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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인지10 수학의 모험 에세이

유수 2021.07.17 12:53 조회 수 : 61

<자기언급의 역설과 리만/푸앵카레 기하학에 대한 나이브한 감상문>

 

김민수

 

 자기언급의 역설은 ‘너와 나’가 불분명해진 명명법 속에서, 우리의 문법구조가 가지는 한계를 어렴풋이 점지해주는 듯했다.

나는 눈이 침침하고 어둡다.

나는 눈이 어둡고 침침하다.

두 문장 속에서 눈의 속성은 시간의 축을 지니지 않는다. (침침함, 어두움)이란 속성은 한 개의 분자마냥 눈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이며 (침침함, 어두움)을 (어두움, 침침함)으로 교환하여도 구성요소로써 이 분자가 변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대화할 때, 시를 쓸 때나, 주장문을 쓸 때, 대화 속의 우리들은 아까의 교환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호감가는 이성에게 자신의 강점을 은근히 어필하려할 때, 나를 이루는 구성요소들이 차근차근 말로 꺼내어질 때,

이 구성요소들이 시간순으로 배열됐던 것들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정말 말의 순서를 고려하지 않는가?

 그리고 문장A 속의 단어 ‘어두움’과 문장B 속의 ‘어두움’은 분명히 결이 달라진다.

문장은 단어들의 집합의 집합 즉, 멱집합(power set)이다.

러셀이 <수학의 원리>에서 멱집합은 하위의 집합과 같은 계형(type)이 아니라고 했었듯이,

단어들은 상위집합의 해석기술 앞에서 ‘의미가 도약된다’고 얘기하고 싶다.

 우리는 ‘그리고’라는 수평적 이음새 단어를 활용하지만 은연중에 수평에 기울기를 부여한다.

우리가 말들을 꺼내면서 분명히 무작위여도 좋을 말들에서 순서를 골라대는 것은,

수평적 정의(그리고)가 상위집합(문장)에서 해석되며 발생하는 어그러짐이, 수평을 기울게 했음이다.

 

 또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갇혀있는 부분들이,

갇힌 상태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노래하려는 모습을 포착했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감금지는 물론 전체이다.

더 이상 관계맺어질 수 없는, 자신이 포함된 전체 밖의 한 점, 전체의 밖이기에 다시금 부분들의 상상 속으로,

전체로 회귀되는 어긋난 점을 현대수학은 포기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푸앵카레와 리만은 각기 다른 공준으로, 하지만 둘 다 ‘부분’의 신분으로써 전체를 볼 수 있는 기하학을 제시한다.

 

 잠시 감상적으로 얘기해보는 문장을 가져보고 싶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몇 가지 말의 분류를 느끼곤 한다.

나에게서 발생돼서 나를 맴돌다가 나로 꺼져버리는 말. 온전히 너에게로만 나아가는 말.

나에게서 시작했지만, 그리고 너에게 나아가고는 있지만 나아간 말이 종국엔 너를 끌어당길 말.

첫 번째 말은 자폐적인 말이다. 어딘가 끄집어내고 싶음이 있으나 언어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혹은 언어를 이기적으로만 써왔던 사람들이 해당된다.

두 번째는 간단하다. 비난이다. 나를 이 말의 구사에서 교묘하게 빼버리거나, 강력한 직선적 어휘들로 상대를 후려치는 데 급급하다.

세 번째는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렇지만 말을 하면서 분위기가, 친구들이 내게 빨려들고 있다는 감각을,

한번이라도 느껴본 자라면 이 말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차마 지나칠 수 없을 거라 사료된다.

이 말은 경계가 없는 말이다.

나는 말이 있었던 경계를 없애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 사이에는 경계 따위가 원래 없었는데 말이란 것이

경계를 만들어냈는지는 모른다.

다만, 세 번째 말을 구사한다는 느낌 속에서 나는 경계를 느낄 수 없었다.

느껴진 걸 굳이 발화하자면, 그것은 인간의 사이 간이 ‘허물어짐’이었다.

 

 다시 본론이자 결론으로 돌아오자.

이번 청인지 “수학의 모험”을 진행하며 나는 수학이 꾀하려는 자신의 변화, 구어체계가 아니기에,

학자들끼리 치열하게 다툼하며 변화하는 수학이, 어떻게 보면 구어보다 빠르게 언어의 변화를 선도한다는 느낌도 받았었다.

특히 리만, 푸앵카레를 읽으며 나는 ‘단절되지 않은 기초체계’를 읽은 것 같다.

고전역학에서는 관찰자와 사물은 분리되어 있다. 둘은 단절되어 있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아야 ‘관측’이 성립된다.

그러나 이 ‘관측’은 너무나 순수해서 관측이 될 수 없었단 사실. 이 사실이 나를 푸근하게 했었음을

부끄럽지만 글로나마 고백해야겠다.

그리고 ‘자기언급의 역설’을 읽으며 인간언어의 중의성을 돌파하려는 수학자들의 모습,

이 모습이 내가 추구하는 돌파방법과는 다르지만, 어딘가 우스울지언정 내겐 우습지않은 연대를 내게 느끼게 했었다.

마무리 짓다 보니 수줍게 고백하는 글이 되어버리고 있다.

청인지에서 수학을 사람들과 읽으며, 홀로 읽기보다 더 풍부한 감정을 느꼈다고 쓰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저리주저리 말 많이 한 저를 인내심있게 들어주신 지금 읽고계신 독자분께,

고맙다고 마지막 한줄을 꼭 할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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