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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 브라이도티

「‘생명 자체’의 정치와 죽어감의 새로운 방식들」

 

이희옥


  이 논문은 생명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 대한 전환, 그리고 생명 자체의 정치에 관한 논쟁들을 살펴보는 논문으로 특히나 죽어감(dying)의 실천들에 관해 이해를 촉진하고자 한다. 보통 ‘생명 자체의 정치’는 생명 권력이라는 개념이 ‘생명’을 자기-구성적인 실체로 만드는 담론들과 실천들을 조직화하는 원리로서 등장한 위상을 말하며, 여기서 생명 물질(living matter, 생명체) 자체는 탐구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된다. 사회적 주체들의 조직과 구조 자체에 영향을 주는 일련의 유물론적 전환이 인간 신체에 관한 역할과 재현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과학적 연구나 공적인 토론에서 ‘생명’ 혹은 ‘생명 물질’에 관한 수사적 표현이 있는데, 이 논문은 신생기론과 생명정치로 알려지는 어떤 경향에 집중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의 상황

브라이도티는 신체적 유물론이 신실재론적 실천으로 회귀하는 것을 물질-주의(matter-ialism) 또는 과격 신유물론(radical neomaterialism)으로 명명하고 이 개념 아래 기술은 논쟁의 핵심이 된다. 인간과 전자 기술의 결합에 환호하는 담론이 과학 공동체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안에서도 유통되고 있는 점(클라우디아 스프링거), 신체-기계로서 사이보그가 후기산업 사회 공간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들의 지도 제작이 될 수 있다는 점(도나 해러웨이), 그리고 물리적 자기성의 인공적 환경으로의 투사가 기술을 통한 우주적 구제라는 ‘사이버 주체’에 관한 꿈에 반영된다고 논증한 것(스콧 부카트만)이 주요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죽음에 관한 질문과 죽어감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며, 살(flesh)과 기계 사이의 연결이 공생적이고 상호 의존적 결속임을 강조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생명’에 얽힌 미묘한 절멸의 수준들을 다시 가동한다. 

  살아감과 죽어감이 분별불가능한 유형의 생기성은 비인간이면서 긍정적인 생명력으로 조에(zoē)라는 개념을 구성한다. 이러한 생기적 유물론은 ‘고차원’의 사이버 연구를 넘어 포스트-사이버-유물론으로 이동한다. 브라이도티는 이 논문에서 생명 자체에 대한 강조가 기술적으로 매개된 신체들의 복잡성과 인간적 체현의 사회적 실천들에 집중하는 방식과 그에 대한 긍정적인 가설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생명에 결부된 자기성이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욕망, 안락사나 죽음 돌봄 등 ‘생명 자체’의 정치학에서 살아 있음과 죽어감 사이의 사회적 표명과 그로 인한 현상을 탐구하고자 한다.

 

다시 생각해 보는 생명권력

‘생명 자체’의 개념에는 권력과 권력관계, 생명발생 자본주의 등의 논의가 활발하다. 생명에 대한 기술적 개입은 성과 인종에 따른 배제와 포함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작동시키고,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기술 혁명은 전통적인 차별과 착취를 강화시킨다. 이는 세 가지 주요한 결과를 가진다. 첫째, ‘생명 자체’ 정치의 부정적인 측면, 즉 현대 사회의 죽어감의 새로운 실천에 초점을 맞춘다. 새로운 전염병과 파국, 전쟁의 새로운 형태, 테러리스트들, 죽음에 대한 증언과 그에 따르는 정치적 실천 그리고 대중문화에서 다뤄지는 과학적 탐사나 죽은 탐사에 대한 이미지를 말한다. 

  두 번째 결과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론 자체의 상태와 관련된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그룹이 있는데 1) 생명 개념을 ‘비오스(bios)’로 새기는 것, 생명에 지어지는 도덕적 책무만큼이나 강화되는 통치성의 예라고 볼 수 있다. 2) 하이데거와 아감벤에 의해 잘 예화된 것으로 ‘비오스’로서의 주체를 ‘벌거 벗은 생명’ 즉 ‘조에’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주체(조에)의 살아-있음(being-aliveness)은 죽음과 절멸을 떠오르게 할 수 있으며, 타나토스-정치에 접근한 생명권력이 그간의 근대성의 기획을 고발한다. 3) 선진 자본주의 안에서 ‘차이’의 위상에 관한 전환을 촉구한 페미니스트, 환경주의자 그리고 인종 이론가들이 있다. 4) 스피노자적 틀거리 안에서 작업하는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에두아르드 글리상, 모이라 가텐스, 그리고 제네비에브 로이드, 에테엔 발리바르,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 그리고 이 글의 필자인 로지 브라이도티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생명 자체의 정치를 강조하는 학자들이다. 세 번째 결과는 방법론적인데, 모든 기술이 ‘생명권력’을 갖고 신체와 사회, 그리고 법적인 권력 관계 안에 자리할 때, 보다 높은 차원의 상호학제적인 노력과 사유가 요구될 것이다. 위의 결과를 통해 주목할 점은 진화론으로의 회귀이며 이는 비판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생명 자체를 참조하는 사회 정치적 실천들은 사회적 결합, 다양성에 대한 존중 그리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그 취약성을 존중하는 윤리학이 놓여 있다.

 

조에의 등장

생명은 절반은 동물적인 것, 즉 조에(zoology, zoophilic, zoo)이며 절반은 담론적인 것, 즉 비오스(biology)이다. 서구 이성에 의해 비오스는 신성한 것 조에는 불순한 것으로 결정된다. 이처럼 정신-신체 이원론은 내부-사이(in-between)의 복잡성을 통과하는 지름길로 기능해 왔다. 그렇게 본다면 조에는 형이상학적으로 주체를 기초하는 ‘타자’, 성적 타자(여성)과 인종적 타자(원주민)뿐만 아니라 전체 동물의 왕국을 포함한다. 옛 체제에서는 이는 ‘자연’을 지칭하기도 했다. 비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계에 타격을 준 진화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에는 주체에 관한 이러한 관점 바깥을 표시한다. 고전적인 철학이 생물학적인 것과의 대화를 추구한다면 이와 대조적으로 유목적 주체는 조에와 사랑에 빠진다. 그것을 동물 되기, 타자 되기, 벌레 되기, 즉 모든 형이상학적 경계들을 횡단하는 것으로서의 포스트휴먼에 대한 것이다. 비오스/조에 합성체는 두 범주에 내재한 차이를 도입하는 것으로 생명을 지칭하고, 생명과 죽음 간의 관계를 정립하는 비이원론적 방법을 허용한다. 

 

문턱으로서의 한계에 대하여

정치적 환경 안에서 이데올로기의 죽음에 대한 후렴구가 시민들을 훈육하며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을 유순하게 만들어 사회적 변화를 따르는 것과 그것의 위험성에 과도하게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경계하려고 한다. 일상적 행동주의의 다양한 미시정치학적 양태들에 관한 유목적 윤리를 통해 ‘능동성’을 행동주의로 되돌려 놓는 것이 핵심이라고 본다. 다만 절대적 생기성으로서 조에 혹은 생명이 부정성을 초월하지 않는 점을 확실히 한다. 브라이도티는 인간들이 피하고자 하는 것이 가속되고 증가되는 사유라고 말하면서 이 역동적인 과정에서 주체의 사유가 시공간적인 협력 내부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은 생물조직적의 제한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피노자-들뢰즈가 주장한 주체의 감응적 정의 또한 상호작용을 통해 주체를 활성화 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니체가 제안한 비오스-조에의 막대한 강도에 대적할 수 있는 즐거운 태도를 개발하는 윤리적 도전을 마주해야 한다. 지각이 아니라 감응성을 통한 세계로의 접근, 주체가 자기생성적 기계로서 표적화된 지각들에 의해 연료를 공급받으며, 조에의 공명상자로 기능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주체로서의 생명의 나의 생명이 아니며 ‘나’는 스쳐 지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계는 시간 안에서 작동하고 조에로서의 ‘생명’을 마주하는 고통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인내력에 관한 것이며, 이렇게 윤리학은 지속가능성의 문턱 안으로 고통을 재작업하는 것이다. 

 

비오스/조에 윤리학과 타나토스

브라이도티는 자신의 비오스-조에 윤리학으로서의 ‘생명’에 관한 이해와 아감벤의 ‘헐벗은 생명’ 또는 ‘나머지 것’과는 차이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주권 권력이 죽일 수 있는 물질적 신체인 ‘헐벗은 생명’은 국가 체계의 포획 메카니즘에 유동적인 생동성을 기입하므로 동물적 생명의 무화로부터 힘을 획득하는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연결된다. 아감벤의 체계에서 조에는 주체의 구성 또는 ‘포획’의 자리가 된다. 즉 정신분석에서 언어의 역할과 유사하다. 주체의 틀을 잡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배제되는 것(라캉의 전담론적인 것, 크리스테바의 코라(chora), 이리가레의 모성적 여성)과 같이 주체의 중심에 상실의 감응적인 정치적 경제와 우을증을 재촉하는 것들이다. 아감벤의 ‘생명력’ 체제의 전체주의적 경계에 대한 저작에서 죽음과 유한성을 ‘생명’의 담론으로 구가하는 철학적 관습을 영속화 한다. 니체가 한 세기 전에 비판한 이러한 타나토스에 대한 애착은 오늘날 비판적 논쟁에도 유효하며, 생명권력 체제를 몰아내는 기술적 발전들에 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에 힘을 보탠다. 브라이도티의 지적은 죽음이 과대평가되어 있고, 나의 거기 있음 없이는 사유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 또는 어떤 ‘인간’을 가지지 않고 사유하는 것이 즉 포스트인류중심주의적 전환이 조에의 긍정성을 향해 움직이는 지속가능성의 윤리학임을 설명한다. 

 

한계에 관한 질문

선진 자본주의에 청구와 배상의 논리가 어떻게 정치적 변화의 과정과 이데올로기적으로 적재된 고통으로 연결되는 지 추적하려고 한다. 이것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 제기가 필요한데, 첫째, 우리의 문화가 고통을 괴로움과 동일하게 놓고 그것을 찬양하는 경향에 따라 배상의 이데올로기를 조장한다는 점이다. 둘째, 관습의 힘에 관한 것으로 공정한 배상을 요청하는 고통의 담론과 사회적 실천 내부에서 ‘고통’을 틀 짓는 것이다. 리오타르의 이론에서처럼 인간이 일련의 사건과 공포로 겪는 존재의 취약함에는 어떤 배상도 부적합하다. 고통을 존중하되 청구와 배상에 대한 탐색을 보류하고 징벌과 권리의 논리에 저항해야 긍정의 윤리학을 향해 갈 수 있다. ‘조에’-지표적 반응(indexed reaction)의 전위는 상처, 부정의의 근본적인 무의미를 드러낸다. 일련의 비극은 아무런 이유가 없다. 우리는 고통을 의미 탐색으로부터 해방시킬 필요가 있으며 그 너머로 가져가 긍정적 정념으로 변형시킬 필요가 있다. 생명중심 평등주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뿐 아니라 타자성에 관한 후기구조주의 윤리에 있어서도 중심적인 상호 호혜성의 기대를 깨버린다. ‘얼마나 많은 행위의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가?’가 가장 적합한 윤리적 질문이 될 것이다.  

 

세대 간 정의의 사례

진보의 이데올로기로서 근대성은 미래에 관한 무제한적인 신뢰를 전제로 인간의 최종 목적지로 설명되고는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조명하는 기술과 경제 사이의 상호의존 속에서의 지구화 과정, 자기-파괴적인 자본주의 등은 브라이도티가 말하는 지속가능한 미래의 건설 안에 시간-선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미래는 근대적 주체의 자기 투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 또는 연속성의 가능성에 대한 행위인 바, 동시대의 우리가 현행화 하는 것을 긍정적 측면의 잠재적 주름으로 펼치는 것 또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세대 간 정의의 형식은 중요하다. 미래에 관심을 갖는 실천적인 방법은 세대 간 품위(decency)에 관한 비선형적 모델들로 이를 통해 오이디푸스 위계를 제거할 수 있다. 세대 간 단절을 가로지르는 힘들을 결합하고 긍정의 추구 안에서 비호혜성의 윤리를 실천하기 위해, 세대 간 갈등을 드러내고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요청한다. 우리의 이기심과 탐욕이 오는 세대들의 것을 파괴하거나 제거하지 않도록, 인간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양체를 위한 확고한 관심을 표현하는 것. 여기에는 어떤 이유도 없으며, 이유는 여기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저 행하고 세계를 사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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