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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세미나] 6주차 후기

 

 

 

우리는 그간 기형도 시인의 미발표작(습작기에 쓴 작품들)을 함께 읽었다. 등단과 미등단의 경계를 지워버리면서 시인이 시를 써온 과정, 그의 역사를 따라가 보는 재밌는 경험이었다. 오랫동안 기형도 연구를 해오신 튜터님과 그가 자란 동네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시는 나무님 덕분에, 시인의 유년에 어떤 장면들이 채워져 있는지 상상해보고 질문해볼 수 있었다.

이 습작 시기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아이야 어디서 너는>이었다. 이 시의 화자는 아버지이며 죽은 아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이 시를 썼을 때 기형도 시인은 나와 비슷한 나이였는데도,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단지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화자에게 자신의 육체를 내어준 것처럼 생생하게 말한다. 그는 누이의 죽음을 기점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습작기에 다양한 화자와 형식을 실험하며 죽음에 관하여 어떻게 말할지를 훈련했다. 그리고 그 훈련과정을 따라갈 수 있었기에 그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다다랐을 때, 한 문장 한 문장이 보다 깊숙이 들어왔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입 속의 검은 잎>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한 시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한 주에 읽기로 한 분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튜터님을 비롯한 세미나원들은 서두르거나 무엇 하나 지나쳐 가지 않는다. 원고를 들고 다니면서 서두르는 법 없이 수시로 시를 고쳤던 기형도처럼, 우리도 그의 시를 최대한 공들여서 천천히 읽고 있다. 튜터님은 한 분 한 분 이름을 불러가며 최대한 많은 분들에게 골고루 질문을 던져주시고, 모두가 서로의 말을 끝까지 귀 기울이며 경청해주신다. <포도밭 묘지 1,2>와 같이 어려운 시는 함께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 공들여서 읽지 못했을 것 같다. <조치원>이나 <전문가>와 같은 시는 이전에 몇 번씩 시집을 읽으면서도 그냥 지나치거나 주목하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이번에 완전히 새롭게 기형도를 읽어보자고 다짐을 했으면서도, 나는 습관처럼 또 지나치고 말았다. 그러다 튜터님이 콕 집어서 그 시들을 언급해주셨을 때,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더 열심히 읽어볼 수 있었다.

혼자 읽는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들이 있다. 누군가 그런 것을 끄집어내어 내 앞에 던져줄 때 함께 읽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 6주차를 끝내고 7주차의 시들을 읽으면서, 다른 세미나원들이 어떻게 읽었을지 기대가 된다. 나는 6주차에 시집과 함께 읽었던 <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의 한 단락, ‘기형도가 극장의 시선을 통해 기억을 재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해설이 가장 흥미로웠고, 그래서 6주차에 읽었던 시들을 계속해서 다시 읽어보았다. 튜터님의 말씀처럼 읽을수록 더 어렵고 대답 없는 질문이 쌓여가지만…… <종이달>의 첫 문장, “과거는 끝났다”가 왜 이렇게 아프게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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