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수유너머N 여름강좌 ②]
문학의 선언, 선언의 문학
알랭 바디우는 사랑은 고백이라는 선언을 통해서만 시작되고 비로소 사실이 된다고 말했다. “너를 사랑해”라는 발화가 있기에 사랑은 돌연 실존하고, 보여지며, 작동한다. 존재하지 않던 것을 지금-여기 있게 하고, 그 힘을 표현하는 능력. 우리는 여기서 선언의 수행적 힘을 목격한다. 이렇게 선언은 갇혀있던 말을 잠금해제하는 마법이자 주문이며, 인정의 굴레에 갇힌 삶을 재발명하도록 독촉하는 명령으로 제기된다. 선언은 사건의 말이며, 문학은 그 사건적 힘을 불러내는 표현의 형식에 다름 아니다. 문학의 역사는 선언의 힘이 사그라든 후 작성된 죽은 말들의 명부일 따름이다. 그것은 현실을 치장할 뿐 변화시키지 못하며, 문학제도라는 질서에 복무하며 서서히 문학을 질식시킨다. 차라리 문학의 역사를 반추하며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자기승인하는 힘으로서 말의 역능, 그것이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순간들인 선언의 장면들이어야 한다. 이 강좌를 통해 문학사에서 중요했던 선언들을 돌아보며, 그 사건적 폭발의 순간들을 지금-여기로 끌어당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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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강: 2015년 7월 1일.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30분. 총6강
□ 강사: 최진석 (수유너머N 회원, 이화여대 연구교수), 오영진 (수유너머N 회원, 문화평론가)
□ 장소: 수유너머N 강의실
□ 회비: 12만원
제1강. 1827년 프랑스, 크롬웰 서문
: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문학이 도래하다
‘고전주의’라 불리던 문학의 정전에 대한 저항과 승리는 근대문학의 출발점이었다. 그것은 사멸하는 말에 대한 태어나는 말의 투쟁이었으며,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문학의 자기선포이자 권리주장이었던 것이다. 선언! 이로써 문학은 자신의 말을 승인받길 거부하고 스스로를 승인하는 주체로 일어선다. 빅토르 위고의 <크롬웰 서문>을 함께 읽으며, 근대문학이 탄생한 기원적 장면을 엿보도록 하자. (최진석)
제2강. 1909년 이탈리아, 미래파 선언
: 문학이여, 속도와 기계를 먹고 달려라
목가와 낭만을 노래하던 문학은 꺼져라! 최첨단의 문학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기계처럼 작동하며 태양에 발광하는 금속의 표면을 지닌다. 마리네티는 온갖 낡은 전통을 때려부수고 기관차처럼 돌진하는 철의 예술이 문학의 미래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그 미래의 끝이 파시즘과 겹쳐져 있었음을 마리네티도 예감했을까? 권력과 문학, 문학과 권력이 맞물렸던 기묘한 운명의 궤적을 목격해 보자. (오영진)
제3강. 1912년 러시아, 미래주의 선언
: 마야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푸슈킨,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는 모두 ‘현대’라는 배 밖으로 내던져 버려라! 문학은 얌전한 책상물림들의 몽상이 아니다. 문학은 예언이자 행위이며, 그 자체로 정치적 운동이다. 지금 우리를 가두는 모든 굴레를 문학이 파괴하지 못한다면, 그 따위 문학은 집어치워라! 달콤한 현실안주적 드라마나 원하는 대중에게 따귀를 올려붙여라! 볼셰비키와 미래주의의 결합, 또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영화같은 만남과 이별에 대해 들어보자. (최진석)
제4강. 1919년 식민지 조선, <창조> 창간사
: 쓸모의 문학과 아름다움의 문학 사이
구한말과 계몽기, 도대체 문학은 무엇을 했던가? 약육강식의 세계사 앞에 조선은 결국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문학이 무언가 쓸모있길 바라기 이전에 먼저 문학이 되길 소망해야 하지 않을까? 문학은 문학 그 자체로 무엇일까? 식민의 현실에서 스물을 갓 넘은 청년들은 문학을 문학으로서 우선 인식하고자 열망했다. 미적 대상으로서의 문학, 그것은 근대성을 억지로 삼켜내지 않고 꼭꼭 씹어 고스란히 이해하고 체화하려는 역설의 몸짓이 아니었을까? (오영진)
제5강. 1924년 프랑스, 초현실주의 선언
: 읽지 말고 감각하라
우리는 우리시대의 진리를 원한다. 현실을 낱낱이 분해해서 나열하려던 리얼리즘은 잊어버리자. ‘진짜’는 거기 있지 않다! 논리정연한 질서의 언어, 카메라에 포착된 팩트들의 현실이 감추고 은폐한 실재(the Real)는 감각을 통해, 우리 감각의 역설을 통해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실재로서의 진리는 현실 너머에, 의식 너머 무의식에 있으니까. 앙드레 브루통은 주장한다. ‘초현실주의’는 가시적인 사실보다 더욱 사실적인, ‘하이퍼 리얼리즘’에 다름 아니라고. (최진석)
제6강. 1974년 한국, 101인 선언
: 시여, 자유의 노래를 중단하라
1974년 11월 18일, 염무웅과 고은 등의 젊은 문학인들은 선언했다. 문학은 현실참여적일 수밖에 없으며, 필연코 그리하여야 한다고. 이른바 ‘문인 101인 선언’은, 그러나 발표되자마자 그 주체들이 곧장 체포되는 비운을 겪는다. 단말마의 비명같은 선언, 그것은 문학의 무력증일까? 그러나 살아있는 말의 힘은 선언을 통해 피어나고 맥동치기 시작한다. 70년대 내내 현실의 저항은 이 선언으로 촉발되었고 끊임없이 역동하는 힘이 되었음을 이 사건을 통해 확인해 보자. (오영진)
■ 강좌문의: 조지훈 010 6308 7223/ 고승환 010 5104 4088/정정훈 010 3942 0748
■ 접수계좌: 농협 312-0006-9222-71 (예금주: 고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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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사소개
최진석 수유너머N 회원. 러시아인문학대학교 문화학 박사. 이화여대 연구교수. 정통을 벗어난 ‘이단의’ 지식, ‘잡종적’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잡학다식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이 공부길에서 수유너머의 친구들이 (불)친절한 동반자들임에 늘 감사해 한다. 그렉 램버트의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 미하일 리클린의 해체와 파괴를 번역했고, 불온한 인문학 등을 함께 썼다. 오영진 수유너머N 회원. 문화평론가. 한양대학교 국문과에서 현대시, 그 중에서도 김수영에 집중해 공부했다. 현재 문학과 문화를 오고가며 강의와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언어와 신체, 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신체성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함께 썼고, 「거울신경세포와 서정의 원리」, 「김수영과 월트 휘트먼 비교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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