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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한없이 가라앉아 감정의 바닥을 치고 올라오고 싶은데 바닥이 느껴지지 않을 때,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깨어나 다문 몇 시간이라도 지났음에 안도할 때.

처음 그런 경험을 했을 때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대학 입시 준비 기관이었던 학교에서 입시공부에 적합한 신체를 만들기 위해 열등감을 만들었다. 동생처럼 한 가지에 재능이 있었다면 진로 선택이 쉬웠을 것이란 생각은 내게 특출난 재능이 없다는 것의 귀인을 부모님께 돌리게 했다. 재능이 없으니 노력을 해야지. 내게 결핍된 부분을 찾고,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는 습관을 이때 만들었다. 신체나 관계에 쏟을 에너지를 모두 입시공부에서의 구멍을 메우는데 소모했다. 구멍이 메워지는 것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가끔씩 며칠씩 우울했다. 나는 그런 나를 이해할 수도 없었다. 

심리학이나 프로이트, 라캉을 만나며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보았다. 나만 결핍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인간은 모두 결핍된 존재이며 모두 무의식적으로 메워지지 않는 결핍을 메우려하며 살아간다는 말은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따뜻하고 또렷한 위로는 될 수 있어 나는 친구들의 좋은 상담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결핍의 원인이 가족이건, 사회적 존재인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건 결핍에 대한 이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에 대한 답이 되진 않았다. 

내가 가진 결핍에 대한 환상은 무조건적인 애정을 주고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린 내게 부모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분들이 아니라 생각했다. 높은 상품성을 갖는 노동력으로 성장하는 모습일 때 더 애정을 받는다고 느꼈다. 친구 관계에서도 그런 관계를 찾지 못했던 나는 그래서 연애에 매달리기도 했지만 친구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진경 선생님을 통해 만난 마르크스와 들뢰즈는 결핍의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인식의 틀을 버릴 용기를 주었다. 자본의 욕망과 생산의 배치로 읽어내는 현상들이 훨씬 명료했고, 무엇보다도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답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은행의 예적금 이율이 낮아지자 주식과 비트코인으로 눈을 돌리는 나와 주변 지인들의 조바심을 증식된 가치로서의 잉여가치인 자본의 욕망으로 설명한다. 자본의 욕망을 생산하는 배치 속에서 갭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이 바보인 것이고, 낮은 이율의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사지 않는 사람이 멍청한 것이다. AI나 자동화기술이 발달할 때마다 전반적인 노동력의 가치는 저하될 수 밖에 없다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적 법칙은 왜 노동자들이 가장 가까운 옆사람들을 혐오하게 만드는지를 설명해준다. 과잉인구를 생산하여야만 유지될 수 있는 자본주의가 상품성 없는 노동력이 되어선 안된다는 실업화압력으로 우리를 항상 결핍된 존재로, 자기계발이 필요한 자원으로 만든다. 새롭게 획득한 인식의 틀이 아직은 무뎌서 섬세하게 벼려져야겠지만, 그리고 자본의 욕망에 포섭된 내가 얼마만큼 아는 것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자본주의적 배치에서 어떻게 벗어나 새로운 배치를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고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는 것은 위로보다 훨씬 바람직한 삶일 것이다. 

내가 늘 바랬던 무조건적인 애정이란 등가교환적인 관계가 아닌 선물로서 주고 받음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공동체의 욕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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