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미나자료 :: 기획세미나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논의가 이루어졌던 부분 중 기억에 남는 것을 제 나름대로 이해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발언과 제 생각을 곁들였는데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으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1. 리좀 : 내새성, 혹은 외부의 사유 中

 

(1) 개념 정리 : 기표와 기의, 랑그와 파롤(feat. 강아지와 개새끼)

소쉬르의 고전적인 책 《일반언어학 강의》는 책이 하나의 배치이며 다양체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소쉬르는 기호(signe)가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로 나뉜다고 말했습니다. 문자 혹은 음성인 기표는 의미인 기의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비로소 기호가 됩니다. 이를 ‘기호의 자의성’이라고 합니다. ‘지시대상과 무관한’ 기호는 지시체로부터 탈영토화되거나 랑그(langue)라는 규칙 안에서 재영토화 되어 하나의 유기체가 됩니다. 이때 랑그는 한 언어가 갖는 추상적인 체계를 뜻하는데 발화 행위를 뜻하는 파롤(parole)과는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기표는 자의성을 갖고 기의에서 미끄러져 다른 기의와 결합합니다. 따라서 같은 기표가 전혀 다르거나 조금 다른 기의와 결합하여 상이한 기호가 되기 십상입니다. 같은 기표가 다른 지시체를 갖는 경우도 있고(불어의 mouton과 영어의 mutton), 같은 지시체를 갖지만 전혀 다른 가치(의미)를 갖기도 합니다(우리말의 강아지와 개새끼).

 

(2) 명확하게 쓰인 글이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까닭

명확한 주제를 명확한 어조로 전달하는 것은 글쓰기의 상식인데 이런 글조차 관점에 따라 다른 가치를 띱니다. 이는 결코 글이 모호하여 어떤 식으로든 해석할 수 있게끔 쓰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텍스트가 외부와 접속하여 새로운 책-기계로 창조ㆍ생성된 것입니다. 이를 책의 외부성이라고 합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신들의 책을 마음껏 이용해 달라고 촉구합니다. 중심화된 사유를 깨부수고 동일화하는 논리를 파괴하며 새로운 다양체를 생산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기 위해.

문득 《광장을 읽는 일곱가지 방법》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읽어 보지는 않았는데 한 소설을 역사적, 형식주의적, 심리주의적, 사회학적, 신화적, 구조주의적, 포스트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비평한 책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텍스트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자세는 사고의 지평을 넓혀 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3) ‘일자’를 없애는 것에 대하여

책의 유형은 수목형(뿌리형), 곁뿌리형(총생뿌리형), 리좀형으로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중 리좀형은 곁뿌리를 끌어들이며 통일시키는 중심, 즉 일자를 제거하여 뿌리끼리 유기적으로 연결한 형태로 수목형. 곁뿌리형과는 대비됩니다. 여기서 ‘일자(一者, I'Un, the One)’는 국가의 정치적 중심(법이든 왕이든)과도 같은 것입니다. 중심이 없으면 사유는 하나의 모델에 뿌리박히지 않고 매번 상이한 외부를 향해 나아가는데 이를 유목적 사유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자를 꼭 없애야 할까요? n명을 발포하게 하는 오직 한 명의 장군이 있는 수목형 전쟁조직과, 집합체를 이끄는 각각의 리더가 그때마다 발포하게 하는 게릴라형 전쟁조직 중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일지는 생각해 볼 일입니다. 한국군은 무조건 상부의 명령을 받아 행동하는 반면 미국 군대는 일단 행동하고 상부에 보고하는 체계라는 말이 흥미로웠습니다.

 

2. 리좀의 몇 가지 특징들 中

(1) 맑스적 사유의 리좀적 증식의 구체적인 사례

리좀의 두 번째 원리는 ‘이질성의 원리’로 다양한 종류의 이질성이 결합하여 새로운 이질성을 창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맑스의 텍스트가 다양한 외부와 뒤섞이며 여러 방향으로 증식되는 것은 맑스적 사유의 리좀적 증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사례는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맑스를 잘 모르지만 상식에 근거하여 생각했을 때 이미 순수 자본주의가 한계를 드러냄에 따라 어느 정도 사회주의 방식의 복지제도가 도입되고 있는 실정인 듯합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우리는 코로나 사태에 따른 재난지원금을 받아 마른 목을 축일 수 있었죠.

이윤에 얽매이지 않는 공동체도 여럿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윤보다는 인간으로서의 행복, 함께하는 삶을 추구하고 자연환경과 인류를 생각하는 데 집중합니다. ‘수유너머’도 그런 공동체 중 하나겠지요. 그 밖에 콜롬비아의 생태공동체 ‘가비오따쓰, https://haanel01.tistory.com/entry/가비오따스-Gaviotas-생태마을은’, 당진의 발달장애인 센터 ‘민들레처럼, https://www.mincheo.com’이 언급되었습니다.

 

(2) 두 지층 간의 평행론, 코드의 잉여가치 이용

난초의 일종인 오르키데는 말벌 암컷 ‘흉내’를 내어 말벌 수컷을 끌어들임으로써 꽃가루를 퍼뜨립니다(오르키데의 말벌되기와 말벌의 오르키데 되기). 또 고양이의 내재성 레트로 바이러스인 RD-114는 수백만 년 전 지중해 연안에 살던 선조 개코원숭이(비비)의 내재성 레트로 바이러스가 선조 고양이에게 옮아 내재화 된 것입니다. (참고로 RD-114는 1971년 인간의 횡문근육종 세포에서 발견되면서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로 잘못 지목되어 C형 레트로 바이러스로 불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종을 넘나들며 진화하는 것을 ‘비평행적 진화’라고 하며, 덜 분화된 것에서 더 분화된 것으로 나아가는 진화 모델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리좀적입니다. 두 개의 지층이 나란히 가며 소통한다는 의미에서는 ‘두 지층 간의 평행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위와 같은 현상을 ‘흉내내기’가 아닌 ‘코드의 포획’이며 ‘코드의 잉여가치 이용’이라고 말합니다. 좀 더 직관적인 사례로 ‘녹용’이 언급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슴의 뿔은 가치 있는 약재로 작용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사슴의 고기만을 가치 있게 취급한다고 하네요. 같은 정보(코드)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기에 그 잉여가치를 적절히 활용하면 된다는 뜻일까요. 버려지는 녹용을 싸게 수입한다든지. 그런데 어차피 이미 수입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3) 리좀적으로 지도를 그린다는 것

정확한 모상을 재현했을 뿐인 지도는 삶이나 행동의 경로가 되지 못합니다. 상황과 필요에 맞게 지도를 변형하는 것, 그것이 바로 리좀적 지도그리기가 아닐까 합니다. 예를 들어 ‘네이버 지도’는 때에 따라 다양한 모드로 변형할 수 있죠. 버스 경로를 부각할 수도 있고 우체국만 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상의 변형은 곧잘 왜곡으로 이어집니다. 프로이트는 한스라는 소년의 공포증을 분석할 때 자신의 모델에 소년의 사례를 끼워 맞춰 소년의 지도를 더럽혔습니다. 프로이트 나름대로는 아주 정확하게 지도를 그렸다고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정확히 재현하려야 100퍼센트 정확히 재현할 수 없습니다. 한 면에 물감이 칠해진 종이를 접는 순간 원래의 현상이 변형되는 데칼코마니처럼요. 따라서 어떻게 지도를 그리는지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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