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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작년 말 튀니지에서 처음 시민들의 ‘반역’이 시작되었을 때만해도 한국인들의 반응은 그리 진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잊을 만하면 간간이 이어지던 ‘그 동네’의 작은 소요라는 생각이 대부분이었고, 이런 인식의 나이브함은 국내 언론이 ‘반정부 소요’나 ‘무질서 상태’라고 묘사할 때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이 흐름이 점차 아랍권 전역으로 널리 확산되어, 무바라크의 퇴진을 이끌어내고, 카다피를 끝장낼 정도로 진행되고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현실감을 얻게 된 듯하다. 인터넷 뉴스는 트리폴리에서 날아온 속보로 가득차고, 기민한 블로거들은 다양한 경로로 입수한 현지 사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다. 진정 ‘아랍의 봄’이 찾아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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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땅에서 벌어지는 민주화와 혁명의 불길에 어떻게든 말 한마디로라도 거들고자 하는 열혈 블로거들, 누리꾼들의 활약을 보면서, 침묵에 잠긴 대학의 인문학을 고민해 본다. 물론,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는 인문학자들이라고 왜 역사의 격변에 관심이 없겠느냐마는, 실상 삼삼오오 모여 하루의 진전에 관해 논평하는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귀청을 울리는 ‘한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게 현실이다. 강의와 세미나, 글을 통해 현실 개입적인 말과 사유를 펼치기 전에 먼저 ‘전공’을 따지고 ‘전문성’을 가늠하며 ‘자격’을 검증하는 게 인문학의 관성인 탓일까? “리비아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자네 정치학이 전공인가?” “아닌....데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실제로 현재 대학에서 양성되는 인문학은 혁명에 인색하다. 인문학은 인문학으로서 소임이 있다는 주장이 그렇다. 인문학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 그 일희일비(一喜一悲)의 순간들로부터 벗어나, ‘더 멀리 더 깊게’ 바라봄으로써 사회의 심층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어진 인문학의 소임은 새롭고 참신한 가치를 창출하고 현실에 유용한 교양이다. 하지만 인문학이 현존 질서를 조금이라도 건드릴라치면 금세 경고장이 발부된다. “학문은 학문답게,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라”는 것이다. 인문학이 학문으로서 갖는 위상과 자격은 그것이 현실에 봉사하되 현실 자체로부터는 한 걸음 물러서는 데서 나온다고 한다. 뭔가 이상하고 모순된 소리지 않은가? 현실에 도움을 주는 한에서, 현실에 무관한 한에서만 학문일 수 있다니? 만일 그 ‘현실’이 기성의 질서와 가치관, 지배 체제를 뜻한다면, 이 말은 일관성을 갖는다. 거꾸로 말해, 현재를 지배하는 가치와 통념에 봉사하지 못하는 인문학은 인문학의 자격이 없다. 4대강이 얼마나 국가에 유익한지, 국민 생활을 증진시킬 수 있는지를 논하는 인문학이라면 좋다! 하지만 그게 국토를 망치고 민중을 도탄에 빠지게 만든다는 식으로 말할 테면 퇴출이다! 인문학이 삼가고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당차게 말한다. 인문학의 본령은 원래 현실 개입적이었고, 혁명적이었으며, 따라서 지금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비판의 칼날을 벼려야 한다고. 옳은 말이다. 인문학이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나 가치는 현실의 파도를 건너는 ‘우아한 유람선’이 아니라, 현실을 날카롭게 찌르고, 우리의 안온한 일상을 흠집 내고 피가 날 정도로 벨 정도로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야 진정 ‘새롭다’고 할 것이다. 인문학의 혁명성을 말한다면 아마 그런 것일 게다.

 

 

그런데 실제로 인문학의 역사를 보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인문학은 그런 ‘불온’하고 ‘위험’한 역할을 맡은 적이 별로 없다. 오늘날 ‘인문학’이라 번역되는 ‘humanities’나 ‘philology’는 기실 혁명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르네상스 전후로 사용되었던 전자는 중세기의 ‘자유 학문’을 대체하는 것들이었고, 후자는 19세기말의 고전학 연구 경향을 일컫던 것들이다. 오히려 현대의 인문학은 국가가 사회를 일률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지적 강제의 도구로서 발달되었다. 부랑자와 거지, 도둑, 반사회적 일탈자, 비정상인 등을 ‘정상인’으로 만들어 ‘정상적인 삶’을 부과하고 나아가 ‘국가의 정상화’를 위해 스스로 헌신하게끔 개조하려는 목적으로 고안된 장치였던 것이다. 치안을 위해 작동하는 훈육·통제 장치, 그것이 현대 인문학의 기원이며 영토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인문학에서 혁명을 기대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오늘날의 인문학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렇게 다져진 영토를 떠나는 것, 책장을 벗어나 거리로 나가려는 충동이 아닐까?

 

 

나는 인문학을 공부함으로써 견고하게 나를 결박하고 있는 현실로부터 당장 탈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문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매력에 빠져들면서 동시에 커지는 위험은 현실을 방기한 채 텍스트의 쾌락에 젖어버리는 일이다. 혁명을 종이 위의 글자로 만들고, 날마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친구와 가족, 타인들을 인간(人間)이라는 추상 속에 가둬두는 일이다. 인문학의 효용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는 그만큼 온순해지고 순응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인문학에 절망이 있다면, 그것은 인문학이 인문학으로 고이 남겨진다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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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의 군중들, 트리폴리의 시민들을 일어서게 한 것은 그들에게 인문학이 모자라거나 과도해서가 아니었다(수천 년 누적된 아랍의 방대한 문헌학적 전통을 고려할 때 그들이 무지몽매하다고 비웃는 자들은 자는 본인의 무교양부터 부끄러워할 일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거리로 이끈 것이 순수하게 생계에 대한 절망만은 아닐 것이다(그런 나이브한 인식 따위로 아랍 민중을 모욕하고, 혁명을 폄하하지 말도록 하자!). 인문학은 인문학이다. 종이 위의 전통, 텍스트의 쾌락. 맞다! 그들에게, 나아가 우리에게 인문학이 의미와 가치를 갖는 것은, 인문학이 그것의 영토를 떠날 때, 묵독(黙讀)의 자아도취를 벗어날 때, 거리에서 울리는 목청이 될 때다. 아니, 적어도 거리를 바라보고, 거리를 욕망할 수 있을 때다. 그래서 학문이 아닌 인문학, 인문학이 아닌 인문학이 될 때다. 과거에 인문학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은 인문학이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인문학이 더욱 두려워해야 할 것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이 인문학으로 남는 것이다. 묘비의 인문학. 돌 위에 새겨진 글자는 죽은 자의 이름을 가두는 감옥일 테지만, ‘짱돌’이 되어 던져지는 문자는 혁명의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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