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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_후기] 다이너마이트 니체 2,3장 (9월16일)

엇결과순결 2019.09.17 18:47 조회 수 : 97

아! 미칠것만 같다. 목선반 수업이 늦게 끝난 것도 모자라 내려야할 곳마저 지나쳐 버리다니!

니체 세미나 시간에 30분이나 늦어버렸다. 어쩌지? 난 오늘 밥당번인데......쟈스민이 배고프다는데?

음......피자를 시키자! 어서!어서! 가야한다. 그리 기다려온 세미나 아니던가?

 

(1) 오늘의 첫 번째 화두는 ‘정직’이다.

니체의 정직. 그답다. 내가 알아오던 그런 정직이 아니다. 솔직함 또는 거짓이 없다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정직이었다.

그런데 그는 아니란다. 나의 진리를, 나의 양심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 그것이 정직이란다.

나의 예감은 이제 ‘정직’이 니체의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임을 직감한다.

오늘은 반드시 정직을 끝까지 파헤치리라. 오늘 세미나의 승부처다!

 

왜 정직이 중요할까? 니체 철학의 핵심은 ‘자기변신’이다. 내가 만날지도 모를 또다른 나를 만나기위한 움직임 그리고 준비.

그 변신의 과정을 끝까지 밀고나가는 힘 또는 운동, 그것이 정직이 아닐까?

끝까지 추적을 한다는 것, 그것은 그 과정에서 뭔가 강력한 반작용, 저항을 만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나의 변신을 막는 것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기본 태도, 그것이 정직이 아닐까?

 

나의 변신을 막는 반작용은 무엇이 있을까? 종교, 도덕, 규범, 의무, 희생 등등......

그러나 어쩌면 가장 강력한 반작용은 나 자신이 아닐까?

나의 생각과 기준들의 토대를 지키려고 하는 본능 또는 습관이야말로 나의 가장 강한 적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직은 나를 의심하고 끝까지 파헤쳐서 현재의 내가 아무 근거없음을 스스로 깨닫는 힘과 그 과정이 아닐까?

 

니체는 전쟁터를 잘 고르라고 했다. 내가 목숨을 걸고 싸울만한 적수를 잘 찾으란다.

그만한 대상이 아니라면 차라리 숨어서 조용히 그 곁을 지나치라고. 그렇다면 역시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적수로 삼으련다. 내가 믿고 있는 진리와 싸우련다.

부디 그 진리가 나의 도전을 잘 견디어 주길 바란다. 이제 이해가 되는 말.......‘너는 얼마나 많은 진리를 견딜 수 있는가’

 

돌이켜본다. 그간 나의 진리는 무엇이었을까?

가구는 빈틈없이 완벽한 결구를 가져야 한다. 디자인은 나만의 것이어야 하며, 완벽한 마감을 지녀야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약 4년간 온갖 노력을 다했다. 나의 미래를 오직 이 믿음에 걸었어야 했으므로.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의심 하나. 이런 믿음조차 그저 나의 강박이 아닐까? 빈틈없는 가구는 고유한 존재이유였는가?

정말 그런가?

가구라는 것은 본래 인류가 정착을 하면서 가장 손쉬운 재료인 나무를 이용하여 생필품을 만들어 써온 것이었다.

자기 삶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 쓰던 것이었다는 것. 그럼 언제부터 우리는 ‘잘’ 만들어야 했을까?

그 쓰임이 타인에게 주어질 때 그리고 그것이 자본으로 환원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잘’ 이라는 기준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내가 잘 만들어야 한다는 그 기준은 역시 자본시장의 논리 아래서만 타당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시작된 의문은 지난 몇 년간 나를 괴롭히는 힘이었다. 이 의문의 스스로의 해답을 찾아 그린우드워킹, 목조각 등

여러 가지 다른 분야의 체험을 하고 있다.

요즘 곁에 있는 동료들이 자주 해주는 말. 현승씨 요즘 선에 대한 집착이 많이 누그러진 것 같아. 이제 좀 인간다와 보여.......

나의 진리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다.

 

(2) 영원회귀, 우리는 무엇을 회귀시키는가

아! 나와버렸다. 니체철학의 끝판왕! 영원회귀......지독히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지금도 이해한 듯 하다가도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만 하면 다시 헷갈려하는, 그 주제가 등장했다. 긴장된다. 이걸 또 어떻게 토론해야 하나? 남들은 잘 이해하고 있을까?

 

정신차리자! 시작부터 공격이 심상치않다.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나? 저들은 이미 나보다 훨씬 깊이 그리고 높이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를 그대로 둔 채 우리가 영원회귀를 어떻게 긍정할 수 있는가? 차이의 긍정만이 도래하는 미래를 긍정하는 열쇠가 아닌가 하는 저들의 말.......

아니 이럴수가! respect!!!!!

 

과거는 과거가 아니며, 현재 경험되고 있는 감정이다. 우리는 그 과거를 현재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가.

나는 이미 수백번 과거의 그 일을 떠올리고 있다. 매번 결과는 불쾌감이었다. 나는 매 순간 불쾌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것을 긍정하는 방법은 있을까? 노하우라도 있으면 좋겠다!

 

니체가 힌트 하나를 준다. 진리를 대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복수심만은 안된다. 복수심은 나의 진리에 순교하려는 힘을 가지게 하며, 이를 위해 나는 연기하는 배우가 된다.

차라리 냉소적이 되어라! 차라리 냉소주의자의 힘을 빌려라! 정말 변하고 싶거든 ‘냉정’해져라!

 

나는 나의 과거를 복수심으로 대했던 것은 아닐까? 그 과거에 대해 나의 믿음(나만이 옳았다는 생각)을 지키기 위해

그 생각에 나의 모든 역량을 바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차라리 냉정해지자.

다시 그 과거의 순간을 내려다본다. 나를 놀리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그들에게 나의 열정과 의욕을 과시하고 있는 내가 있다.

그 열정과 의욕이 다른 관점에서 보인다. 그때의 나는 어렸다. 내게는 열정이었지만 지금의 내가 보면 아직 치기어린 욕정일뿐이다.

그런 욕정을 눈치채버린 그들이 보인다. 그들은 그런 나를 놀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보인다. 그 순간 그들에게 순진무구한 욕정으로 자신을 불태우고 있는, 적어도 그 순간 나의 믿음에 정직했던 한 아이가 보인다.

그랬다. 과거의 나는 그 순간의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들도 그들의 감각과 믿음 속에 최선을 다한 것이었으리라!

이제 비로소 차분해진다. 그들도 그리고 과거의 나도 이해가 된다.

처음으로 와이프에게 말한다. 지난 3년간 나 사실은 이런 우스운 그러나 충분히 괴로웠던 생각들이 있었어. 좀 우습지?

억지로 꾸며서도 아니고 그냥 우스운 일화가 되어 고백하게 된다. 이제 과거의 많은 일 중 겨우 하나와 화해를 한 것 같다.

 

과거를 모두 긍정하게 될 때, 비로소 현재의 내가 긍정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 때 비로소 도래할 미래를 긍정하는 마음으로 대할 용기가 생길 것 같다.

이 모두가 하나의 게임이 아니던가! 그저 유희의 과정이라는 가벼운 마음, 용기, 미소가 내게 번지기를 기도한다.

 

(3) 나는 나를 믿는가

Perspective, 관점이란 무엇인가, 매번 세미나가 시작될 때마다 오라클이 침을 튀며 신나서 설명하는 그것.

들을 때마다 알겠다 싶다가도 읽을 때마다 각감과 생각이 바뀌는 단어. 적어도 내게 Perspective는

니체를 이해하는 또하나의 열쇠이자, 내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오늘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니체는 종교적 인간을 설명한다.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따른 분류, 종교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따른 분류 등.

이번 챕터를 읽다가 갑자기 들어온 생각 하나.

어쩌면 니체는 우리 모두 종교적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erspective라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이라지만

그 진짜 의미는 나로 하여금 세상을 살아가도록 믿고 판단하게 하는 기준이라면?

나의 관점은 그 순간은 적어도 내게는 종교와 같은 것이 아닐까?

종교는 믿음을 기초로 한다. 그렇다면 나의 관점은 나에게는 믿음이며 진리인 것이다.

정말 귀한 것은 바라보기만 해서는 움켜쥘 수 없다.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나의 관점은 태평하게 한발 떨어져서 관조하듯 관찰해서는 얻어질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생존조건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토록 중요한 것을 어찌 나의 전부를 바치지 않고 얻을 수 있을까?

 

정직의 자세를 가지고 끝까지 실험하고 시도하고 그 끝에 얻어낸 관점......

그리고 그런 관점이 유일한 것이 아니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

지금도 계속해서 관점을 만들고 생성해 나가고 있는 사람.

 

우리를 모험의 바다로 나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끝에는 보물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어서?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 모험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 알수는 없다.

그저 그 모험이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그리고 더 만족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이점에서 우리 모두는 종교적 인간이다.

 

돌이켜보니, 내가 미래 앞에서 불안에 떨고 우울해졌던 때는 내가 미래를 알고자 했던 때였다. 알아야만 했다.

확신에 차서 계획하고 실천해야 했다. 그래야 불안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운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코 인식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불안했던 것이다. 알아야하는데 몰랐으므로.

미래에 희망에 찬 의욕으로 충만했던 때는 그저 순진하게 믿었을 때였다.

누가 물어도 설명할 방법이 없지만 그저 막연한 믿음으로 혼자 조용히 웃음짓던 그 때 나는 비로소 믿고 있었음을 알게된다.

믿음에는 어떤 논리도 없다. 논리의 영역이라면 그것은 인식의 대상이겠으나. 믿음은 비논리의 영역이다.

차라리 충동과 욕망의 영역일 것이다.

이것을 누구에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특히 나 자신에게!

 

(4) 이제 또다른 한 주를 시작하며

내게는 한 주의 시작과 끝은 니체 세미나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월요일 저녁 세미나를 끝내면 비로소 한 주가 시작된다.

이번 한 주는 또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차지할까? 영원회귀일까? 나의 믿음에 대하여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것도 하나의 믿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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