ‘의지’ 개념에 대한 비판에서 본 것처럼. 능동적인 힘과 반동적인 힘, 긍정적인 의지, 부정적인 의지 모두 그렇다. 개인이란 미시적인 다양한 힘과 의지들이 충돌하고 공존하며 때론 이것이 때론 저것이 ‘승리’라는 장이고, 그 ‘승리’의 결과에 따라 그 힘과 의지들이 위계화되고 지층화된 장이다. 9장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한 영혼 안에서 어떤 감각군이 가장 빨리 깨어나고 발언하며 명령하을 내리게 되는지가 그 영혼의 가치의 전체 위계질서를 결정하며, 이것이 결국 그 용혼의 재산목록을 확정하게 된다. 한 인간의 가치평가는 그의 영혼의 (이러한) 구조에 관한 어떤 것을 드려니며 그 영혼에서 어디에서 자신의 생명조건과 본래의 어려움을 보고 있는지 드러내준다.”(9.268)
-->힘이나 힘에의 의지 개념을 통해서 도덕이나 지식, 사태를 포착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그것의 발생사를 다룬 구체적인 부분은 19세기적 지식과 사유의 지반이라는 조건 안에 갇혀 있다. 이를 제대로 다루려면 개체들의 가시적 특징이나 19세기의 지적 상황, 그리고 개체주의적 사고를 넘어서 다시 이해해야 한다.
 
3) 힘과 힘에의 의지
a) 기초개념들
⓵물리적인 것부터 생명적인 것, 사회적인 것 등 모든 것은 힘들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힘들의 분포와 작용양상이 사건이나 사태를 결정한다.(사태는 힘에 기인한다란 말을 단순한 동어반복이라고 할 순 없다. 힘이 아니라 힘의 차이가 사태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사건을 이 힘들의 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차적이다)
⓶ 힘에의 의지는 힘들의 ‘종합원리’다. 상이하게 분포된 힘들의 작용, 그에 따른 사건들의 발생이나 진행, 그 힘들의 분포를 바꾸려는 새로운 의지 등이 모두 힘들의 종합을 뜻하는 힘에의 의지의 작용이다.
⓷ 니체가 구별하지는 않았지만, ‘힘의 의지’와 ‘힘에의 의지’가 구별되어야 할 것 같다. 힘의 의지는 힘이 발동시키는 의지다. 힘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의지. 힘-의지, 의지로서의 힘. 가령 힘의 장 안에 들어선 것들에 대해 특정한 양상으로 움직이거나 배열되게 만드는 힘의 작용이 힘의 의지다. 자기장 안에 들어선 쇳가루에 가해지는 힘의 작용, 태양계라는 중력장 안에서 별들이 특정한 양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의 작용. 힘에의 의지는 이런 힘의 장의 변화를 야기하려는 의지다. 힘의 작용이 관성적인 것이라면(힘=관성=의지), 힘에의 의지는 관성에서 이탈하는 것(클리나멘)이다. 스피노자의 개념을 이에 맞추어 변형한다면, 전자는 이너시아, 후자는 코나투스.
b) 종합의 양상
⓵ 힘은 양적인 차이를 갖는다. 그 차이를 통해 힘은 작용한다. 차이는 힘들 간의 관계를 표현한다. 힘의 양과 달리 힘의 방향 내지 질을 구별하는 두 성분이 있다. 하나는 능동적 힘, 다른 하나는 반동적 힘.
-->능동적 힘이란 시작하는 힘이다. 무구성이란 바로 이런 시작하는 힘의 표현이다. 반동적 힘이란 자극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힘이다. 앙심이나 원한, 분노...는 모두 반동적 힘의 표현이다. 기억보다도 망각이 능동적인 힘이다. 망각의 작용이 주도할 때 기억은 능동적 힘이 된다.
⓶ 힘의 차이로부터 '힘의 의지'가 발생한다. 힘(에)의 의지는 양적인 크기를 갖는다. 또한 그것은 두 가지 방향 내지 질을 갖는다. 긍정적인 의지와 부정적인 의지. 긍정은 하고자 하는 것을 하게 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의지고, 부정적 의지는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의지로부터 힘을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의지다.
⓷ 이 힘의 의지는 힘으로 발생하는 힘이며, 큰 힘이 규정한 방향을 따라, 그 힘의 지배를 향해 관성적으로 나아간다. 힘의 감정...이 동반된다. 이러한 힘의 의지는 힘의 변화를 향해 나아가며 힘의 증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의지지만 관성적인 의지란 점에서 힘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때 능동적 힘이 지배적이라면 힘의 의지는 능동적 힘의 표현이고 반동적 힘이 지배적이라면 반동적 힘의 표현이 된다. 가령 분노는 의지 이전에 반동적 힘의 표현이다.
⓸ 힘에의 의지가 차이적인 힘의 관성만이 아니라 독자적인 방향을 갖게 될 때, 그것은 강한 의미에서 '의지'가 된다. 그 의지 역시 힘의 분포의 변화를 향해 투여된다는 점에서 힘에의 의지다. 이때 힘에의 의지는 힘의 증가를 향해 나아간다.
-->새로운 가치나 스타일의 창조는 시작하는 무구한 힘이 독자적인 방향의 의지를 갖게 될 때, 기존의 분포를 바꾸려는 의지에 따라 능동적인 힘이 작용할 때 발생한다.
⓹ 이 힘을 관성에서 벗어나 투여하도록 하기 위해선 '잔혹'이, 훈련과 훈육이 필요하다. 훈련과 훈육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그 힘의 투여방식에 의해 소급적으로 규정된다.
⓺ 힘의 투여는 대상에 대한 지배를 향해 투여되기도 하고 힘 자체를 향해, 힘을 다루는 능력을 향해 투여되기도 한다. 대상을 향할 때 지배하려는 의지, 명령하려는 의지, 획득하려는 의지로 나타난다. 발생지인 힘 자체를 향해 투여될 때 자기-명령, 자기-지배를 통해 능력의 증가, 잠재적 능력의 증가를 향한 의지로 나타난다.
⓻ 원한이나 금욕주의적 이상, 허무주의 같은 것은 힘에의 의지가 반동적 생성을 향해 투여되는 경우다. 자기 힘의 증가가 아니라 대상이나 상대방의 힘의 감소로 치환되어 진행될 때, 상대방의 힘을 감소시키려는 부정적 의지가 작동하며, 이 의지에 따라 능동적 힘 또한 부정적으로 투여된다. 원한이나 앙심 또한 그렇다. 금욕주의적 이상은 본능에 대한 적대감이 본능을 감소시키는 훈육을 통해 본능을 감소시키게 되는 것을 지향하는 투여방식이다. 그러나 모든 금욕이 그런 것은 아니다. 참으며 넘는 것을 통해 자신의 능력의 고양을 추구하는 금욕은 이와 다르다. 허무주의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큰 힘과 대면했을 때, 그것과 대면하거나 충돌하려는 의지를 부정하여 그것을 추동하던 힘을 감소시키게 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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