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철학사는 결석생이 좀 많아서
오랫만에 오붓하게 진행되었네요.
이번 7주차에는 이제까지 읽은 플라톤을 기반으로 해서
이를 들뢰즈는 어떻게 읽어냈는가를 살피는 시간이었지요.
그리고 더불어 시뮬라크르의 잠재력에 대해 들뢰즈는 루크레티우스를 통해 강화시킨 것으로 읽혔어요.
기존에 플라톤의 나눔의 철학이 원본과 복사물에 대한 나눔을 행하지만
들뢰즈가 보기에 플라톤의 목적은 또 다른 곳에 있다고 보았지요.
그것이 바로 이마주의 두 구분, 원본과의 유사성의 복사물과 비유사성의 시뮬라크르의 구분.
이 구분을 통해 플라톤은 시뮬라크르를 근거없는 지원자로 분류하고 이의 잠재적 힘을 묶어두려 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이 시뮬라크르를 (비)존재로 보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뮬라크르는 원본과 복사물, 복사물과 시뮬라크르의 경계를 자꾸만 흐트리고 있고,
이런 시뮬라크르의 힘때문에 플라톤은 그토록 나눔의 철학을 통해 시뮬라크르를 봉쇄하려 한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현대의 문학과 예술은 나눔의 방법을 타파하고, 시뮬라크르를 솟아오르게 하는 작업이라 봅니다.
<피네건의 경야>[를 읽지는 못했지만 ㅠㅠ ] 를 언급하는 이유도 그런 점과 연관이 있는 것 같구요.
더불어 시뮬라크르를 영겁회귀와의 연관 아래서 다시 사유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요.
여기서 플라톤의 시뮬라크르를 뒤엎는 사유가 전개되는 것 같았습니다.
반장님이 아이온의 시간과 관련하여 설명을 해주셨는데 흑ㅠㅠ 전 아직 이해를 못했어요.
이 부분 이해되신 분들은 덧글로 좀 달아주셔욤~~
전 아마 생성의 관점에서는 시뮬라크르가 일차적이며 이데아 등등은 효과물(이는 루크레티우스와 시뮬라크르에서 살필 수 있었지요)로 보는
들뢰즈의 사유 속에서 이 운동의 방식이 영겁회귀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형상의 관점에서 본 플라톤의 분유의 방식에 대한 반론이다고 이해를 했구요.
그리고 이어서 마지막 8주차인 발제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었습니다.
철학사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흥미로웠던 개념에 대해 나름의 정리를 하셔도 좋고
그 개념을 자신의 관심분야와 연결하여 쓰셔도 좋아요.
마지막 8주차는 8월 27일 2시 30분에 세미나를 합니다.
에세이는 3-4페이 정도로 써오시고, 11부 출력해오시구요.
끝나고 저녁도 함께 하려면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야겠네요~~
그럼 오는 화요일에 뵈요!!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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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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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
ㅋㅋㅋㅋ
이게 무슨 말이지!!!!!!
여태껏 잘 참석해오다가 한 주 못 갔더니 완전 신세계네요 ㅋ
그나저나, 준안정적이라는 단어의 영어 표현이 기가 막히네요 ㅎㅎ
저게 들뢰즈 용어의 영어번역인가봐요?
meta를 완전히 뒤집어버리넹 ㅋ
물론 그 뒤집기도 뫼비우스의 끈처럼 연결된 뒤집기려나...ㅋ
어찌됐든....
좋은 후기, 멋진 댓글 잘 읽고 갑니당~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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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ia
대훈, 댓글이 이게 뭐냐? 질문을 하려면 질문을 하고, 다른 사유를 전개하려면 그렇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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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
에고....죄송합니다, 반장님..
분위기 좀 띄워볼려다가 그만...ㅠㅠ
도가 지나쳤던 표현은 자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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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ia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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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이
풋! 대훈 다음에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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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뮬라크르는 강도이며 차이자체입니다. 그런 면에 시뮬라크르는 플라톤적인 '형상'의 심층에서(표면인 한에서의 심층) 활동하는 (비)존재인 것이지요. 이것은 표면으로 올라 오면서 물체적인 것(coporeal)을 밀어 올리며, 그 물체적인 것의 안감이 됩니다. 따라서 시뮬라크르는 어떤 '실체'를 가지지 않는 것이지요. 그것은 어떤 효과로서 '의미' 또는 '환각'을 만들어 내면서 스스로를 '표현'할 뿐입니다. 이때 생성되는 것이 바로 '사건'이지요. 하지만 사건은 시뮬라크르의 '흔적'을 담고 있을 뿐인데, 따라서 이 흔적은 시뮬라크르의 편에서는 일종의 '공백' 또는 그 공백을 가리는 '가면'으로 파악됩니다. 플라톤은 이러한 가면이나 환각을 자신의 자신의 이데아를 거스르는 비유사성 또는 유사성으로부터 한없이 멀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를 플라톤은 phantasmata라고 하지요.
2.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영겁회귀'는 플라톤의 안정된 위계적 구조로서의 우주(cosmos)와는 다릅니다. 이 플라톤적 우주는 차라리 영겁회귀의 효과이거나 그것의 일부일 뿐이지요. 이것은 준안정적(metastable) 구조를 유지하는 강도들의 회귀, 즉 차이자체의 회귀를 의미합니다. 이 차이 자체는 표면에서는 일종의 '공백'으로 또는 '환각'으로 생성되며, 따라서 영원히 회귀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이 '공백'들입니다. 더 심층으로 가면 하나의 우주 전체가 단 한번에 긍정되는 것이지요. 주의할 것은 여기서 '긍정'이라는 것이 단순히 윤리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회귀를 사유하기 위한 존재론적인 '긍정 ', 즉 하나의 우주, 시뮬라크르의 준안정적 상태가 들끓는 이 전체 우주에 대한 하나의 우발적인 생성 자체, 또는 그것을 아우르는 역능 자체의 다른 말입니다. 이 역능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양태들에 존재하는 역능입니다. 그래서 '긍정'은 누승적입니다. 한 번의 긍정이 아니라 두 번의 긍정, 세 번의 긍정을 통해 계속 회귀하는 것이지요. 이런 누승적 역량은 우주 자체의 힘이며 스스로를 긍정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이 역량은 계속 발산하는 우주의 힘을 단 한번 만에 주파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긍정은 존재론의 단어, 그 존재론 자체의 역량을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3.
따라서 영원회귀는 표면에서의 공백의 회귀와 심층에서의 우주의 누승적 회귀이지만 이 두 면은 잇닿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표면은 늘 '심층인 한에서'의 표면이며, 심층은 늘 '표면인 한에서' 심층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유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면, 뫼비우스 띠를 생각해 보시면 그나마 명확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의 면이 밖과 안을 모두 거느리는 이 도상은 표면과 심층이 하나로 이어진 구조를 가지고 있지요.
사실상 '사건'이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이 뫼비우스 띠가 꺽이는(굽어지는) 그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이 굽어지는 그 지점에서 바로 '무한'(apeiron)이 등장합니다. 그 지점은 바로 '사건의 시간'이며, 사건의 시공간이고, 따라서 시뮬라크르가 물체를 밀어올리는 위상공간 안의 한 질점(에너지로서의 질점)이기도 하며, 우주 자체의 구조의 대칭성이 깨지는 지점이기도 합이다. 따라서 이 지점이야말로 '아이온'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이 시간을 완전히 창조해내지는 못하지만, 그 시간에 맞추어(스토아는 이를 '시의적절성'eukaireia이라고 했습니다.) 하나의 사건과 '공명'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레닌이 페트로그라드로 입성하면서 외친 그것,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그 슬로건은 기가막힌 eukaireia인 것이지요.
이 사건의 시간은 그래서 '상징'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해석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