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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물론에서 사이버네틱스까지] 결론 발제

이재훈 2023.08.02 18:39 조회 수 : 65

『철학이란 무엇인가』 결론 발제

 

- 우리는 관념들을 끊임없이 상실해간다. 이는 카오스로써, 소멸과 출현이 동시에 일어나는 무한한 가변성이다. 우리는 이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고정된 견해 혹은 질서에 매달리고 싶어한다. 질서는 우리가 환상에 빠지지 않게 막아주고, 관념들 사이를 이행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사물들에게도 어떤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관념과 사물들의 교점으로서의 감각이 있기에 우리는 질서와 견해를 형성할 수 있다.(289-290)

 

- 그러나 예술, 과학, 철학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이것들은 우리가 카오스에 침잠해버리기를 원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카오스를 물리칠 수 있을 테다. 카오스를 물리치기 위한 무기로써 철학은 변주들을, 과학은 변수들을, 예술은 다양성들을 카오스로부터 가지고 온다.(291-292)

 

- 카오스와의 싸움은 카오스와의 결탁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데, 왜냐하면 카오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다고 자처하는 견해와의 투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로렌스가 말하길, 예술가는 사람들이 열심히 끄적여놓은 관습과 견해들을 찢어버려 카오스가 지나갈 틈새를 만든다. 예술가는 순백의 바탕에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 앞에 놓인 것은 빼곡히 뒤덮인 구태의연함이다. 예술은 그것들을 청산하며 한 줄기 카오스를 흐르게 하는 것이다. 예술은 분명 카오스와 투쟁하지만, 그것은 일순간에 카오스를 밝혀내는 하나의 감각을 발현시키기 위함이다. 예술은 카오스의 가변성을 재편된 카오스(카오이드)의 다양성으로 변형시킨다.(293-295)

 

- 과학이 가변성을 불변수들이나 한계들 밑에 둘 때 카오스와의 투쟁이 과학의 본질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이 미분을 통해 변수들의 출현 및 소멸과 함께 존속되는 관계들을 제시할 때, 과학은 카오스와 맞닿게 된다. 과학은 지시관계가 부여된 자연으로서의 카오스를 형성함으로써 재편된 카오스적 변수들을 끌어낸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과학도 견해와 투쟁하기 위한 도구로써 카오스와 투쟁하는 것이다.(295-298)

 

- 철학도 견해에 맞서기 위해 카오스와 투쟁한다. 개념은 관념들의 법칙에 따라 도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념에 이르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빨리 현실 존재들로서 한정지을 수 있는 정신적 대상들에 도달해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허구들과 추상들은 하나의 불가피한 과정일 뿐이다. 하나의 개념은 분리불가능한 변주들의 집합으로, 재편된 카오스의 전형적인 상태이다.(298-300)

 

- 예술, 과학, 철학은 카오스를 각자의 구도에 따라 재단하는 카오이드들(재편된 카오스들)이다. 이 세 구도의 접합이 바로 두뇌이다. 뇌에 대한 기계론이나 게슈탈트 이론 모두 장 전반에 걸친 조감인 하나의 ‘구도’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난관에 봉착한다. 편협한 인지 모델의 지배를 받는 두뇌에 대한 이해는 뉴런들을 독사 안에 가두어버려 철학, 예술, 과학이란 정신적 대상들을 다루지 못한다. 이것들은 객관화가 불가능한 두뇌에서 뉴런의 틈새들 가운데 가장 심연에 존재한다. 즉, 이것들은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두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300-302)

 

- 오히려 이것들은 두뇌가 주체가 되는 세 양상들이다. 두뇌는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는 자체적 형태로서 자체-조감(auto-survol)이다. 이렇게 개념들의 창조의 기량으로서 나타나는 두뇌는 정신 그 자체이다.(302-304)

 

- 두뇌는 개념 못지않게 감각이기도 하다. 감각은 스스로 보존되며 자신의 진동들을 보존하기에 자극 그 자체이다. 그래서 뒤의 감각이 오더라도 앞의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카오스에 맞서는 감각의 방식이다. 감각은 보존되고 집약되어 다양성이 된 진동이다. 여기서의 두뇌-주체는 영혼이나 힘으로 일컬어진다. 이 영혼 혹은 힘은 스스로 무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관조를 통해 앞의 것을 보존하는 집약을 통해 스스로를 채울 따름이다.(304-308)

 

- 두뇌-주체를 이루는 두 층위인 감각과 개념은 바스러지기 쉽다. 엄청난 피로가 감각으로부터 진동들이 빠져나가 탈진하게 만든다. 이렇게 노쇠하면 정신적 카오스로 추락하거나 상투적인 견해들로 돌아서게 되고, 예술가는 더 이상 새로운 감각을 창조해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철학자는 다른 방식으로 소진되는데, 탈진한 사유는 내재성의 구도에서 개념들을 통제하는 무한 속도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개념을 구축할 수 없는 상대적 속도에만 의존하게 되고 만다.(308-309)

 

- 과학에서 두뇌-주체는 인식작용을 구축하는 세 번째 층위로 나타난다. 인식은 형태도 힘도 아닌 하나의 기능이다. 이때 주체는 ‘투출’로 표상되는데, 과학에서는 변별적인 요소들을 추출하기 때문이다. 인식의 기능에서 두뇌는 지시관계의 구도를 설정하고 독립변수들을 좌표화한다. 사물의 상태들이 분화와 개체화의 작용에 종속되어있다는 사실은 카오스의 존재를 명확히 보여준다. 따라서 인식주체로서 두뇌가 빠져드는 카오스를 드러내는 것은 과학의 소임이다. (309-312)

 

- 철학, 예술, 과학의 세 구도들은 서로 환원될 수 없다. 이들 사이의 간섭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외재적 간섭인데, 이때 간섭하는 학문은 자신의 고유한 방법에 의해 간섭한다. 예컨대, 과학에서 기하학적 형상이나 계산에 있어서의 내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의 아름다움이란 미학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두 번째 내재적 간섭은, 간섭하는 학문이 자신의 내재적 구도에서 벗어나 다른 구도로 스며드는 간섭이다. 이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나 말라르메 시에서 이지튀르처럼 어느 한 구도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구도에 서게 되는 경우이다. 마지막은 위치시킬 수 없는 간섭들이다. 이는 각각의 학문들이 부정적인 것과 맺는 관계이다. 예술이 비-예술을, 과학이 비-과학을, 철학이 비-철학을 필요로 하는 것이 그것이다. 부정과의 이러한 관계는 학문의 시작과 끝에서만이 아니라 매 발전과 생성의 순간마다 요구된다. 하지만 이 세 부정은 두뇌가 침잠하는 카오스와의 관계에서는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거기서는 철학과 과학과 예술이 서로 구별 불가능한 것이 되고, 다가올 민중의 그림자가 간신히 빠져나온다.(31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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