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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역사로 존재를 변명하다!

 

 그의 앞에 놓인 선택지는 너무나 잔인했다. 그는 5천의 군대로 8만에 이르는 흉노와 용감히 싸우다 어쩔 수 없이 투항했던 이릉(李陵)을 변호하는 진언으로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이 일로 결국 사형이 결정된다. 그가 사형을 피할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그 하나는 50만전을 내야 하거나, 아니면 궁형(宮刑)을 자청하는 것이었다. 당시 50만전은 5천의 군사가 1년을 먹을 수 있는 돈으로, 요즘의 가치로 따지자면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지만 대략 300억 정도일 것이다. 물론 사마천에게는 그런 돈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지인(知人)들은 한무제의 노여움을 살까 또는 그러한 재물을 내놓기가 아까워 아무도 나서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죽음이냐? 아니면 궁형(宮刑)이냐? 이 두 개의 선택지 만이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당시 사마천의 나이는 49세였다. 지금의 다르게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 경의 49세는 요즘의 육십에서 칠십 정도의 노인에 해당했다. 가혹한 궁형은 건강한 몸을 가진 젊은이에게도 생명이 위태로운 것이었으니, 이미 노인에 속하는 사마천에게는 더 큰 위험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시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환관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조롱거리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사마천은 결국 궁형을 선택한다. 그가 위험과 천대를 감당하면서까지 삶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사마천의 이 선택의 순간에 자주 뛰어들어 그의 깊은 고뇌의 순간을 함께 하곤 한다.

 

저는 불손하게도 요사이 서툰 글에 삶을 맡기고 있습니다. 천하에 사라져 버린

옛 소문들을 망라해 고찰하고 처음과 끝을 종합하고, 성패와 흥망의 시대를

헤아려, 위로는 헌원(軒轅)으로부터 아래로는 오늘에 이르렀으니,

10표(表), 12본기(本紀), 8서(書), 30세가(世家), 70열전(列傳), 해서 130편입니다.

하늘과 사람을 끝까지 궁구하고, 고금(古今)의 변화를 통달하여

일가의 말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초고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릉의 화를 만났으니 노여운 빛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 소경 임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사마천은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을 받들어 역사서를 쓰고 있었다. 자료를 모으고 기원전 106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작업에 매진했다. 처음은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아버지의 못다 이룬 역사서 집필을 완성해야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역사서 집필 과정에서 기존의 무미건조한 연대기적 집필과 또는 중요 역사적 사건 중심의 역사 서술이 아닌, 역사의 장고한 세월 속에 살고 죽어간 인물들의 삶을 자신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평가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인간의 역사를 쓰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작업을 하던 기원전 99년, 그에게 이릉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인간 삶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역사 서술의 방향을 잡고,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서를 편찬하겠다는 열정이 뜨거웠던 사마천에게 닥친 이릉 사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고통과 조롱을 견디면서 죽을 수도 있지만 삶의 희망을 붙들고 궁형을 선택하여 하늘이 허락한다면 역사서의 편찬을 완성할 것인가? 그 깊은 고민 속에서 결국 그는 궁형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나의 죄인가, 나의 죄란 말인가! 몸이 훼손되어 쓸모없게 되었구나.”

- 태사공 자서 중에서 -

 

저는 몸이 망가지고 처지는 하찮게 되어 움직이기만 하면 비난을 받고 있으니

잘해 보려고 하면 할수록 손해가 됩니다.

사정이 이러하여 혼자 울적하기만 한데 누구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 소경 임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궁형은 그에게 진실로 큰 고통이었다. 궁형의 고통은 하루에 한 번 장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있었고, 여름에는 염증이 심해져 살이 썩는 냄새가 심하여 가족마저도 가까이 오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신체적 고통과 더불어 주변의 조롱과 비웃음은 그에게 더한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반드시 증명해야 한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또한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 의미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자신의 역사서로 보여 주고자 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역사서에 등장한 수많은 역사적 인물의 삶으로 투영되었다. 마침내 그 고통의 작업은 기원전 91년경 완성된다.

 

이리하여 모두 130편, 52만 6천 5백 자에 달하는 책이 완성되니 그 이름을 『태사공서(太史公書)』라 한다.

이제 그 정본(正本)은 명산에 깊이 간직하고, 그 부본(副本)은 경사에 비치하니

그 진가를 알아줄 성인 군자가 후세에 나오길 기대할 뿐이다.

나는 황제로부터 태초(太初:한무제 연호)에까지 서술하여 끝내니 모두 130편이다.

긴 숨을 내쉬고 붓을 눕히다.

- 태사공 자서 중에서 -

 

 그의 역사서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부분은 열전의 시작은 백이숙제 열전이고, 마지막 화식 열전에서는 자공이 등장한다. 의(義)를 극단적으로 중시한 백이와 안회, 이(利)를 추구할 줄 알았던 자공을 통해, 삶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순간의 핵심인 의(義)와 이(利)의 긴장과 대립을 보여 주었다. 그 안에서 인간의 선택이 어떻게 삶을 만들어가는 것인가를 역사적 인물의 삶을 쫓아가며 서술하고 평가하였다. 그는 공자를 극히 존경했지만, 공자의 의(義)로운 삶만을 높이 평가하는 이상주의적 평가를 거부하고, 현실 속에서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이(利)의 중요함을 재평가 하였다. 그리하여 화식열전을 통해 올바른 방법으로 부를 추구하고, 그 부를 아름답게 풀어 쓸 줄 아는 부자들에 대해 서술하였던 것이다. 또는 공자가 극찬한 백이와 숙제의 선택에 대해 정말 칭찬할만한 일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것이다.

 사마천은 억울하게 궁형에 당한 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았던 자신의 삶을 비관하지 않고, 역사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었던 인물의 삶을 찾아 그를 위한 변명을 해주는 역할도 자처하였다. 그가 궁형의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역사 속의 인물에 대해 이리 정성을 다해 자료를 찾고 정당한 평가를 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을까? 환관이라는 소수자의 삶,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신체의 고통이 아니었다면 그는 한나라 지배층의 안온한 삶의 시각으로 역사서를 무난하게 서술하였을 것이다. 시대의 중력 속을 유유히 평온하고 살아갔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의  『사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마천의 선택과 삶의 과정에 뛰어들어 그의 고뇌와 고통, 그리고 마지막의 숨을 거두기까지를 함께 느껴보고자 했던 나는 그 안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의로움을 구하는 자 의로움을 얻을 것이고, 재물을 구하는 자 재물을 구할 것이며, 권력을 구하는 자 권력을 얻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는 나의 문제이고, 타인이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가지는 것에 대해 혹은 타자의 시선에 의해 내 삶의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 삶을 살 것인지, 그 길에 대해서만 집중할 것이다. 나의 위버멘쉬 사마천이 자신만의 역사서 기록에 모든 생을 걸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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