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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결과순결

아포리아님의 훌륭한 후기 덕분에 지난 세미나 시간이 머리 속에서 다시 반복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 (이것도 영원회귀일까요? 근데 땀이 나는 건 또 왜일까요? ^^;)

 

아울러 오라클님의 답글 또한 저로 하여금 많은 반성을 하게 하구요.

제가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제가 세미나 시간에 언급한 내용 중에 복종이 내면화된 사람 그 자체로 자기극복이 된다고

언급한 기억이 없음에도 그 부분만을 강조하시는 오라클 님의 글 속에

아! 어쩌면 나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닌데, 내가 한 언어의 표현의 한계가

그런 반응을 이끌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한번 저의 생각을 아포리아님과 같이 차분히 정리해볼까 해요.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려볼게요.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자기복종이 내면화되어 있는 사람의 현상태가

바로 자기극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타자의 명령이 아닌 자신의 명령으로 '대체'할 수만 있다면,

이사람은 명령에 대해 복종 - 이때의 복종은 '자기훈련적 측면'을 의미합니다. - 의

훈련이 되어 있기에 더욱 자기극복에 이를 가능성이 더욱 있다는 것을

니체는 설명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겁니다.

 

즉 저는 니체가 이런 말을 우리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너희는 그동안 도덕과 신앙의 명령에 충실히 수행하고 자신의 본능을 억제하며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스스로 훈련해온 사람이 아니더냐.

이제 너희에게 명령을 내려왔던 도덕도, 신도 모두 죽었다.

이제는 너희 안의 군주를 스스로 깨워라.

너는 '기만'을 통해 타자의 명령을 자기 명령으로 바꿀 정도로

'명령'에도 약간의 재주가 있는 이들이 아니던가.

 

네 안의 새로운 군주를 깨울 수만 있다면

너의 복종능력은 다른 어떤 이들보다 너 자신의 명령에 충실할 것이다.

나는 너희 도덕의 인간들에게서 '이러한' 미래철학자의 숨은 가능성을 본다."

 

글을 쓰다보니 세미나 시간에 타자의 명령을 [자기명령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이라는

저의 표현이 혹시나 타자의 명령을 자기내면화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것인가?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부디 이 추측이 맞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ㅎㅎㅎ)

 

저는 이번 선악의 저편을 읽으면서,

니체가 이제까지 전작들에서 주장해 온

모든 형이상학(도덕, 종교, 예술, 경건한 그 모든 것)들이 근거없다고,

이제 스스로 극복하라고 말해온 것을 넘어서

독자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니체가 제시하는 실천할 수 있는

첫출발점을 잡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요.

 

무엇이든 첫번째 단추, 첫번째 걸음, 첫번째 시도만 해낼 수 있다면

니체가 말한것과 같이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선악의 저편에 가 있을 수

있다는 그 말을 한번 믿어보고 싶거든요.

 

다시 오라클 님의 댓글로 돌아와, 오라클님이 스스로 명령하라는

니체의 조언에 집중하셨다면,

저는 우리 안의 복종능력을 어떻게 하면 나의 극복요소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강조한 차이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다시한번 반복해서(부디 마지막이기를.......ㅠ.ㅠ)

타자의 명령에 대한 충실한 복종자세 그 자체는 어떤 경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자기극복에 이르지 못함을 어찌 제가 모르겠습니까?

 

타자의 명령을 자기의 명령으로 '치환'할 수 있는 것, 그것에 스스로

복종하는 나의 능력을 믿고 우리는 나아가자는 겁니다.

 

다 써놓고 보니 오라클님과 저의 주장이 무슨 차이가 있었던 것인지

저 스스로 무감해지는데......오라클님은 어떠신지요? ^^

 

마지막으로 고병권님의 다이너마이트 니체의 일부분을 인용하며 마칩니다.

p210입니다.

'그렇다면 희망을 어디에 걸 것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희망을 붙잡아야 하는가?

앞서 장들의 마지막 절에서처럼 니체는 새로운 희망의 주체를 호명한다.

그 주체의 이름은 '우리, 다른 신앙을 가진자들이다.

현대성이 하나의 도덕이고 하나의 종교라면 우리는 극복도 도덕과 신앙을 통해 열어야 한다.

이것이 니체가 여러차례 강조하는 자기극복이다.

도덕에 의한 도덕의 자기극복, 신앙에 의한 신앙의 자기극복

 

아울러 즐거운 학문의 한 구절을 인용해요.

'그대들 이주자들이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면 그대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 또한

신앙일 것이다.' 

 

좋은 밤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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