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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기획세미나] 7/25 후기

선명 2014.07.25 18:53 조회 수 : 391

제가 원래 다음 주 수업에 대한 후기를 맡고 있었는데, 다음 주에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게 되어 급하게 이번 주 후기로 변경해서 맡게 되었네요 ㅜ

 

그래서 수업 시간에 나온 얘기들을 전부 빠짐없이 꼼꼼하게 기록하지는 못했고요, 아무래도 제가 주의 깊게 들었던 내용들 중심으로 서술이 될 것 같습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ㅜ

 

 

이번 주는 <작가와 몽상>, <덧없음>, <유머> 이 세 글을 갖고 얘기를 나누었죠.

 

 

먼저 <작가와 몽상>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이 글에서 프로이트는 어린 아이의 놀이와 어른의 몽상을 연결시키면서 그 차이점 또한 기술하고 있는데요,

 

어린아이의 놀이는 어른이 되겠다는 욕망에 의해 인도되어 어른들의 삶에서 배운 것들을 모방하기 때문에 숨겨야 할 이유가 없는 반면, 성인의 몽상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어린 아이의 놀이를 어른들의 질서, 현실의 질서를 받아들이면서 현실에서는 자신의 신체적, 사회적 조건의 영향으로 이루지 못하는 욕망들을 성취하고자 한다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현실의 성을 빗대어 모래성을 짓는다거나, 아빠/엄마의 규범적 형태를 본따 인형놀이/부엌놀이 등을 한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죠.

 

그렇기 때문에 어린 아이의 놀이는 숨겨야 할 이유가 없다, 즉 어른들도 같이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의 원칙 아래에서 작동하는 욕망이기 때문에 숨길 이유가 없다 라고 보는 건데요, 저는 어린 아이의 놀이에서 이와는 전혀 다른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아이의 놀이에서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기능적 유용성, 혹은 사회에서 규범적으로 통용되는 사물들의 이용 방법에 반하는, 그야말로 자신들의 마음대로 기존의 어떤 사물을 놀이의 대상으로 삼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지 않나요? 예를 들어, 어른들은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올라가거나 반대로 내려오기 위해서, 즉 어떤 이동 수단의 하나로서만 이용하는 계단에서 아이들은 가위바위보 놀이를 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죠.

 

프로이트는 이 글에서 놀이의 과정이 사회의 규범들을 습득해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동시에 규범들을 습득하기 전의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 즉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인식에 자신을 맞춰 살아가면서 잃어버렸던, (잠재적으로)존재하는 사물의 무수한 가능성 역시 어린 아이의 놀이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처음부터 너무 제 생각이 길어져버렸는데...이거 글이 엄청 길어질 듯 하네요. 적당히 정리하면서 넘어가야 할 듯.)

 

 

다음으로는, 발제문의 3-(4)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는데요. "신경증과 정신 이상의 발생 조건을 형성하는 것은 여러 몽상이 모였을 때 그 몽상들이 얻는 지배적 지위이다."라는 프로이트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여기서 프로이트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접근법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는 아무래도 양적인 측면에서 이 둘을 구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몽상은 이성의 작용의 끝에 있지만, 어쨌든 이성의 영역 안에 있는, 억압된 욕망을 충족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소위 정상적인 성인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몽상이 현실의 원칙들을 넘어서서 지배적 지위에 이르게 되면 비정상적 정신 이상의 상태로 보는 식인거죠.

 

 

다음은, 발제문의 4.에 해당하는 내용에 관한 얘기였습니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적 작품분석의 가능성을 얘기하고 있는데, 문학 작품을 통해 작가의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풀려 나온 욕망이 충족되기 때문에 작품을 통해 작가의 최근뿐만 아니라 옛 기억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정신분석적 작품분석을 통해 작가의 무의식을 발견하고 거기에 각인되어 있는 시대적 무의식까지 발견한다면 흥미로운 작품 분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는 작품 분석의 한 가지 방법으로 한계를 지어야 할 필요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 분석의 방법에는 이 말고도 다양한 틀이 있으니까요.

 

 

다음은, 발제문의 5.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사전 쾌락'과 관련된 얘기였습니다. 사전 쾌락은 뭔가 직접적이지 않은, 직접적이고 육체적인 접촉에 의해 발생하는 쾌락 이전의 간접적인 접촉으로 발생하는 쾌락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능 프로의 예가 등장했는데요. 사람들이 직접 행위를 하지 않고도 쾌락을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예능 프로가 진화하고 있어서, 사람들을 행위 이전의 상태, 수동적인 상태로 가두고 있다는, 대중 문화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전 쾌락에는 환상이 가미될 여지가 크기 때문에 직접적 쾌락보다 더 큰 쾌락을 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제기되었습니다.

 

 

 

 

휴, 이제 <덧없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여기서는 <슬픔과 우울증(애도와 멜랑꼴리)>와 관련된 물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다른 분도 말씀해주셨지만, 저 역시 본문의 이 문장 (발제문에 있는 걸 옮기겠습니다 : "리비도는 어떤 대상에 처음 집착을 하게 되면 그 대상을 상실했을 때 다른 대체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대상을 포기하지 않는데 이것이 슬픔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기존에 알고 있었던 애도와 멜랑꼴리 중에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슬픔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혹 아직 그 둘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혼재되어 기술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인데요.

 

<슬픔과 우울증(애도와 멜랑꼴리)>를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지만 (일단 급하게 후기를 쓰는 관계로... 다시 읽고 생각이 정리되면 첨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수업 시간에 정리된 내용으로 (그리고 물론 이를 제가 이해한 내용으로) 이를 구분해보자면,

 

우선, 애도와 멜랑꼴리 모두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대상을 명확히 인지하면서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의 과정을 거쳐 그 (상실된) 대상을 포기하게 된다면 슬픔은 소진됩니다. 이렇게 성공적인 애도의 과정 이후에 리비도는 비로소 다른 대상을 찾아 떠날 수 있으며 우리는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애도의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상실의 슬픔은 병리학적 증상인 멜랑꼴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멜랑꼴리의 상태는 (상실된) 대상과의 동일시, 그 대상에의 고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로 인한 슬픔에서 헤어나오려 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는 개인을 때로는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하는데, 이 때문에 애도와 멜랑꼴리를 삶과 죽음을 향한 방향성으로 각각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어느 심리치유가의 의견에 따르면 아이들이 함께 모여 충분히 슬퍼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된다면, 처음에는 시간이 가면서 그 사건을 잊고 잘 생활하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툭툭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고,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수업 시간에도 누군가 질문을 하셨는데, 저 역시 충분히 애도의 과정을 거쳐 떠나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상실된 대상에의 고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이를 드러내지 못하고 억압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후에 어떤 사건에 의해 이것이 떠오른다면 당연히 괴로울 것이므로 이를 피하기 위해) 이는 증상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헷갈릴 수도 있어서 잘 구분을 해야 하는 것이,

아무래도 히스테리 증상은 자아의 유지에 위협적인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증상으로 전이되어 나타나는, 즉 이 역시 쾌락 원칙 하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멜랑꼴리는 위에서 분명히 죽음 충동과 관련이 있다고 얘기했단 말이죠.

그래서 멜랑꼴리라는 증상을 히스테리 증상으로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힘들 것 같고, 성공적인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멜랑꼴리로 나아가는 원인인) 바로 그 상태의 또 하나의 가능한 결과로 히스테리 증상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멜랑꼴리에 대해서 더 알아보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어서, 멜랑꼴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에 대한 얘기가 있었는데요. 프로이트는 분명 이를 병리학적 증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멜랑꼴리는 여러 이론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 또한 받고 있습니다. '예술가의 천재성'을 얘기하는 벤야민의 예가 수업 시간에 제기되었습니다.

 

이건 저의 또 다른 생각인데, 멜랑꼴리의 가능성을 이렇게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프로이트의 말대로 성공적인 애도의 과정을 거친다면 리비도는 역시 성공적으로 상실된 대상을 떠나 다른 대상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과거의 기억을 다루는 문제에서, 과연 이것이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일까요?

다시 말해, 그렇게 떠난 대상은 그 자체로 수용 가능한 대상이 되었고 영원한 과거로 개인에게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우리에게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과거로만 존재하게 된다는 거죠.

정확한 이름은 생각이 안 나지만, 나치의 유대인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한 유대인이 나치를 다룬 여러 형태의 작품들이 자신의 사후에 세상에 나오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는 나치의 유대인수용소는 지속되는 현재인데 이렇게 이를 다룬 작품들이 하나 둘 나오다보면 이는 과거의 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뿐이고, 현재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현재에는 이미 사라져버린 대상으로 남는다는 것에 회의와 분노를 표시한 겁니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그래서 끊임없이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사건을 (애도를 비롯한) 여러 과정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무언가로, 자아의 안정성을 위협하지 않는 무언가로 바꾸어 다시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건, 물론 남은 삶을 위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로 인해 잊혀지는 기억들, 왜곡되는 사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에 대한 경계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멜랑꼴리의 상태를 이러한 현실의 폭력에 맞설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아 이제 드디어 마지막인 <유머>입니다.

 

이 글에서는 농담과 유머의 구분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는데요, 제가 <농담과 무의식>을 읽지 않아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오늘 수업에서 나온 얘기와, <유머>에 나와 있는 설명을 통해서만 본다면,

아무래도 유머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맞서 쾌락 원칙의 승리를 말해주는, 고통스러운 현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식으로 웃어 넘길 수 있게 만드는 자아의 방어기제로서 말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그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보다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나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큰 것이라 보입니다.

 

반면에 농담 같은 경우는 그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가하는 것 같습니다. 공격성이라고 표시한 것이, 조롱과 같이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그와 나의 위계 관계를 역전시키고자 하는 것이죠.

 

글쎄요, 여기까지만 봐서는 저 역시 농담과 유머과 뒤섞일 수도 있을 것 같고 명확하게 구분이 가기 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여기서 프로이트가 유머를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자아의 안정성을 유지해주는, 쾌락 원칙에 입각한 방어 기제의 하나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나아가, 수업 막바지에 제기된 초자아와 관련된 의문들에 대해 제 의견을 말해보자면 (이건 어디까지나 제 의견입니다.),

 

초자아는 기본적으로 현실의 원칙들 (라깡이 얘기하는 상징계의 질서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에 맞게 자아를 규율하려고 합니다.

초자아가 자아의 쾌락을, 그 과잉의 쾌락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현실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데 있어, 자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죠.

반대로, 유머와 같이 초자아가 자아의 쾌락을 용인하는 경우 역시, 그렇지 않으면 현실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데 있어, 고통스러운 현실 때문에 자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초자아가 어떤 때는 쾌락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어떨 때는 쾌락을 용인하는 건 모두 동일한 이유에 의해서라는 거죠.

 

 

휴................

대충 빠르게 오늘 듣고 제가 이해하고 또 의문을 가졌던 것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당연히 제가 오해한 부분도 있을 거고, 여러분과 다르게 이해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댓글을 통해서든, 다음 시간 수업에서든 의견을 나누면서 좁혀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앗, 근데 제가 다음 시간에 못 오는군요 ㅜㅜㅜㅜㅜㅜ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그럼, 전 2주 뒤에 뵙겠습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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