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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와 정치신학] 손기태선생님 인터뷰

인터뷰진행: 최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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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선 정치신학이라는 말이 아주 다른 두 단어가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정치는 대결이든 협상이든 아직 결론이 정해져 있지 않은 힘들의 진행 중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신학은 결론이 이미 나 있는 것이잖아요. 창조주 신과 창조물들 사이의 현격한 비대칭성을 바탕으로  그저 복종만이 있는... 그런데 이 두 단어가 어떻게 합쳐질 수 있나요? 우선 정치신학의 의미를 좀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A:정치신학이라는 용어는 독일의 칼 슈미트라는 법학자가 자주 사용하면서 대중화시켰는데요. 그는 근대 국가론의 주요 개념들이 모두 세속화된 신학 개념이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이를테면, 군주제를 지지하던 시대에는 초월적 유일신 개념이 지배적이었고, 계몽주의 이후 민주주의를 강조하던 시대에는 이신론(理神論), 즉 신을 초월적 존재가 아닌 세계 안에 내재하는 원리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대별로 국가 권력에 대한 의식은 당대의 신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20세기초 당시 법학자들이 주장하던 법치국가론의 허구적 중립성을 비판했는데, 이는 근대 정치의 한계와 위기를 ‘주권 권력’을 통해 돌파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에게서 정치란 하나의 단일한 주권을 확립하는 문제였는데, 여기서 주권자 자신의 의지와 결정을 주권 권력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보았습니다. 즉, 주권자는 법의 외부에 자리하면서 “예외상태를 결정짓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기독교의 유일신이 자신의 뜻과 의지에 따라 피조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와 같이 법의 외부에서 법을 중지 또는 폐지시키거나 아니면 새로 만들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근본 문제라고 본 것입니다.

 

Q:  현대 정치철학자들이 다시 신학을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계몽의 시대에 신학은 이미 낡은 옷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A: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은 근대 정치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에게서 해결책이 ‘주권적 독재’, 즉 파시즘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구요. 정치철학자들마다 신학에 주목했던 이유가 서로 다르기는 합니다. 발터 벤야민의 경우에는 칼 슈미트의 근대 정치비판을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넘어서기 위한 사상적 자원을 ‘신학’에게서 얻고자 했습니다. 질문하신 대로, 오늘날 계몽주의 이후의 시대에 신학은 벤야민의 표현처럼 ‘늙고 추한 꼽추 난장이’가 되어버렸지만, 그 안에서 ‘계몽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해 주는 아주 ‘낯선’ 사유의 전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벤야민은 칼 슈미트의 ‘예외 상태’ 개념을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진정한 예외상태’로 바꾸고자 했고, 여기에는 신학의 ‘낯선’ 사유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는 또한 근대 계몽주의와 역사주의의 한계에 놓여 있던 기존의 맑스주의를 새롭게 혁신하려는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데리다나 지젝, 바디우 등도 벤야민의 이러한 문제의식을 각기 자신들의 방식대로 이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메시아라는 말이 주는 불편함은 아무래도 지금/여기에 사는 자들을 수동화시키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심지어 혁명일지라도 말입니다. 메시아는 중요한 강의 주제가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조금 이야기 해 주신다면?

A:이번 강좌에서 사용되는 ‘메시아’라는 단어는 신학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낯선’ 사유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성서에서 ‘메시아’는 서로 상반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요. 국가를 상실한 고대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아는 옛 질서를 회복시킬 ‘초월자’를 의미했지만, 한편으로 옛 질서를 중단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는 ‘낯선’ 존재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옛 메시아 개념을 해체하는, 즉 메시아에 반(反)하는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옛 메시아 개념이 우리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도록 만드는 존재를 가리킨다면, 성서 안의 낯선 사유의 전통 속에서 접하는 ‘메시아’ 개념은 우리 자신을 새로운 주체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사건’을 가리킵니다. 데리다는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지요.

 

Q: 저는 서양 사람들의 뇌리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깊숙이 기독교적인 사유가 자리하고 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기독교는 문외한인 저에게 그것은 일종의 장벽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바울을 공부하면 현대 정치철학의 텍스트들이 좀 더 잘 읽힐 수 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기대해도 되는 것일까요?

A: 말씀하신 것처럼, 서구 사상사에서 바울은 매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단 기독교 신학에서만이 아니라, 중세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오늘날의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바울의 사상은 깊고도 넓게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그런데 현대 정치철학자들이 독해하는 바울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면모의 바울입니다. 바울에게서 이른바 ‘메시아적 사유’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존재론, 진리 개념, 주체, 윤리 등 기존의 서구적 전통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유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현대 정치철학자들이 바울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현대 정치철학을 이해하는 데 아주 핵심적인 사상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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