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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세이_니체] 2주차 에세이: 말을 살해한 자

김미진 2024.03.22 23:51 조회 수 : 29

말(言)을 살해한 자

김 미 진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는 말은 절대적 가치의 종말을 뜻한다. '바람직함'으로 인식되는 모든 대상은 신이 되고, 언제 어디서나 믿음을 통해 신으로 다시 나타난다. 내가 믿고 있었던 많은 신 중 오늘 한 명의 신이 죽었다. 그 신은 '언어의 신'이다.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모습으로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의사소통 형태는 언어, 즉 말을 이용하는 것이다. 말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 중에 기본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를 만난 순간 '바람직함' 하나가 무너졌다. 별세계 사람을 만난 느낌이었다. 볼수록 놀라운 점은 기본적인 '네, 아니오'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언반구 말 한마디조차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어떤 느낌일까? 그런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려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모든 언어에서 벗어나 침묵하는 심신 수양 방법으로 묵언수행이 있다. 말함으로써 짓는 죄업에서 벗어나 마음을 정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한 스님은 묵언 수행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지 보시면 아실 겁니다. 묵언 수행은 쓸데없는 말을 줄이고, 자기 내면의 세계를 보기 위함입니다. 또한 묵언 수행을 통해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묵언은 남이 묻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겁니다. 묵언 수행은 자기가 직접 체험해 의미를 아는 게 제일 좋습니다."  <덕혜 스님 曰>

 

학교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내는 이 녀석은 묵언수행 최고 단계에 올라간 사람일 터였다. 그러고 보면 말이라는 것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행위면서 쓸모없는 행위일 때가 많다. 심지어 말로 타인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기도 한다. 말의 부작용을 생각했을 때 말이 많은 것 보다,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더 유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말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다. <토머스 칼라일>"라는 말처럼 말보다 침묵은 더 높은 가치를 지닐 때가 많다. 이렇게 보면 말을 하지 않고 학교생활을 해내는 이 아이는 부족하고 모자란 아이가 아니라,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내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신의 죽음이란, 신에 대한 인간의 독립 선언이자 신에 의존하여 살던 인간의 불안감을 표현한 것이라 했다. 같은 의미에서 본다면 말(언어)을 살해한 자는 말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자이면서, 말에 의존하는 삶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태양으로부터 풀려난 지구의 운명이 궁금하듯 언어의 세계에서 벗어난 이 아이의 삶 또한 궁금해진다.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말을 하지 않는 자는 여유로운데 말을 듣고 싶은 자들이 오히려 초조해한다. 말을 하지 않아서 오는 답답함 보다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 인한 해방감이 더 커 보인다. 말을 소비하지 않지만 화평한 얼굴로 유유자적하는 이 녀석이 신기하다. 대낮에 등불을 든 광인이 학교에 나타난 건 아닐까?

 

다만, 바라는 바가 있다면 약한 힘에의 의지로 나아가 삶의 무의미함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강한 힘에의 의지로 나아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말의 감옥에서 해방된 인간으로 스스로 자신을 넘고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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