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미나자료 :: 기획세미나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토요인문학 시즌2-1 프로이트] 9강 후기

진규 2017.06.30 15:59 조회 수 : 649

 

안녕하세요 이규진 입니다. 9강 후기 들어갑니다ㅎㅎ

 

 

저는 항상 메모를 위해 수첩을 가지고 다닙니다. 예전에 쓰던 수첩 중 하나를 펼쳐보다가 낙서 하나를 봤습니다. 대충 그려진 것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 한 가운데를 표현하려했던 것 같습니다. 의지할 곳이라곤 두 팔로 감싸 안을 수 있는 작은 부표뿐입니다. 그 부표의 고깔처럼 생긴 부분을 끌어안고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는 제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어쩐지 그림 속의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안의 목소리들에게 시달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듭니다. 어떤 목소리는 바닷물 때문에 피부가 따갑다고 짜증을 부릴 것이고, 또 다른 목소리는 몸이 여기까지 떠내려올 때까지 뭘 했냐며 타박을 하기도 하고, 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자리만 맴도느냐고 저를 비난하기도 할 겁니다.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억울하다고 하소연 해보지만 망망대해니 아무도 들어주지 않겠지요.

처음엔 목소리들이 시키는 대로 팔도 내저어보고 발버둥도 쳐보고, 부표에 바짝 매달려보기도 하겠지만, 어느 순간엔 지치고 맙니다. 잔소리도 계속 듣다보면 질리니까요.ㅎㅎ 에라, 모르겠다. 네들은 떠들어라. 난 그냥 다 관둘래.

 

프로이트 강의를 거듭하면서 익명이랍시고 제멋대로 떠들어 대던 목소리들에 이름표를 붙여준 기분입니다. ‘이드, 자아, 초자아’ 라고 말입니다ㅎㅎ

 

부끄럽지만 처음엔 프로이트가 죽음충동을 설명하는 데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 걸 보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프로이트는 죽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나? 아니 왜 그 마음을 모르지?’ 제 안에 유독 입이 거친 친구가 있는데, 걸핏하면 저한테 “쓰레기”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 친구입니다. “너만 왜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냐.”, “와 진짜 써놓은 거 봐라. 스토리 진짜 허접한데?ㅎㅎ 오늘하루도 알차게 알찬 쓰레기가 되었구나!” 이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죽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오다보니, 죽음충동이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 이런 경우를 두고 나온 개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궁금해 했던 것은 사람을 정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충동이었겠지요. 스스로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로 죽고 싶어서 죽고 싶다고 말 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속마음은 ‘잘’ 살고 싶은데 뜻대로 안 돼서 한 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제게 엄격하게 구는 목소리, 이제는 초자아라고 부를 수 있겠군요. 초자아는 정말 입바른 소리만 합니다. 반박하면 돌아오는 건 게으름뱅이 취급뿐입니다. 이전에는 그 입바른 소리에 끌려 다니며 그가 요구하는 것을 해내지 못하는 저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알고 보면 초자아가 요구하는 것들은 타인의 욕망으로 이루어진 것들인데 말입니다. ‘보란 듯이 성공할 거야. 일등이 될 거야.’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꿈은 (초자아가 요구한) ‘해야 하는’ 것들이 비계처럼 덕지덕지 끼어 본래의 생김새를 잃은 것 같습니다.

 

전 머리를 써야 할 일이 생기면 단 것부터 찾습니다. 단 걸 먹고 나면 입 안이 텁텁합니다. 처음 한 입 베물 때의 만족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등을 돌려버리지요. 언제나 뒷일은 제 몫입니다. 입 안에 기분 나쁜 끈끈한 침이 남는 것도 그렇고 이가 썩는 경우도 모두 제가 감당해야하는 일이지요. 충동이 시키는 대로 따라봤지만 만족의 순간은 너무 짧고, 그 뒤에 딸려오는 뒷일들만 긴 시간 동안 저를 성가시게 합니다. 행동한 건 저 자신이지만 어쩐지 배신당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아요.

“쾌락의 대상이 완전히 달아 없어질 때까지 빠는 것, 그것이 주이상스다.”

문득 이런 생각이듭니다. 사카린 같은 인공 감미료는 어쩌면 사람이 끝없이 만족을 갈구하고 있기 때문에 발명된 것이겠구나 싶습니다. 모든 화학물품이 그런 것이겠군요. 영원히 상실한 대상 a를 찾는 여정에서 사람은 끝내 만족하지 못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로는 그 많은 사람들의 만족을 달래줄 수 없겠지요. (예가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동물을 때려잡아 만든 코트를 입을 수 없으니 합성수지가 필요한 것일 테고, 당나귀를 채찍질해서는 달에 갈 수 없으니 석유가 필요하겠군요. 사람이 끝끝내 대상 a를 찾는 여정을 계속한다면 한 사람 당 지구 하나씩을 안겨줘도 부족하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여담이었습니다.

제가 책임질 수 있는 선을 넘기 시작하면 쾌락이 고통스러운 쾌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충동에 따라 행동한 뒤에는 언제나 후회가 따랐습니다. 약아빠진 선택을 해도 이득을 보지는 못하고 오히려 들통 나서 역풍을 맞는 편인 것 같습니다. 이득은 없고 후회와 자책만 따라오니 충동이 시키는 대로는 따르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해두는 편이었습니다. 저에 대한 비난이 일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르면 허전한(?).

아무리 초자아가 비난을 해대도 충동은 따를 수밖에 없는 힘이 있습니다. 저질러놓고 후회하고 자책하는 일의 반복입니다.

 

 

 

이제는 자아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욕망의 건축물을 구성하고 있는 기둥들이 얼마나 초라한 환상에 근거한 것인지 직면하도록 해야 한다” 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위로를 느꼈는지 모릅니다. 제 처지는 망망대해 위에서 혼자 말하고 혼자 듣는 것과 다를 바 없었어요. 게다가 그 와중에도 대게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비난받는 것이다 보니, 초자아의 주도 아래 자아는 한껏 위축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비난하고 압박하던 초자아의 요구가 타인의 욕망, 상징계의 환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위로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당연하게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때로는 따르지 않으면 제 전부가 부정당하는 것인가 싶었는데 말입니다. 초자아가 안겨주던 죄책감도 마땅히 치러야 할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었습니다. 초자아는 10년 전 일일지라도 죄책감을 불리고 불려서 안겨주는 타입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자아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주고 조심스럽게 흥정을 시도해볼까 합니다.

‘초자아의 주소는 무의식, 정체는 타자의 언어, 승질머리는 원래 가혹함’ 채찍을 쥐고 있는 쪽의 정체를 알게 되니, ‘비난은 좀 넣어두라고, 네가 요구하는 것들이 전부 꼭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고’ 받아쳐낼 용기가 생깁니다.

신해철-‘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그 노래에서 그렇게 많이 물어오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는 그런 의미였나 봅니다. 꼭 일등하고 출세하는 것 말고도 단맛 보는 것 말고도 하고 싶은 게 있었을 것 같은데, 숨죽이고 맞기만 하던 자아를 위로해줘야겠습니다.

 

두서없게  쓴 것 같아서 올리지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올립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2북클럽자본 :: 자유의 파토스,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1] oracle 2022.12.22 212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0니체세미나 :: 비극의 파토스, 디오니소스 찬가 [2] oracle 2020.12.21 384
공지 [에세이자료집] 2019니체세미나 :: 더 아름답게! 거리의 파토스 [2] oracle 2019.12.19 690
880 [북클럽지본_후기] 5권(4~5강) 생명을 짜넣는 노동 [2] 손현숙 2022.08.03 134
879 [북클럽자본_발제] 5권(5~6장) 생명을 짜넣는 노동 [1] 중견요가인 2022.07.28 47
878 [북클럽자본_후기] 5권(1~4장) 생명을 짜넣는 노동 [2] 중견요가인 2022.07.25 70
877 [북클럽자본_발제] 5권(1~2장) 생명을 짜넣는 노동 손현숙 2022.07.21 58
876 [북클럽자본_발제] 5권(3~4장) 생명을 짜넣는 노동 [2] 드넓은 2022.07.20 94
875 [북클럽자본_후기] 4권(3~5장) 성부와 성자 ... [1] 바다 2022.07.11 77
874 [북클럽자본] 저자와의 대화_질문지 oracle 2022.07.11 65
873 [북클럽자본_발제] 4권(3~5장) 성부와 성자 ... [2] file 사이 2022.07.07 121
872 [북클럽자본_후기] 4권(1~2장) Life First, Labor Last [2] 사이 2022.07.05 167
871 [북클럽자본_후기] 3권(5~6장) 화폐라는 짐승 [1] file 먼지 2022.06.30 111
870 [북클럽자본_발제] 4권(1~2장) 성부와 성자 [1] 바다 2022.06.29 126
869 [북클럽자본_후기] 3권(1~4장) 화폐라는 짐승 [5] 해돌 2022.06.28 103
868 [북클럽자본_발제] 3권(5~6장) 화폐라는 짐승 [2] 해돌 2022.06.22 157
867 [북클럽자본_발제] 3권(1~4장) 화폐라는 짐승 [3] file 먼지 2022.06.16 120
866 [북클럽자본_후기] 2권(4~5장)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2] 용아 2022.06.12 85
865 [북클럽자본_발제] 2권(4~5장)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김진완 [5] 에이허브 2022.06.08 141
864 [북클럽자본_후기] 2권(1~3장)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김진완 [2] file 에이허브 2022.06.03 108
863 [북클럽자본_발제] 2권(1~3장)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2] file 용아 2022.06.01 161
862 청인지12_몸페미니즘_에세이_도윤 도윤 2022.05.28 68
861 청인지13몸페미니즘_에세이 [1] file Siri 2022.05.28 8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