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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물론은 주체의 실종을 이야기하는가?

우주영웅 2023.07.26 11:57 조회 수 : 358

우연히 어떤 강연회에서 강연자가 한 말이 떠오른다. “탈근대주의와 구조주의가 주체의 실종을 가져왔다” 철학사에서 주체란 개념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하지만 탈근대주의와 구조주의 나아가 포스트 구조주의 뿐만 아니라, 주체를 관계속에 용해시키고 물질을 살아 있는 것으로 보는 신유물론이나 실재론적이고 탈관계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객체지향존재론 또한 주체를 실종시키고 만다. 둘다, 공히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있지만, 말이다.

여전히 인간들은 착취적인 세계에 산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신유물론을 비롯한 이론의 흐름들이 착취적인 세계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들뢰즈는 내재성을 이야기하면서 “순수 사유”를 주장했다. 하지만 들뢰즈가 비판한 초월성이 부메랑이 되어 들뢰즈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들뢰즈의 영향을 받은 신유물론 철학도 예외일수는 없다. 좀더 확장을 하면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분별도 없고 시비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불교철학과 장자의 주장이 초월적인 것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아래의 책에 서술된 신체적 유물론이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을 해 본다..

유물론 니체,마르크스,비트겐슈타인,프로이트의 신체적 유물론/테리 이글턴 지음/전대호 옮김/갈마바람

분별이 있고, 시비도 있는 세상을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많은 외견상의 혁신들이 그렇듯이, 신유물론은 겉보기와 달리 전혀 새롭지 않다. 신유물론은 포스트구조주의와 마찬가지로 인본주의--인간이 세계에서 특권적인 지위를 차지한다는 믿음--을 의심하며, 인간과 자연계를 무차별적으로 휩쓰는 물질적 힘들을 지목함으로써 인본주의를 흠집 내려 한다. 그러나 단지 인간 주위의 모든것에 영혼을 불어넣음으로써 인간의 고유한 특징을 깍아 내릴 수는 없다. 물질도 어쩌면 살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물질은 인간이 살아 있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살아 있지는 않다. 물질은 절망하거나 횡령하거나 살인하거나 결혼할 수 없다. 달은 어떤 의미에서 살아 있는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달은 스트라빈스키보다 쇤베르크를 더 선호할 수 없다.물질 입자들은 사람들처럼 의미의 세계안에서 움직이지 않는다.사람들은 역사를 가질 수 있지만, 양귀비들과 백파이프들은 그럴 수 없다. 물질도 어쩌면 스스로 자신을 활성화할 것이다. 그러나 물질의 자기 활성화는 사람의 목표 달성과 다르다. 물질은 달성할 목표가 없다. (25쪽)
 
사람은 물질세계의 돌출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버섯과 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버섯과 다른데, 그 이유는 사람이 정신적이고 버섯이 물질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물질성의 독특한 형태인 동물의 한 사례이기 때문이다.또한 사람은 동물계 안에서도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 이는 사람이 명백히 ' 더 고등한 ' 동물이라는 말이 전혀 아니다. 반면에 신유물론은 인간의 특별한 본성에 대한 담론을 오만이나 관념론으로 섣불리 단정한다. 이것이 포스트모던 유물론이다. 특권을----인간과 나머지 자연을 파괴적으로 분할하는 것을--- 경계한 나머지, 생기론적 유물론은 우주적 평등주의에 입각하여 그런 구분들을 없애고 물질 자체를 다원화하는 위험을 감수한다. 그리하여 신유물론은 결국(나중에 보겠지만)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의 사상을 비판하면서 지적한 관조적(contemplative)세계관에 귀착한다. 만물이 기계적이고 게으른 것이 아니라 살아 있고 역동적이라고 보더라도, 그런 세계관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26쪽~27쪽)
 
생기론의 주요 악덕들 중 일부를 질들뢰즈의 철학에서 볼 수 있다. 순수 혈통의 형이상학자인 들뢰즈에게 존재는 내재적 창조성이다. 그 창조성은 무한하고 절대적이며, 그 창조성의 최고 표현은 순수한 사유다.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 <안티 오이디푸스>,<차이와 반복>이 그리는 영지주의적 우주에서 주체, 몸, 기관(organ), 행위자, 담론, 역사, 제도--사실상 현실성 그 자체--는 (내재적 창조성이라는) 이 가상적이며 불가해한 힘을 방해할 위험이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몸이 영혼을 감금한다고 여겨진 것과 꽤 유사하다. 대체로 들뢰즈는 제약을 부정적으로만 본다. 이 관점은 저잣거리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반영한다. 다른 경우에 들뢰즈는 그 이데올로기를 수긍할 수 없다고 보는데도 말이다.역사, 윤리, 법, 소유, 영토, 의미, 노동, 가족, 주체성, 일상적인 성생활, 대중 정치조직은 대체로 정상화하고 거세하고 규칙화하고 식민지화하는 힘들이다. 들뢰즈가 존경하는 미셸 푸코의 견해도 대체로 마찬가지다. 통일성, 추상, 매개, 의미, 관계성, 내면성, 해석, 표상, 지향성(intentionality), 화해는 삐딱한 눈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소외된 지식인의 관점에서 보면, 일상적인 사회적 실존에서는 건설적인 것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대신에 들뢰즈는 우리에게, 생동하고 창조적이며 욕망하고(desirous) 역동적인 (명백하게 옹호되는) 영역과 안정적 물질 형태들의 억압적(암묵적으로 악마화되는) 영역 사이의 진부한 대립을(몇 개의 한정구들과 더불어) 제시한다. 들뢰즈의 우주적 생기론은 맹렬한 반 유물론이다. '생명'은 에테르화하는 힘이며, 신체를 가진 인간에 전혀 관심이 없다.신체적인 인간의 최고 성취는 자신의 동물성을 벗어던지고 이 확고한 힘의 고분고분한 매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핵심 질문은, 어떻게 우리가 우리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느냐이다.(28쪽~29쪽)
 
"따라서 인간 주체는 항상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게 낯선 자, 자신이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힘들에 의해 구성된 자다. 바로 이것이 유물론의 주장이다. 관념론이란 마치 스스로 태어나기라도 한 것 같은 주체를 출발점으로 삼는, 따라서 충분히 멀리 거슬러 올라가서 출발하는 데 실패하는 철학이다." (35쪽)
 
이글턴에게 물질(대표적으로 몸)은 우리의 기반인 동시에 굴레다. 물질은 우리에게 완강히 저항한다. 이 같은 물질의 완강함을 알아채고 인정하는 것이 신체적 유물론, 나아가 무릇 유물론의 출발점이다. 그럼에도 이른바 신유물론은 우리와 물질 사이에 존재하는 이 엄연한 맞섬을 은폐하면서 양자의 동질성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205쪽)
 
이제껏 설명한 대로 번역자가 보기에 이 책 <유물론>의 핵심은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저자 이글턴이 내놓는 "신체적 유물론"이라는 대답이며, 그 대답의 의미는 인간의 몸이라는 복잡미묘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관념론이나 신유물론과의 대비를 통해 뚜렷하게 드러난다.이글턴에게 인간은 분열적, 개방적, 창조적, 자기초월적인 몸이다.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그런 인간들이 여전히 착취적인 세계에서 산다는 점이다. (201쪽)
 
유물론 니체,마르크스,비트겐슈타인,프로이트의 신체적 유물론/테리 이글턴 지음/전대호 옮김/갈마바람에서 인용함
 
참고로 "초월성과 내재성" 과 관련해서 아래와 같은 글을 인용합니다.개인적으로 공부하는 중이라 아직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저는 불교 철학과 장자의 주장이 초월성의 철학이 아닌가 의심하며 들뢰즈가 비록 사유의 전제가 되는 초월성에 대해서 비판하고 내재성을 이야기하며 순수 사유를 주장을 했지만 위의 내용을 근거로 해서 보았을때 들뢰즈 자신도 초월적인 사상이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듭니다.위의 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인간의 신체에 대한 보다 면밀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무의식과 욕망의 차원에서 인간의 신체에 접근해야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주장해 봅니다.
 
"따라서 인간 주체는 항상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게 낯선 자, 자신이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힘들에 의해 구성된 자다." 바로 이것이 유물론의 주장이다. 
{유물론 니체,마르크스,비트겐슈타인,프로이트의 신체적 유물론/테리 이글턴 지음/전대호 옮김/갈마바람 35쪽에서 인용함}
 
나카지마는 "장주와 나비는 반드시 구별이 있을 것이다."라는 구절에 주목한다. 장자 본인이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구별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카지마는 물화를 초월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장자가 나비로 혹은 나비가 장자로 변형되는 생성이라는 내재적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했다.다시 말해 장자는 단순히 변화 자체가 아니라 생성이라는 사태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창조가 없음에서 있음을 만드는 작용이라면, 생성은 있음에서 새로운 있음으로의 이행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어떤 개체는 타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이전과는 다른 개체로 변형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생성이다. (....)나카지마에 따르면 이 생성의 논리가 응축되어 있는 장자의 개념이 바로 물화라는 개념이다. 그는 장자가 나비로 변한 사태, 장자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사태, 그리고 장자가 죽음의 즐거움을 알게 된 사태를 주목한다. 이것은 그가 타자와의 관계와 그로부터 발생한 생성의 논리를 엿보려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자 닭이 되어 때를 알려라/ 나카지마 다카히로 지음/조영렬 옮김중 강신주(철학자), <추천의 글>에서 인용함
 
비록 부족한 글이이지만, 댓글을 남기기는 것보다는 기획세미나자료에 글을 남기는 것이 개인적으로 맞다고 생각하여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행여나 수유너머104의 방침에 위배되거나 어긋난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자유롭게 자신의 주장과 의사를 표현할수 있는 통로와 공간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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