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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물론 개념과 역사]                                                                                                                                           2023.12.06.(수) 

 

박준영, 『신유물론, 물질의 존재론과 정치학』, 서울: 그린비, 2023.

 

5장 새로운 세대들의 분투

3. 토머스 네일

이희옥

 

(1) 초월론적 실재론과 과정 유물론

◆‘초월론적’의 의미

수행적 신유물론의 총괄이라고 볼 수 있는 토머스 네일의 존재론은 운동적 존재론 또는 운동적 유물론(kinetic materialism)으로 정의할 수 있다. 칸트의 ‘초월론적’을 들뢰즈처럼 실재하는 것의 근거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네일은 자신의 운동론이 초월론적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소적’이고 ‘영역적’인 이론에 한해서라고 밝힌다. 네일은 모든 역사 내내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의미에서 ‘초월론적’이라는 의미를 다시 정의한다. (1) 초월론적인 것은 가능성의 조건이 아니다. (2) 초월론적인 것은 경험적 조건이 아니다. (3) 초월론적인 것은 보편적 조건이 아니다. (4) 초월론적인 것은 관념론적 또는 주관적 조건이 아니다. (5) 초월론적인 것은 실재적 조건이다. (6) 초월론적인 것은 동적이다. 동적인 것은 관계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때 초월론적인 것은 사물-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분배하는 동적 과정이고 사물에 내재적이지만 사물 혹은 지각체계로 환원할 수 없다. 이처럼 초월론적인 것은 환원 불가능한 얽힘이라는 관계양상을 가지므로 선험적이지 않으며 단지 역동적 과정에 내재적이고 창발적인 물질적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의 수용

네일의 운동적 유물론의 핵심은 언제나 ‘운동-중-물질’(matter-in-motion)이다. 이미 신유물론이라는 것에서 물질이 능동적임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창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운동적 유물론은 과정 유물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질이 ‘무엇임’이라는 본질주의적 규정의 상태에 놓여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운동적인 물질로서 현대물리학의 양자 이론을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물질은 연속적인 운동 속에 놓인 양자장(quantum field)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방행적(pedetic)이고 예측 불가능한 물질적 실천은 그 과정 안에 인간의 감각적 실천을 포함한 고유한 기술을 물질의 능동성과 창발성의 근거로 제시한다. “인간의 실천은 상호적으로 매개하는 과정 중의 한 면모 또는 매개에 불과”하므로 운동적 유물론은 완연하게 수행적 유물론이기도 한 것이다. 

 

◆연속성 테제 

네일은 물질의 가장 중심적인 테제로 헤라클레이토스적 테제인 “존재는 흐른다”라는 테제를 선택한다. 그 다음으로는 “존재는 접힌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루크레티우스부터 들뢰즈까지 이어지는 유물론의 가장 오래된 테제이다. 마지막으로 “존재는 장을 통해 순환한다”고 설명하는데 이 세 테제는 분리되지 않고 운동 중 물질의 일차적인 원리이다. 존재를 흐름이라고 선언할 때, 이는 곧 연속성과 운동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해야 하는 것이 된다. 

 

◆연속성의 선차성

연속성과 불연속성 중 어느 것이 선차적이라는 물음에 대한 네일의 답은 ‘연속성’이다. 이를테면 연속적 흐름 안에서 어떤 지점이 접히고 안정화되고 주기화 된 것이 불연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외연적 움직임’과 ‘내포적 움직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자는 실체적 점으로서의 양적이고 측정 가능한 움직임으로 장소 이동, 위치 이동을 말한다. 후자인 내포적 움직임은 두 점사이의 ‘연속적인 움직임’을 전제한다. 이 일차적인 움직임이 존재하지 않으면 외연적 움직임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두 운동의 차이를 ‘양자 상보성 이론’을 발견한 네일은 상대적으로 정적인 외연적 운동과 절대적으로 동적인 내포적 운동 간에도 연속성이 성립한다고 본다. 물질이 정적이지 않고 창조적인 행위소가 되기 위해서는 ‘방행’이 흐름의 한 요소이며, 이 ‘방행’이 흐름의 선형성에서 벗어날 계기를 마련해준다.  

 

◆‘방행’개념의 역사 

네일은 ‘방행’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 하이젠베르크의 양자 불확정성 원리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모든 물질이 작은 요소들의 무작위 운동(브라운 운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움직임들은 위치에 있어서 연속적이나 어디로 움직일지는 미결정 상태라는 것이다. 즉 움직임 a와 b사이에는 환원 불가능한 방행이 존재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물리학적 연구가 엔트로피 이론, 카오스 이론 그리고 비선형 동역학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우리가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간의 상호 불확정성에 관한 것으로 우리가 물질 입자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운동량을 파괴할 수밖에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행 운동에서 관계성은 개별 실체 자체의 생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것이다. 다만 이때 우발적으로 돌출하지는 않고 “준안정적 형성체 및 창발적 질서가 가능”한 무엇이 존재해야 하며, 이것이 네일이 말하는 방행적 운동이다. 

 

◆흐름의 다양체

네일은 역동적 구도로서의 흐름이 위상학적 다양체라고 논하면서 흐름은 다양체, 총체성이 존재하지 않는 “연속적 흐름, 흐름들의 열린 다양체”라고 말한다. 다양체로서의 흐름은 무한하고 따라서 흐름에는 시작점과 끝점이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존재의 흐름이 달성하는 ‘배치’이다. 이 다양체적 흐름의 운동은 그 안에서 스스로 제한을 행하는데, 네일식 명명으로는 ‘한계 짓기’이다. 흐름은 모든 방향으로 무한하므로, 모든 방향으로 한계 짓는다. 

 

◆합성체로서의 흐름

흐름이 무한하게 한계 지어 진다는 것은 흐름이 합성체로서 무한하다는 의미도 된다. 사변적 과정을 통해 그 물질을 간접적으로 사유 가능하게 하는 계기들이 양자장이다. 양자장은 에너지와 운동량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의 가시적인 효과를 간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네일은 “관계적 운동”이라고 부르고 이 관계적 운동이 초월론적 실재다. 관계적 운동으로서의 흐름은 분화작용도 하는데, 이때의 분화는 네일에게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이자 다양체가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흐름은 또한 분화할 뿐만 아니라 서로 합류(confluence)하는데 “한 번이나 그 이상 상호교차하는 둘 이상의 흐름들의 상호교차 또는 연결”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질적이고 비선형적인 운동에 의해 흐름들이 서로 합류하고 이 합류로 인해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이 발생하는 동적 장이 접힘에 의해 더 구체화되고, 역능들을 모으고, 더 발달해야 한다. “접힘 없이는, 사건은 대상 없는 감응으로 머물 뿐이다.”

(2) 루크레티우스 재독해

◆씨-흐름과 주름

네일은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인간중심주의와 반실재론을 극복하는 “동역학적 신유물론(Kinetic new materialism)”이라고 말한다. 즉 우주는 유로부터 생성하는 것이며, 생성된 것은 무로 소명하지 않는다. 이러한 원칙은 생성의 끝을 상정하는 목적론적인 구도를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네일이 승격시킨 루크레티우스 유물론의 첫 번째 테제로 사물의 진정한 물질적 조건을 보게 하는 테제를 통해 루크레티우스는 물질이 모든 사물들이 발현하는 일종의 ‘씨’로서의 개체라고 말한다. 네일은 여기에 보태 모든 것이 창조적인 씨-흐름으로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보고, 사물이 씨-흐름의 파종 과정의 흐름, 즉 싹-흐름 속으로의 물질의 접힘(pandam)의 한 측면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니까 물질의 주름(접힘)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떤 흐름으로부터 나와서 생장을 거친 다음 다시 흐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루크레티우스에게 자연은 두 종류의 다양체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며, 물체(corpora)와 허공(inane) 그리고 이 개념에 부가한 통접(coniuncta, conjunction)과 사건들(eventa, events)이 있다. 루크레티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체 존재’와 ‘부수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존재를 ‘부수적 존재’(=결합)와 ‘일시적 존재’(=사건)로 나눈다. 

 

◆감각의 생산

“운동에 의해 감각들이 점화”되고 이 흐름들의 결합은 감각되는 것과 감각, 둘 모두를 생산한다는 루크레티우스의 지론은 주체와 대상의 상호 뒤얽힘을 통해 과정으로서의 물질이 생산된다는 신유물론적 사유 구도와 조응한다. 흐름의 자기-교차는 촉발의 지점이기도 하다. 

 

◆질

운동적 질(kinetic quality)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흐름 안에서의 어떤 주름(접힘)이나 결합과 관계된 감각에 내재하고 그것을 통과한다. 다만 동일한 질은 초월적 형식이 없이 다른 사물들 안에 나타날 수 있는데, 이는 흐름이 하나 이상의 장소에서 유사한 패턴들로 움직여지거나 촉발되는 능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양과 질은 물질적 주름 운동이라는 동일한 연속적 운동의 두 차원으로 질이 주름 안에서의 감각의 기간 또는 결함을 기술한다면 양은 그것의 동일하고 통합된 완전한 사이클을 묘사하는 것이다. 양이란 사이클의 전체 단위에 대한 운동적 시간 간격의 확장 또는 특성의 한 운동인 반면, 질은 자기-감각 또는 촉발에 있어서 단일한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사이클 단위의 응축 운동이다. 

 

◆통접과 분산

통접은 둘 이상의 결합들 사이의 연결이고 분산은 결합의 풀어짐이며, 사물/사태의 질의 펼침 또는 풀림이다. 통접을 통해 다양성을 생산하고, 사물들에 요청하여 질들을 상호연결한다. 이때의 배치는 각각의 강도와 수를 가진다. 질과 양은 구별되지만 분리 불가능한 차원으로 하나의 사물로 존재한다. 도식으로 보면 사물/사태가 불연속적이거나 구별되어 주변 환경으로부터 등장할 때, 그것들은 상대적으로 연속적이다. 모든 작은 단위의 통접은 모든 단계들에서 연속적인 움직임 안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

물체적 흐름들이 어떤 합류 안에서 다른 것들과 만나거나 교차한다. 하나의 사건은 따라서 둘 이상의 흐름들이 교차하는 특이점이고, 다시 말해 사건들이란 이미 운동 속에 있는 물체적인 흐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교차인 것이다. 만약 사물/사태들, 장소 또는 공간, 합류를 위해 아무런 물질적 조건들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건도 있을 수 없다. 하나의 작은 사건이 발생하면, 전체 세계는 변형된다. 흐름들은 이 지점으로 접히기 시작할 수 있으며, 그것을 반복하면서 확장해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운동적 맑스주의

◆신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자와 신유물론자들의 생산적인 대화는 ‘맑스주의의 재탄생’의 시대, 즉 맑스주의의 재독해의 차원에서 가능할 것이다.

 

◆신유물론과 사적 유물론/헤겔 이전의 에피쿠로스/맑스 박사 논문의 간과

네일은 맑스를 수행적 신유물론으로 풀어보면서 맑스를 ‘에피쿠로스주의자 맑스’로 읽기를 청한다. 에피쿠로스를 전유한 루크레티우스의 전통 즉 ‘운동적’(kinetic) 또는 ‘과정적’(process) 유물론으로 보고자 하는 것인데 연속적으로 흐르고, 비-분할적이며 운동적인 물질의 특성들을 강조한다. 그렇게 본다면 맑스는 루크레티우스의 에피쿠로스를 해석하며 ‘신유물론’을 예고한 것이다. 네일은 맑스의 박사학위 논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를 거론하면서 맑스의 운동론이 주목하고자 한다. 맑스 생전에는 주목받지 못한 저작이었을뿐더러 엥겔스가 확립한 운동-중-물질의 특수한 역사적 이론에 대비하여 맑스의 입장이 조망되지 못한 점, 결정적으로 물질의 현실성과 창조성을 형이상학 법칙의 수동적인 부속으로 다룬 교조적 맑스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크다. 네일은 맑스주의에 대한 기존의 비판을 먼저 서술하는데, 미리 주어진 목표인 공산주의를 향해 달리는 기차라는 ‘역사 결정론’, 사회가 경제적 인과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는 논점에 기반한 환원주의, 인간 존재 또는 인간 사회에 존재론적 특권을 부여한다는 비판에서의 인간중심주의가 있다. 

 

◆재비판 

네일은 위의 내용을 재비판하면서 맑스주의를 ‘운동적 맑스주의’(kinetic Marxism) 혹은 ‘수행적 맑스주의’(performative Marxism)로 재정의 한다. 즉 맑스의 운동론은 자연과 사회에 관한 결정론을 거부하고 ‘방행적’이고 ‘추계적’인 운동의 특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맑스의 신유물론적 운동론을 규명하면서 오히려 물질에 관한 그 어떤 환원주의와 충돌하는 이론으로 세우고, 맑스가 물질을 과감하게 운동적 과정으로 취급했음을 소명한다. 이를 통해 맑스의 운동론이 ‘하부’와 ‘상부구조’ 사이의 경제적인 환원주의적 분리를 거부한다는 언명에 이른다. 이로써 현대의 양자 이론에 더 많이 접근한 맑스에 대한 해석은 모든 종류의 환원론에 저항하도록 하며 존재론을 넓게 포괄하는 역사적 존재론으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맑스를 비인간중심주의적 실재론자로 놓는다. 이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네일은 맑스의 원문에 쓰인 독일어의 어원을 분석하면서 물질적 조건들을 지지하고 유지하는 사용가치(tragen, 운반하다), 혹은 운동적인 것(aufgehoben, 들어올리다, 올리다)을 이해할 수 있는 운동적 개념에 다가간다. 모든 것이 운동 안에 있다는 맑스의 발견 아래, 많은 역사적·사회적 운동 패턴이 만들어지고 그중 하나가 자본주의인 것이다. 맑스의 물질-운동적 변증법은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 철학에서 물질의 세 가지 상호 연관된 운동들로부터 나온다. 세 운동들 모두를 하나의 단일한 세 겹 주름 운동으로 취급하는 것이 맑스 운동의 기발한 점이다. 맑스는 직선 낙하 운동, 편위, 복합체로 구성된 이 동시적인 세 겹 주름의 운동을 통해 결정론이나 인과성의 형이상학을 기각한다. 

 

◆클리나멘(편위)/어우러짐/감각과 감성의 구분/본질과 실존

운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허공(the void/chora/locus)과 무작위 운동 안에서 작용하는 편위는 불확정적인 관계의 과정과 연관된다. 새로운 주름 안에 스스로를 넘어 그 뒤로 되접는 물질은 반복적으로 거듭된다. 이러한 척력과 질화된 원자들이 어우러지는 연속적인 혼합에서부터 현상의 세계가 출현한다. 위와 같은 설명으로 감각과 감성, 본질과 실존에 대해 물질 흐름과 생성적 흐름이 감성적 능동성에 의해 작동되고 모든 존재들은 감성적 객체인 바, 스스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의 움직임을 양산한다.  

 

◆사유재산/맑스의 분석이 가지는 특이점

그렇게 본다면 사유재산은 하나의 객체인데, 이는 물질의 주도적인 흐름이자 주름 운동에 의해 생산된다. 이때 사유재산을 생산하는 물질적 운동들과 에너지들은 세 겹 주름의 운동적 분리를 수행한다. ⓐ 객체로부터의 분리 즉 생산하는 객체로부터 생산의 분리 ⓑ 능동성으로부터의 분리, 생산된 객체의 창조적 능동성은 움직임의 본성으로부터 유리 ⓒ 존재로부터의 분리, 모든 존재자들은 불변의 본질이 아닌 생산되고 역사적이고 물질적인 ‘존재의 유형들’

앞의 세 가지 분리는 사유재산의 생산을 통해 행하는 것으로부터 분리되고 그들 운동의 기계적 패턴 속으로 강제되며, 결과적으로 그들의 생산물은 그들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사유재산과 그 세 겹 운동의 분리라는 감각적인 물질적 조건들에서 시작하는 맑스의 분석은 지금까지의 모든 생산이 역사적이고, 물질적이며 운동적인 조건들을 발견한 것이라고 본다. 『자본론』의 1장이 시초 축적이 가치 생성의 비밀스러운 구성요소임을 변증법적 방향의 시작부터 함축되어 있음을 떠올려보면 하나의 사물/사태는 다수에 모든 것에 공통되는 것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신유물론적으로 가치의 기초를 제공하는 것은 인간의 사용가치만이 아니므로 인간 외의 그리고 비가치화된 또 다른 물질적 과정들이 있음을 보아야 한다. 

 

◆객체로서의 사물

네일은 맑스가 사용한 독일어 단어 Gegenstand(object)에서 객체에 관한 최초의 의미를 발견한다. 객체는 머물거나 서 있는 어떤 것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며, 근본적인 운동의 과정이다. 객체는 그 자신을 향해 접혀지고 던져진, 도는 그 자신 주위로 되돌아오는 물질의 흐름이다. 객체는 ‘외연’적 존재이자 내적이고 ‘강도’적인 측면을 가진다. 

 

◆사용가치의 전유

맑스는 이러한 물질이 새로운 질들의 생산이자 그것들의 소비라는 두 겹 주름의 특성을 가진 사물들 안으로 접혀 오른다고 말한다. 이들의 사용가치는 운동-중-질(quality-in-motion)인데, 물질은 형태들로서 연속적인 움직임 안에 있고, 반복적으로 결정된다는 성질을 통해 모든 부가 물질적 운반자들인 운동-중-질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시초 축적

네일은 맑스의 가치론에서 ‘시초 축적’의 지속성을 중시하는데, 시초 축적의 과정을 강조하는 것이 비가치를 가치로 통합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명백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가치와 비가치의 사이의 전체적인 구분이 백인 남성의 지불 노동으로부터 비롯된 가치 창조에서 자연과 여성 그리고 식민지 인민들에 대한 탈가치화라는 특수한 역사적 실행들에 입각한다. 노동과 가치 간의 관계가 임의적이고 수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유와 약탈의 과정과 관련된다는 네일의 분석은 운동적 순환에 따라 상호적으로 규정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가치의 공포

가치는 여러 물질들을 탈가치화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출현과 재생산의 바로 그 조건들로써 먹여 살리기도 한다. 가치에는 탈가치화된 물질들, 오로지 가치가 주어진 불연속적 부분들로만 구성되며, 이 기생적인 본성은 ‘공포스러운 외양’을 부여한다. 감성적 질을 순수한 양으로 환원하는 것이지만 가치를 뒤에서 덮치는 공포스러운 신체의 복수에 대한 두려움도 따른다. 가치는 사용가치의 공포이며, 사용가치는 가치의 공포가 된다. 

 

◆신진대사의 분석/신진대사의 세 겹 이론

네일은 맑스가 1850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1857)에서 ‘신진대사’(Stoffwechsel)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것에 주목해, 신진대사를 최초의 연속적인 물질의 운동이자 맑스 저작 전체에서 가장 큰 역사-존재론적 범주들 중 하나로 논증한다. Stoffwechsel이 ‘물질적 변형’을 의미하고 따라서 이 단어가 연속적인 물질적 흐름, 주름 운동 그리고 맑스의 박사 논문 이래 설명한 물질-운동적 과정을 아주 잘 기술한다고 본다. 맑스의 박사 논문에 나온 용어인 어우러짐(zusammenhängen)과 같이 신진대사는 물질-운동적 기초이자 ‘대지적인 기반’으로서 ‘모든 생산과 모든 존재자들의’ 궁극적인 ‘원천’으로 기여한다. 네일은 맑스의 신진대사 이론을 세 겹 주름으로 보는데 ‘자연의 신진대사’ 아래 ‘자연과 인간의 신진대사’ 그리고 ‘사회적 신진대사’의 출현이 있기 때문이다. 

 

요약 및 결론

맑스의 가치론과 정치경제학 비판 전반에 대한 네일의 새로운 해석은 맑스는 노동가치를 주장하지 않았으며 환원론적 유물론자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중심주의적인 개념에서가 아니라 앞서 살펴보았듯이 자연-인간-사회의 생성이라는 세 겹의 신진대사의 과정 속에서 맑스의 가치 이론과 소외론, 착취 이론이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 네일이 맑스를 재해석하는데 접근한 방식과 결론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맑스의 박사 논문에 기대어 운동적, 과정적 유물론으로 새로 규정하며 시작함으로써 맑스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해석인 결정론, 환원주의,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하고자 하였다. 두 번째로는 맑스의 해석에도 루크레티우스의 중요성이 드러나는데, 이를 통해 ‘신유물론’의 오래된 기원을 밝혀내고 19세기의 맑스 또한 이 수행적 해석에 동참했다는 것으로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네일은 자본주의 아래 자연적·인간적 그리고 사회적 신진대사의 균열들을 치료할 수 있는 신진대사적이고 운동적인 코뮤니즘을 요청하는 것으로 자신의 수행적 맑스주의에 정치적인 전망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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