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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신유물론, 물질의 존재론과 정치학』, 그린비, 2023.

5장 새로운 세대들의 분투 - 2절 수행적 신유물론자들

발제: 오수민

 

개요

수행적 신유물론(performative new materialism)은 크리스토퍼 갬블, 조슈아 하난, 토마스 네일이 그들의 논문 “신유물론이란 무엇인가”(2019)를 통해 구체화한 사조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 더 나아가 물질 세계를 관계를 통해 생성하는 것으로 탐구하는 신유물론 연구의 한 갈래다. 생기적 신유물론, 부정적 유물론 등 신유물론이라는 새로운 철학 논의에는 아직 명백하게 구별되지 않으면서도 분명 약간씩 다른 방점을 둔 신유물론적 논의들이 혼재되어 있다. 수행적 신유물론은 방행적 운동(pedetic motion), 전진적 과정(ongoing process), 그리고 관계(relationship)에 방점을 두고 물질의 능동성을 긍정하고 물질적 실재의 차원이 물질 외부가 아닌 관계를 생성하는 운동의 과정에 있다는, 얽혀 있음의 존재인식론적(ontoepistemological) 사고를 주장한다.

 

본론 

수행적 신유물론은 자신의 뿌리를 소크라테스 이전 원자론으로부터 시작한 고대 유물론과 16세기경부터 출현한 근대 유물론으로 본다. 고대 원자론은 물질을 인식론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것으로 상정했다는 점에서 신유물론의 뿌리로 위치할 수 있지만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를 수동적 존재로 취급했다. 고대 유물론자는 원자를 능동적으로 수행하지 않고 영원히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근대 유물론자 역시 물질을 수동적 존재로 이해했고 대신 물질의 운동을 설명하는 힘의 형이상학적 실재에 접근하고자 했다. 결국 구유물론들은 “인간이 근원적으로 물질의 바깥에서 어떤 객관적인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이때 우리가 (그리고 오직 우리만이) 물질의 진정한 본성 또는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비-수행적이며, 내밀한 관념론적(crypto-idealist) 가정”(456쪽)을 공유한다. 이에 대해 수행적 신유물론에서는 “존재론과 인식론에서의 상호교차를 통해 (…) 사물들이 그저 얌전히 놓여 있는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나와 상호작용하면서 얽혀 있는 능동적 실재”임을 밝히고자 한다. 더불어 물질의 능동성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물질성을 긍정하고 인간을 물질적 실재에 관한 예외적이고 객관적인 관찰자”(457쪽)의 위치에서 끌어내리고자 한다. 

고대와 근대를 지나 새로운 유물론을 논의함에 있어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박준영은 초기 신유물론자인 마누엘 데란다가 들뢰즈·가타리 철학을 ‘잠재성의 철학’으로 규정하면서 신유물론에 “물질의 현행적 표면 외에 어떤 본질주의적인 실체로서의 잠재성을 고려”(459쪽)하게 되는 역설이 발생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후 물질 세계의 본질이 또다른 잠재성의 영역에 있다는 사유는 “개체적인 것들의 관계성을 규정하는 초과분 또는 그런 관계들이 새로운 관계로 발상되는”(459쪽) ‘표면’ 개념으로 대체된다. (** 이 지점에서 아연 클라인헤이런브링크의 “관계는 그 항들의 외부에 있다”는 ‘외부성 테제’와 연결되는 것인가?)

들뢰즈·가타리 철학에서 잠재성의 영역을 도출해 낸 것은 생기적 신유물론이 물질에 ‘생명’이 내재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수행적 신유물론의 입장에서 생기적 신유물론은 이분법적 도식을 재발생시킨다. 즉, 생명 혹은 힘이라는 비물질적이고 본질적인 동력이 물질에 내재하다가 물질적인 것으로 표현된 것이 ‘개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삶/죽음, 능동성/수동성의 이분법 안에서 ‘지배적인 측면만을 존재론화하기로 선택’”(461쪽)하는 이분법을 강화할 뿐 물질 사이의 관계, 바라드적인 간-행은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반면 수행적 신유물론자들은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에서 잠재적인 것의 발현으로서 물질을 이분법적인 것이 아닌 횡단적 관계로 물질의 생성이 가능함을 주장한다. 

 

갬블, 하난, 네일은 카렌 바라드와 비키 커비의 수행적 접근 태도를 기반으로 하여 수행적 신유물론의 세 가지 테제를 서술한다. 방행적 운동, 전진적 과정, 관계가 그것인데 세 저자와 그리고 박준영은 불변항 혹은 절대적인 외부 세계는 없고 오직 운동적 관계, 얽힘을 통해서 물질이 발생한다는 바라드 논의와 연결지으며 세 가지 테제를 설명한다. 

방행은 “반-자동적 자기-이동(semi-autonomous self-transport)의 운동”으로 “방행 운동을 하는 물질은 단지 준안정적인 어떤 구조를 매 순간 생성시키며, 그 구조와 다른 구조의 발생에 관여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다.”(463쪽) 한편 방행 운동은 무작위 운동, 확률적·개연적 운동과 같지 않은데 이 모든 운동은 예측 불가능하다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후자의 운동은 선결된 고정되고 절대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일 뿐이다. 반면 방행 운동은 무수히 많은 관계를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예측 불가능하며 미결정적이다. 특히 박준영은 방행 운동을 바라드의 행위적 실재론에서 행위적 절단과 현상의 역동성과 연결 짓는다. 얽힌 물질적 행위소로서 현상은 방행 운동을 통해 간-행하며 이 간-행이 물질적 장치들이 (재)배치 즉, 장치들의 간-행을 형성한다. 얽힘과 간-행 그리고 행위적 절단의 ‘수행’은 방행적 움직임 안에서의 주름 운동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하며 들뢰즈의 잠재성의 영역에 대한 한계도 극복하는 단초를 마련한다.(465쪽 각주 72 / ** 보충 설명) 결국 방행 운동의 미결정적이고 관계적인 움직임이 물질을 계속해서 새로운 결합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한다. 

두 번째 테제인 전진적이고 수행적인 반복과 관련해 살펴보자. 물질은 반복적·전진적·비결정적으로 운동할 뿐이며 이로부터 물질은 수행적이게 된다. 방행 운동은 고대 유물론에서 말한 “원자와 그 결합법칙”(466쪽)에 의한 운동이 아니며, 생기적 신유물론이 말하는 비물질적 생명에 의한 운동도 아니다. 방행 운동은 이러한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운동이지만 또한 “급진적인 우발성, 무차별성의 세계, 초카오스로의 이행”으로 방향 지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방행은 바위에서 날개가 돋고 다리가 난 생명체가 생겨날 수 있게 하는 반복의 역량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즉, 방행 운동을 통해 “언제나 차이 나는 어떤 것을 발명”하는 것이다. 결국 박준영은 수행적 신유물론이 제안하는 물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방행적 물질은 고유하게 미결정적인 목적-없는-과정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물질적 실재 전체를 하나의 연속적 전체성으로 통일하는 기저에 흐르는 실체는 존재할 수 없다. 또한 물질은 창조할 수도 또는 존재를 절대적으로 부재하는 어떤 것으로 가져갈 수도 없다. 따라서 수행적 물질은 연속적이지도 않고, 불연속적 실체도 아니며, 어떤 불연속적 과정도 아니다.”(467쪽) (** “다른 한편으로 물질이 개별체 전체를 담고 있는 전체라면 (…) 논리적 변화일 뿐이다.”에 대한 보충 설명(467-468쪽))

마지막 테제인 관계는 물질의 “관계적이고 내재적으로 자기-촉발적(self-caused, 자기-원인적)”(468쪽) 특성과 관련한다. 수행적 신유물론자는 물질의 본질을 행위소들의 관계 밖, 외부 세계가 아닌 행위소들끼리의 관계 그 자체로 파악한다. 그러나 이 관계가 생기적 신유물론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의 본질적인 생명 혹은 힘으로부터 균질하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관계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정치적으로 비대칭적이며, 평평하지 않다.”(468쪽) 이 말은 행위소들이 관계를 맺을 때 비대칭적이며 매 순간 다른 관계 맺기를 한다는 의미이고 그로부터 각 관계는 저마다의 독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는 부동의 절대적인 물질을 도출하지 않으며, 생성하는 것이자 역사와도 접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수행적인 관계 맺기를 통해 역사적 사건에 개입하고 재-기술하고 실천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이는 결국 정치적, 윤리적 실천을 배태한다. 결국 수행적 신유물론은 바라드의 윤리-존재-인식론과 더불어 인간을 초월적 외부에 위치시키는 것이 아닌 역사의 한 가운데에 놓고 관계를 통해 실천을 사유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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