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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주제] 1권 유럽의 니힐리즘 > 1장 니힐리즘

 

■1. 니힐리즘 :: 맥락과 주제들 =====

 

  [1] 힘에의 의지와 니힐리즘      

: 니체는 왜 힘에의 의지를 말하기 전에 니힐리즘을 경고하고 있나? 니힐리즘과 힘에의 의지는 어떤 관계에 있나?

(p9_#2) 니힐리즘의 도래, 성찰하지 않는 유럽 :: 다가오는 두세기는 니힐리즘이 도래할 것이다. 앞으로 두세기는 니힐리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올 수 없으며, 니힐리즘의 도래는 지금 백가지의 징후로 말하고 있다. 지금 유럽문화 전반은 바다를 향해 내달리면서 뒤돌아보지 않고 성찰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강처럼, 폭력적이고 무모하다.

(p9_#3) 니체, 최초의 완벽한 니힐리스트 :: 유럽문화와 반대로, 나는 지금까지 뒤돌아보면서 반성하는 일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유럽 최초의 완벽한 니힐리스트로서, 나는 이미 니힐리즘 전체를 온전히 살아냈으며, 이제 니힐리즘을 극복하고 거기서 벗어나 있다. (*완벽한 니힐리스트 : 완벽한=완전한, 근본적인, 극단적인 / 니힐리즘의 극단까지 경험한, 그리하여 니힐리즘을 극복할 수 있었던 니힐리스트)

(p10_#4) 니힐리즘과 힘에의 의지 ::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이유는 이 미래의 복음서의 제목의 의미에 대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제목은 [권력의지: 모든 가치들을 재평가하려는 시도]인데, 이 명확한 표현 안에 원리와 과업을 둘러싼 대항운동이 포함되어 있다. 그 대항운동은 미래에 니힐리즘을 대신하게 될 운동이지만, 이 운동은 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니힐리즘을 전제하고 있으며, 니힐리즘이 끝난 뒤에야 바로 그 니힐리즘에서 나올 수 있다. // 왜 니힐리즘의 도래가 불가피한가?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가치들이 최종결과(*허위로 드러나거나 회의를 낳고 있다)를 보여주고 있고, 니힐리즘이 우리가 지금까지 위대하게 여겨왔던 가치들과 이상들의 논리적 결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가치들’이 진정으로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니힐리즘을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 우리는 조만간 새로운 가치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2] 니힐리즘의 현상, 표현       :: 니힐리즘이란 무엇인가?

*최고의 가치들이 탈가치화되는 것 : 시대의 지배적 가치들이 가치(권위, 믿음)를 잃어버리는 것!

(p16_#1) 가치, 의미, 바람직성 같은 것을 근본적으로 배척하는 현상

(p19_#2) 최고의 가치들이 스스로 가치를 박탈하는 것 (최고의 가치들이 탈가치화되는 것) / (p46_#47) 지금까지 있었던 철학, 도덕, 종교의 최고가치들...

(p19_#3) ‘사람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가치들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확신

               ‘신성’하거나 도덕의 화신이 될 수 있는 내세나 ‘물 자체’ 같은 것을 가정할 수 없다’는 깨달음

(p21_#8) 무가치성에 대한 믿음 / (p25-12) 무가치의 감정 / (p22_#11) 가치 같은 것도 없고 의미 같은 것도 없다는 인식

(p22_#8) “지금까지 모든 게 헛수고였어!” / (p54_#53) “헛일이야!”라는 감정

(p26_#13) 세상에는 어떠한 진리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물의 절대적 본질 같은 것은 없으며, ‘물 자체’라는 것도 없다.

 

  [3] 니힐리즘의 원인과 생성매커니즘       :: 니힐리즘은 어디서 오는가? (원인) / 니힐리즘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생성매커니즘)

 

▶니힐리즘의 원인 :: 문제설정과 언급

(p16_#1) 니힐리즘 원인에 대한 문제설정 :: 니힐리즘은 어디서 오는가? 니힐리즘의 원인을 사회적 절망이나 생리적 퇴화(*데카당스)로 보는 것은 실수이며, 영혼의 절망이나 육체의 절망, 지성의 절망은 그 자체로 니힐리즘(가치, 의미, 바람직성 같은 것을 근본적으로 배척하는 현상)을 낳지 못한다. 

(p16_#1) 니힐리즘의 원인은 기독교도덕적 해석에 있다.

(p19_#1) 니힐리즘은 지금까지 세상을 지배해온 최고가치들의 세상에 대한 가치평가의 결과이다.

(p20_#3) '절대적 가치는 없다'는 이 깨달음은 (*기독교) ‘정직성의 결과이며, 도덕을 믿었던 결과인 셈이다.

(p21_#8) 도덕적 평가의 결과로 나타난 니힐리즘

(p25_#12B) 이성(*철학)의 범주들(목표ㆍ전체성ㆍ존재)에 대한 믿음이 니힐리즘의 원인이다. 

 

▶니힐리즘의 생성매커니즘 (가치평가의 결과로서 니힐리즘 :: 역사적 유래, 종교와 도덕)

*최고의 가치들이 탈가치화되는 것 : 시대의 지배적 가치들이 가치(권위, 믿음)를 잃어버리는 것!

"니힐리즘은 지금까지 세상을 지배해온 최고가치들(종교도덕철학)이 세상을 해석한 결과이다."
= 니힐리즘은 지금까지 인간이 추구해온(지켜온) 최고가치들(종교ㆍ도덕ㆍ철학)에 대한 믿음의 상실에서 생긴다.

······> 먼저, 인간은 무엇인가를 진리로 여기는 믿음(최고가치로서 종교ㆍ도덕ㆍ철학)을 창안한다.
······> 다음, 최고가치들(종교ㆍ도덕ㆍ철학의 세상에 대한 해석)은, 우리 자신이 우리 존재를 비난하게 만들고 개인을 힘들게 만들고 높은 대가를 강요한다.
······> 결국, 최고가치들이 허위로 드러나거나 회의를 낳으면서, 니힐리즘이 생겨난다.

① 니힐리즘의 생성매커니즘1 :: 세상에 대한 기독교적 가치평가가 ······> 허위로 드러나면서 니힐리즘이 생긴다.

(p16_#2) 기독교의 종말기독교의 도덕(*정직성) 의해 앞당겨지고 있다. 기독교의 도덕(*정직성)이 기독교의 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기독교적 가치평가(신이 최고가치, 세상을 선/악으로 평가)의 허위가 드러나면서 니힐리즘으로 이어진다. 기독교적 정직성이 세상에 관한 기독교적 해석의 허위에 역겨움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신이 진리라는 믿음 대신에,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광적인 믿음(니힐리즘)이 생겨나게 되었다.

(p20_#5) 기독교 도덕에 의해 배양된 힘들 중에 정직성이 결국엔 기독교 도덕에 반기를 들고 나섰고, 이어 기독교적 정직성은 도덕의 목적과 편향적인(*허위적인) 관점까지 발견했다. 그동안 사람들이 탈피하기를 단념했던 뿌리 깊은 허위를 인식한 것이다. 기독교의 도덕적 해석에 의해, 우리 내면에는 비진리에 대한 욕구(*비진리를 추구하는 욕구)가 심어졌다. 우리가 삶에 추구하는 가치는, 바로 이 비진리에 대한 욕구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도덕을 믿는 한, 우리 자신이 우리의 존재를 비난하게 된다.

② 니힐리즘의 발생매커니즘2 :: 세상에 대한 도덕의 가치평가에 ······> 회의가 일어나면서 니힐리즘이 생긴다.

(p17_#3) 세상에 대한 도덕적 가치평가(도덕이 최고가치, 세상을 옳고/그름으로 평가)에 회의가 일어나면서 니힐리즘으로 이어진다. 세상을 도덕적으로 해석하는 현상이 끝났다는 것이 니힐리즘으로 이어진다. 세상에 대한 도덕적 해석은, 한때 이 세상 너머로 도피하려 시도했으나 이제 더 이상 구속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지금까지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세상에 관한 도덕적 해석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세상에 관한 해석이 모두 허위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니힐리즘)이 생겨났다. 무를 향한 갈망(*니힐리즘)이 나타나고 있다. 도덕적 신을 극복하려는 철학적 시도(헤겔의 절대정신, 범신론)가 있다. 대중적 이상들(현자, 성자, 시인)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있고, 진정하고 아름답고 선한(*진선미)’ 것들에 대한 반대도 있다.

(p21_#7) 인간이 살면서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고 배운 최고가치들, 특히 개인을 힘들게 만들고 개인에게 높은 대가를 강요하는 사회적 가치들 '현실'로서 '진정한' 세상으로서, 희망과 미래의 세상으로서 인간 위에 서 있다. 마치 그 목소리가 신의 명령이라도 되듯이. 이 가치들의 비열한 기원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지금, 우주는 가치를 상실한 것같고 '무의미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과도적 단계일 뿐이다!

 

▶니힐리즘의 생성매커니즘 (심리적 상태로서 니힐리즘 :: 본질적 조건, 철학)

"이성의 범주들(목표ㆍ전체성ㆍ존재)에 대한 믿음이 니힐리즘의 원인이다. "

"우리는 세상을 평가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세상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결국 인간 자신을 위해 동원했던 가치(목표ㆍ전체성ㆍ존재)가 적용불가능해지자, 세상을 평가절하시켰다."

① 어떤 사건에서 있지도 않은 '의미(목표)'를 추구하고, 결과적으로 낙담하게 될 때, 우리는 니힐리즘 상태에 이른다.

   니체의 통찰 "생성은 어떤 목표도 갖지 않는다."

(p23_#12A) 우리가 모든 사건에 있지도 않은 '의미'를 추구했을 때, 그래서 우리가 결과적으로 낙담하게 될 때, 니힐리즘의 상태에 이른다. 그러면 니힐리즘은 힘을 오랫동안 낭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헛수고'에 따른 고뇌가 되고, 불안이 되고, 평정을 되찾을 기회를 결여한 상태가 된다. 마치 자신을 아주 오랫동안 속여온 것처럼, 자기자신에게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니힐리즘의 상태이다. / 여기서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모든 사건에서 높은 도덕규범의 실현하려고 하는 것, 우주의 도덕적 질서를 제시하는 것, 인간들의 교류를 통해 사랑과 조화를 추구하거나 일반적인 행복상태에 다가서는 것이다. 이것들의 공통적인 것은 '과정 자체를 통해 무엇인가가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정 속에서 특정한 목표가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 / 그런데 지금 우리는 '생성은 아무것도 목표로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따라서 생성의 목표와 관련한 낙담이 니힐리즘의 원인이다. 인간이 생성의 중심이라는 '진화가 추구하는 목표의 가설들은 부적절하다'는 깨달음이 니힐리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② 자신의 가치를 위해 '전체성(ex. 보편적 이상)'을 고안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작동하지 않을 때, 인간은 니힐리즘에 빠진다.

   니체의 통찰 "개인을 완전히 함몰시키는 그런 장엄한 전체성 같은 것은 절대 없다."

(p24_#12A) 인간은 어떤 종류의 전체성(최고의 가치 ex. 완벽한 일관성, 진정한 변증법)에 대한 믿음을 가정한다. 그리고 자신이 무한히 탁월한 어떤 전체의 맥락 속에 있다는 감정을 느끼면서, 자신을 신성의 한 유헝으로 보고 자신의 가치를 믿는다. 흔히 '보편적인 존재(전체성)의 향상은 개인의 헌신을 요구한다'고 하지만, 보편적 존재 같은 것은 절대로 없다! 이렇게 인간은 무한히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전체성이 자신에게 작동하지 않을 경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니힐리즘에 빠진다. 다시말해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믿기 위해 그런 전체성을 고안해낸다. (우리는 무한히 소중한 전체성(보편적 이상)을 고안해내고, 우리가 전체성의 맥락 속에 있을 때 자신의 가치를 믿고, 우리에게 전체성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니힐리즘에 빠진다)

 심리적 필요에 의해 '참된 세계'를 발명하고, 그것이 위조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니힐리즘이 생겨난다.

   니체의 통찰 "존재는 진실하지 않고, 참된 세계는 없다."

(p24_#12A) 앞의 2가지 통찰(생성은 어떠한 목표도 갖지 않는다. 생성 밑에는 개인을 완전히 함몰시키는 그런 장엄한 전체성 같은 것은 절대 없다.)을 고려할 때, 마지막으로 한가지 핑계가 남는다. 이 생성의 세계에 대해 기만이라고 판결하고, 생성의 세계 너머에 어떤 '참된' 세계를 발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참된' 세계가 순전히 심리적 필요에 의해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니힐리즘이 생겨난다. 이 형태의 니힐리즘은 형이상학적 세계에 대한 불만을 포함하고, '참된' 세계에 대해 어떤 믿음도 갖지 않는다. // 이 같은 관점을 갖게 되면, 사람은 생성의 현실을 유일한 현실로 인정하고 사후세계와 거짓신에 대한 어떤 접근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람은 생성의 세계를 거부하지 않는데도, 생성의 세계를 견뎌내지 못하게 된다. (*기존의 가치는 허물어졌지만, 이것을 대체할 새로운 가치가 없기 때문!)

■ 근본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p25_#12A) '목표(의미), 전체성, 진리(참)' 개념으로, 존재의 성격이 해석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일어나면서 무가치의 감정(*니힐리즘)이 생겨난다. 존재는 목표나 종말 같은 것을 전혀 갖고 있지 않으며, 전체성 같은 것도 없으며, 존재는 '진실하지' 않고 '참된' 세계의 근거는 없다. (*이러한 깨달음에서) 이제 우리는 어떤 가치를 세상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용했던 '목표, 전체성, 존재' 같은 범주들을 다시 배제시킨다. 그래서 세상이 무가치하게 보이는 것(*니힐리즘)이다.

■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평가절하되어야 할 것은, 철학의 범주들(목표ㆍ전체성ㆍ존재)이지, 세상(우주, 사물)이 아니다.

(p25_#12B) 우리가 세상을 더이상 이 3가지 범주(목표ㆍ전체성ㆍ존재)를 기준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하는 통찰을 얻은 후로, 우리에게 세상이 무가치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 3가지 범주에 대한 믿음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원천에 대해 의문을 품어야 한다. 우리가 목표ㆍ전체성ㆍ존재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만 하면, 그것을 우주(세상)에 적용할 수 없다고 해서 우주(세상)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것은 아니다.  [결론] 이성의 범주들(목표ㆍ전체성ㆍ존재)에 대한 믿음이 니힐리즘의 원인이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를 허구적인 범주들에 따라 측정해왔다. [최종결론] 우리가 지금까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세상을 평가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동원했던 가치들(목표ㆍ전체성ㆍ존재 같은)이 지금 적용불가능해지자, 우리는 세상을 평가절하(*세상은 가치가 없어!)시켰다. 이 모든 가치들은 심리학적으로 고려하면 인간의 (*세상에 대한) 지배구조를 증대시키기 위해 고안된 실용적 관점의 결과물이며, 이 가치들이 사물(세상)의 본질 속으로 잘못 투영된 것이다. 

■ 니힐리즘은 쇠퇴의 결과이며, 힘에의 의지만이 니힐리즘을 극복할 것!

*(현상) 니힐리즘은 최고가치들이 탈가치화되는 것이다. / (원인) 최고가치들은 어떻게 귄위를 상실하게 되었나? 그것은 지금까지 최고가치들이 지배해온 결과, 인간이 최고가치들(종교ㆍ도덕ㆍ철학)에 대한 믿음의 상실에서 생긴다.

니힐리즘이란 우리가 우리의 외부에 설정한 초월적 가치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의 상실에서 오는 반동적이고 부정적인 힘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초월적 가치에 대한 믿음이란, 신ㆍ도덕ㆍ이성 뿐 아니라, 권력ㆍ자본ㆍ돈, 심지어 과학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을 절대적 진리로 여기는 태도일 것이다.) 한편 니힐리즘은 우리가 스스로 생산적으로 가치를 설정하는 힘을 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외부에 초월적 가치를 계속해서 세우고 그것에 의존하는 한, 니힐리즘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니힐리즘을 인간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출현하는 서구역사의 근본운동이라고 한다. 진은영은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에서 니힐리즘의 계보를 정리합니다. 종교적 니힐리즘(플라톤주의, 기독교)에 이어, 근대적 무신론적 니힐리즘(과학, 도덕, 진리), 그리고 탈근대적 형태의 니힐리즘(차이의 승인ㆍ인정)에 이르기까지!

[니힐리즘의 형태와 니체의 극복전략] 
전통적 종교적 니힐리즘(플라톤주의, 기독교) ······> 극복전략_그리스적 불멸성
근대적 무신론적 니힐리즘(과학, 도덕, 진리) ······> 극복전략_영원회귀 사상
탈근대적 니힐리즘(차이의 승인ㆍ인정)        ······> 극복전략_차이의 철학

 

  [4] 니힐리즘의 극복       :: 극단적 니힐리즘 / 능동적 니힐리즘, 수동적 니힐리즘 / 완전한 니힐리즘, 불완전한 니힐리즘

 

극단적인 니힐리즘이란 무엇인가?

(p26,27_#14,15) 더없이 풍부한 삶의 이상이고 정신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이상인 '니힐리즘' 그것은 부분적으로 파괴적이고 부분적으로 아이러니하다. ...... 모든 믿음은 무엇인가를 진리로 여기는 것이다. 극단적 형태의 니힐리즘은 '진리의 세상 같은 것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믿음(그러니까 무엇인가를 진리로 여기는 것)은 반드시 거짓'이라는 견해이다. 따라서 '세상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고, 이 세상의 기원은 우리 안에 있다.' ...... 우리가 죽어 사라지지 않는 범위 안에서 '거짓말의 필요성을 스스로 어느정도 허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우리의 힘이 어느정도인지' 말해준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니힐리즘은 진리의 세계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하나의 신성한 사고방식이다.

*하나의 진리 / 다수의 진리

 

 능동적인 니힐리즘, 수동적인 니힐리즘 (니힐리즘의 2가지 의미)

 (p31_#22) [능동적인 니힐리즘: 증대된 정신의 힘을 보여주는 신호로서의 니힐리즘. 수동적인 니힐리즘: 정신적 힘의 쇠퇴를 보여주는 신호로서의 니힐리즘]

 (p31_#23) [능동적 니힐리즘: 니힐리즘은 (*증대하는) 힘의 신호일 수 있다. 정신이 너무 강하게 성장하여 이전의 목표들(확신, 신앙의 조항들)이 부적절해지는 것이다. 수동적 니힐리즘: 니힐리즘은 자기 스스로 어떤 목표, 이유, 신앙을 생산적으로 설정하는 힘을 결여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 폭력적인 파괴의 힘으로서 능동적 니힐리즘으로서 니힐리즘은 힘의 절정에 달하고 있다. 반대로 더이상 공격하지 않는 지친 니힐리즘, 약함의 신호인 수동적 니힐리즘이 있다. 정신의 힘은 소모되거나 고갈될 것이며, 그러면 이전의 목표와 가치가 부적절해지고 더이상 믿어지지 않는다.]

(p32_#24) 니힐리즘은 '헛수고!'라는 감정을 놓고 깊이 생각하는 것(수동적 니힐리즘)만도 아니고, 모든 것은 사라질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실제로 파괴하는 것(능동적 니힐리즘)이다. 니힐리즘은 판단의 부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행동에 의한 부정을 요구한다. 판단에 의한 소멸은 완력에 의한 소멸을 보완할 뿐이다. *니힐리즘이 가치를 파괴하는 사례들

 

완전한 니힐리즘과 불완전한 니힐리즘

(p34_#28) 완전한 니힐리즘이 지금까지 옹호되어 왔던 이상의 불가피한 결과인가? 우리는 불완전한 니힐리즘 속에 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가치들을 재평가하지 않고 니힐리즘을 피하려한 시도들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니체는 2권에서 지금까지 세상을 지배해온 최고가치들을 비판한다!)


④ 강함으로서의 페시미즘, 쇠퇴으로서의 페시미즘!

(p22_#10) [강함으로서의 페시미즘: 아나키와 니힐리즘, 분석으로서의 페시미즘의 논리에 그 힘이 있다. 쇠퇴으로서의 페시미즘: 모든 것을 점점 약화시키는 영향력으로서, 일종의 세계주의적 취미로서, 페시미즘은 쇠퇴이다.

(p32_#26) [능동적 페시미즘은 무시무시한 투쟁을 벌인 뒤에, 심지어 승리를 거둔 뒤에도 "무엇을 위해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 우리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거나, 위험을 무릅쓰도록 하거나, 더이상 나쁠 수 없는 것을 스스로 감수하도록 하는 목표를 갖는 것, 그것이 위대한 열정이다.]

(p37_#32) [우리의 페시미즘: (*약한 페시미즘) 세상은 우리가 갖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그런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 세상의 가치가 훨씬 덜해보인다. ...... (*강한 페시미즘) 이런 식으로 우리는 새로운 가치들을 추구하도록 촉구하는 비애감을 발견한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가 믿어온 것보다 훨씬 더큰 가치를 지녔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을 최대한 잘 해석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게 정당한 가치를 제대로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가치본능들이 신격화되었으며, 강자와 약자를 분리시키는 차이를 만들어내려는 욕망들이 비방당하고 있다.]

(p38_#34) [현대의 페시미즘은 현대세계의 무용성을 표현할 뿐, 존재와 세상의 무용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5] 니힐리즘과 영원회귀      

 

 영원회귀는 극단적인 형태의 니힐리즘이다!?

(p53,54,55,56_#55) 신과 도덕적 질서에 대한 믿음이 허물어졌을 때, 자연의 절대적 비도덕성(자연의 무목적성과 무의미성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감정이 된다. 니힐리즘은 이 지점에서 나타난다. 존재에 따른 고통이 이전보다 커졌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의 ‘의미’를, 존재의 ‘의미’를 불신하게 되었기 때문에, 니힐리즘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한 가지 해석이 전복되었다. 그것이 유일한 해석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마치 존재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모든 것이 헛된 것처럼 보인다. ...... “헛일이야!”라는 감정이 니힐리즘의 성격을 이루고 있다. 끝이나 목표가 없는 ‘헛된’ 지속이야말로 사람을 가장 무기력하게 만든다. 바보처럼 이용당하면서도 그런 식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을 때, ‘헛된’ 지속은 사람을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 ...... 이 같은 생각을 아주 무시무시한 형태로 바꿔보자. 존재 자체가 의미나 목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실재라는 최종적 결말 없이 불가피하게 다시 순환하는 것, '영원회귀'가 바로 그런 형태이다. 이것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니힐리즘이다. 영원히, 영원히 무(무의미)라니! 인식의 힘이 우리를 그런 믿음으로 이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과학적이다. 우리는 종국적 목표를 부정한다. 만약 존재가 그런 목표를 갖고 있다면, 그 목표는 이미 달성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선과 악 너머'에 있는 어떤 신을 상상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인가? 우리는 과정에서 목적이라는 관념을 배제하면서도 그 과정을 긍정할 수 있는가? ...... 만약에 모든 행위의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고 모든 행위에 표현되고 있는 근본적인 특징(*힘에의 의지)이, 개인에게 자신의 근본적인 특징(*힘에의 의지)으로 인식된다면, 그 개인은 자기 존재의 매순간을 의기양양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같은 근본적인 특징(*힘에의 의지)은 그 사람의 내면에서 선하고 소중하고 유쾌한 것으로 느껴질 필요가 있다.

 

(p58_#55) 능동적 니힐리즘은 어떻게 영원회귀로 이어지는가?

(p59,60_#55) 영원회귀에 대한 약자의 퍼스펙티브, 강자의 퍼스펙티브?

니힐리즘은 체질적으로 실패하고 망가진 자들이 더이상 어떠한 위안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이것은 모든 존재가 '의미'를 잃은 뒤의 능동적인 부정(능동적 니힐리즘)이다. ...... '신, 도덕, 체념'이 심각한 단계의 비참에서 치유책이었다면, 능동적 니힐리즘은 훨씬 호의적인 상황에서 등장했다. 도덕이 극복된 것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의 지적 문화를 전제하고 있으며, 이 지적 문화는 어느 정도의 상대적 행복을 증명하고 있다. ...... 영원회귀라는 가르침은 학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모든 계급에 걸쳐서 가장 건강하지 않은 부류의 인간들이 니힐리즘이 성장하는 토양이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영원회귀를 하나의 천벌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수동적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의미없는 모든 것과 목적 없는 모든 것을 소멸하도록 할 것이다. 그 사라짐은 "모든 것은, 심지어 니힐리즘과 파괴의 이 시기에도 영원히 거듭 존재해왔다"는 사실 앞에서 하나의 발작이나 일종의 맹목적 분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그런 위기는 건강한 관점에서 힘들 사이에 새로운 위계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첫걸음을 뗀다는 점에 가치가 있다. 당연히 그 방향은 기존의 모든 사회질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런 식으로 새롭게 확립된 질서 속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입증할 사람은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 극단적인 믿음(*독단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 어느 정도의 운과 터무니없는 것(*우연성)까지도 인정하고 좋아하는 사람, 인간에 대해 온건하게 생각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약해지지 않는 사람, 슬픔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대단히 건강한 사람, 말하자면, 자신의 힘을 확신하고 인간이 이룬 강한 상태를 의식적으로 긍지를 갖고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은 영원회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약자의 존재론

[아침놀 #206] 니체는 우리에게 어느 길을 갈 것인가, 묻는다.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독립적이라는 것! 그것은 동시에 가능하다.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노예적이라는 것! 이것도 가능하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만약 당신이 “지금의 상태처럼 기계의 나사로 소모되는 것을 치욕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그리고 ”높은 급여를 통해 ...... 비참한 삶이 본질적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후자의 삶을 택한 것이다. ‘돈 많은 노예상태’를 치욕으로 경험하느냐 행복으로 경험하느냐, 그 힘의 감정에 따라 우리는 아주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니체. 4장] 아침놀에 대한 비평서인 [언더그라운드 니체]에서 고병권은 약자의 존재론을 한층 명료하게 보여준다. "즐거움과 자유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즐거움과 예속 사이에도 모순이 없다. 그러므로 자유인도 노예도 모순 없이 즐겁게 살 수 있다. 다만 한 인간은 다른 인간의 세계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다. ‘성공한 노예’가 되었을 때, 노예가 느끼는 환희를 자유인은 견딜 수 없는 치욕으로 느낀다. 그들은 마주 보면서도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두 개의 길, 즐거움은 어디에도 있다. 당신은 어디서 환희를 느끼고, 어디서 비참을 느끼는가.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매트릭스의 선택] 매트릭스의 전사들은 행복한 허위의 세계힘겨운 진실의 세계를 선택하는 빨간 약과 파란약을 앞에 두고 있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운, 혹은 비참한 현실이 고통스러운 어떤 전사는 결국 예전의 삶을 선택한다! 그는 결국 행복해졌을까?

[그런다고 바다가 변하나?] ‘박카스’ CF 일반인 모델 김용규·문수정 부부. 다이빙하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 방치 대신 수거. 해변 아무리 청소해도 1주일이면 쓰레기 천지. SNS 공유···시민들과 바다 환경보호 나서 "이 넓은 바다가 그런다고 회복될까요? "최소한 우리가 지나온 길은 바뀌잖아요." ...... 보다 근본적인 것은 바다의 변화가 아니라, 쓰레기를 청소하는 동안 자신의 변화이다. (또한 내가 건강해지면서 세계가 건강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즐겁고 독립적인' 힘감정을 느끼는 존재들인 것이다. ...... 그리고 돈이나 직장이나 명예가 생기는 것이 아닌데도, 골치아픈 텍스트 [힘에의 의지]와 대결하는 우리들도 마찬가지 존재가 아닐까? 그런 방식으로 즐거움과 힘감정을 느끼는!!

[약자적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아마도 니체의 안타까움 "행동을 하면 답이 나올 사람이,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수 없다. 마음 속의 불씨를 지피는 것은 자기몫이니까!" 자기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오직 자신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에게 던져진 실존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당신은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2. 니힐리즘 :: 추가 주제들 =====

 

1. 가치란 무엇이고, 가치전환이란 무엇인가? [힘에의 의지] 부제. 모든 가치들의 가치전환의 실험

#힘에의 의지macht.power(생명) / 가치wert.worth(철학) / 덕virtu.virtue(삶.윤리) / 취향(일상) / 스타일(예술) ...... 감각(신체) :

가치전환, 감각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들:: 코로나 이후의 new nomal (새로운 표준, 새로운 정상) / 대중음악의 변화 (트로트의 대유행) / 댄스스타일의 변화 (당시 대세 비의 '깡'-자아도취적 파워댄스와 지금 대세 지코의 '아무 노래'-무관심한 듯 무심댄스 / 1일 1깡 신드롬. 2017년 비의 '깡' 뮤직비디오에 대한 조롱. 당시 대세였던 파워풀댄스가 이제 철지난 유행이 되어버린, 댄스에 대한 감각의 변화) / 랩스타일의 변화 (2018년 쇼미7에서 나플라와 루피가 주도하는 붐뱁스타일(글루브한 리듬, 박자를 타는 방식, 자연스러운 자기표현)이 대세가 되면서, 이전의 비와이와 영비로 대표되는 트랩스타일(빠른 비트, 박자쪼개기, 속사포랩, 귀에 때려박는 가사딜리버리  같은 랩스킬)이 올드하게 느껴지는 것)

#worth - value / work - labor

- worth(정신적 가치. 비경제적 의미) 와 value(물질적 가치. 경제적 의미) 

- work(작업 ex.예술가들의 창작)와 labor(노동 ex.노동자들의 노동)

(p29_#18) 신을 포기한 사람은 도덕에 대한 믿음에 그만큼 강하게 집착한다.

(p30_#20) 사람은 초인적 권위(외부에서 목표를 제시하는)에 대한 믿음을 버렸으면서도 깊은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또다른 권위(어떤 말이든 할 수 있고 목표와 과업을 명령할 수 있는)를 추구하고 있다. 양심이라는 권위, 이성이라는 권위, 사회적 본능(*무리본능)이라는 권위, 내재적 정신과 목표를 가진 역사(*절대정신)라는 권위.

(p44_#44) '몰개성, 의지의 분해. 예를 들어 동정심에 관해 말을 많이 하는 이타적인 도덕이 건전한 유형으로 평가받는다. 

(p50_#51) 진리는 인간 유형을 향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p51_#52) 이타주의 권리와 운명의 평등은 쇠퇴한 자들과 불우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상일 뿐이다. 쓸모없고 비생산적이고 파괴적인 구성원들이 있는 사회에는 연대가 있을 수 없다.

(p51,52_#53) 우리의 사회학은 제로(0)들의 총합인 무리본능 외에 다른 본능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무리에서는 모든 제로가 '평등권'을 누리며, 제로가 되는 것이 도덕적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적용되고 있는 가치평가는 전쟁보다 평화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 같은 판다는 반생물학적이며, 그 자체로 생명이 쇠퇴한 결과이다. 생명은 전쟁의 결과이며, 사회 자체는 전쟁을 치르는 수단이다.

(p52,53_#54) 지금짜기 미덕, 무관심, 동정을 가르쳤고, 생명을 부정하라고 가르쳤다. 동정이야말로 모든 악덕보다 더 위험하다. 인류를 타락시키고 부패시키는 것을 신이라고 불러왔다. 미덕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오해이다.

(p56,57_#55) 도덕은 지배자들의 힘에의 의지를 증오하고 경멸하라고 가르쳤다. 이 같은 도덕을 폐지.부정.해체하는 것은, 철저한 증오의 대상이었던 힘에의 의지를 정반대의 감정과 가치기준으로 본다는 뜻이다. 삶 자체가 힘에의 의지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삶에는 힘의 크기를 제외하고는 가치있는 것이 전혀 없다. 

 

2. 내가 경험한 니힐리즘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느끼는 니힐리즘 감각과 니체가 경고하는 니힐리즘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p16_#1)

 

3. 페시미즘은 니힐리즘과 어떤 관계에 있나?

[(p22_#9) 페시미즘은 예비적 형식의 니힐리즘이다. (p39_#37) 페시미즘에서 니힐리즘이 나온다.]

 

4. 강함과 약함의 문제가 비롯된다!?

(p40_#37) 여기서 강함과 약함의 문제가 비롯된다. 1) 약한 자들은 이로 인해 사라진다. 2) 보다 강한 자들은 사말하지 않고 있는 것을 파괴한다. 3) 가장 강한 자들은 판결을 내리는 가치들을 넘어선다. 이것이 비극의 시대를 엮어낸다.

 

5. 쇠퇴(데카당스)에 대한 니체의 퍼스펙티브는 무엇인가? 

(p41_#40. 쇠퇴에 대한 니체의 퍼스펙티브) 쓰레기, 부패, 폐지는 생명의 성장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쇠퇴현상은 생명의 전진 못지 않게 필요하다. 누구도 쇠퇴를 없앨 수 없다. ...... 악, 질병, 매춘이 더이상 자라지 않는 환경은 생명에 대한 저주를 의미한다. 사회는 절정의 힘에 달할 때조차 폐물과 쓰레기를 배출해야 한다. 사회가 활기차게 대담하게 나아갈수록, 실패, 기형도 많아질 것이고 내리막길에도 더 가까워질 것이다.

(p42_#41. 쇠퇴에 대한 니체의 조치) 악, 사치, 범죄, 질병을 퇴치하려는 도덕적 노력은 천진난만하고 불필요하다. 참회를 통한 향상은 불가능하다. 쇠퇴 자체는 물리쳐야 할 것이 아니다. 쇠퇴는 절대로 필요하며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다. 맹렬히 맞서 싸워야 할 것은 유기체의 건강한 부분까지 전염시키는 현상이다. 쇠퇴가 유기체의 건강한 부분을 전염시키는 것을 막을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가?

 

6. (p47_#47) 차분함에 대한 퍼스펙티브 / (p49-48) 도취에 대한 퍼스펙티브

 

7. 힘=생명력의 상태(약함, 강함)는 사물을 어떻게 다르게 보는가(가치평가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p47,48_#48) 자신이 느끼고 표현하는 충만을 통해 본인도 모르게 사물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물들을 보다 풍성하고 강력하고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보는 사람들, 즉 무엇인가를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소진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는 모든 것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망쳐놓으며, 가치를 축소시키는 해로운 존재이다. ...... 생명력이 빈약한 사람들(약자들)은 생명을 약화시키고, 생명력이 풍부한 사람들(강자들)은 생명을 풍요롭게 한다. 약자들은 생명의 기생충이고, 강자들은 생명에 선물을 안긴다.

 

8. 생리적 '쇠퇴, 소진'과 철학적 '가치평가'는 어떤 관계에 있나? (*니체의 신체성)

(p41_#39) 쇠퇴와 가치평가의 관계: 쇠퇴가치평가의 형성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 가치평가에서 쇠퇴가 지배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인간이 그런식으로 근본적인 본능(*힘에의 의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 가치판단의 완전한 쇠퇴. 그것이야말로 동물적인 '인간'이 철학자에게 제게하는 수수께끼이자 의문부호이다.

(p46_#47) 나는 철학, 도덕, 종교의 최고가치들이 약한 자들이나 정신적으로 병든 자들, 신경쇠약에 걸린 자들의 가치들과 비교해보았다. 전자의 가치들도 후자의 사람들이 앓고 있는 병을 약한 형태로 앓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p51_#53) 쇠퇴의 생리학: 과학(학문)의 이상들까지 무의식적으로 쇠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우리의 사회학 전체가 그 증거이다.......  쇠퇴하고 있는 현대 유럽의 삶은 쇠퇴하는 본능들을 규범으로 하는 사회적 이상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 사회적 이상들은 늙고 병약한 종족들의 이상과 너무나 비슷하다.

(p52_#54) 소진의 생리학: 소진한 사람들의 판단이 가치의 세계에 어느 정도 침투했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최고의 가치들 전부가 소진한 자들의 판단에서 도출될 수 있다.

(p59_#55) 모든 계급에 걸쳐서 가장 건강하지 않은 부류의 인간들이 니힐리즘(*수동적 니힐리즘)이 성장하는 토양이다.

 

9. 고통받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힘에의 의지를 증오하게 되었나?

(p56_#55) 동료 인간들에게 폭력적으로 다뤄지거나 억압받는 사람들의 경우에, 도덕이 삶의 절망으로부터 구해주었다. 왜냐하면 존재 자체에 대해 쓰라린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자연과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무력감이기 때문이다. 도덕은 강력한 사람들과 폭력적인 사람들, 대체로 "주인들"을 보통 사람들의 적으로 다루었고 보통 사람을 대담하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도덕은 모든 지배자들의 근본적인 특징(힘에의 의지)을 증오하고 경멸하라고 가르쳤다.

 

10.  약자들은 어떻게 쇠퇴하는가? 체질적으로 실패하고 망가진 자들은 어떻게 사라질 것인가?

(p44_#45: 약한 자들) 약한 상태에서 하는 모든 것을 실패한다. 약한 상태에서는 반응하지 않는 힘(행동을 중단하는 힘)에 장애가 생긴다. 그래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아야 할 때, 맹목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ex. 화와 분노를 참지못하고, 화와 분노에 휩싸이는 경우) 반면 강한 천성의 소유자는 반응을 미루고 연기할 수 있으며, 무관심 같은 것을 특징적으로 보인다. 약한 천성의 소유자가 본능적으로 어떤 대항운동을 보이고 '행동'의 돌연성과 불가피성을 보이는 것과 비슷한다. 약한 천성의 소유자는 의지가 약하며, 따라서 어리석은 짓을 피하는 방법은 강력한 의지를 갖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모순이고 일종의 자기파괴이다. 보존본능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약자가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하므로 모순이고, 약자가 강한 의지를 가지는 것은 약자로서의 자기 파괴이고 약자적 보존본능의 훼손이다.)  약한 자는 스스로를 해친다. 그런 것이 쇠퇴의 유형이다. (*약자가 강한 의지를 가지거나, 약자가 행동의 돌연성을 보이거나, 모두 스스로의 힘을 약화시킨다.)

(p56,57_#55: 체질적으로 실패하고 망가진 자들) 삶 자체가 힘에의 의지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삶에는 힘의 크기를 제외하고는 가치있는 것이 전혀없다. 도덕이 체질적으로 실패하고 망가진 자들을 니힐리즘으로부터 보호했다. 도덕이 그들에게 무한한 가치를, 형이상학적 가치를 부여했다. ...... 이런 도덕에 대한 믿음이 파괴되었다면, 그들은 더이상 위안을 얻지 못할 것이고 그러다 결국 사라질 것이다. ...... 이 같은 사라짐은 자기소멸처럼 보이고, 본능적으로 파괴되는 쪽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강한 자들을 적으로 바꿔놓음으로써 자신들을 처형할 자들을 훈련시키는(=강자들이 자신의 교수형집행인이 되도록 강요하는p58) 결과를 낳는다.  (*그들은) 자기파괴 본능으로서 비실재에 대한 의지가 있다.

 

 

■3. 개념사용, 번역문제 등 =====

 

1. (p9) 중대한 일 앞에서는 침묵을 지키든가, 말을 하려면 아주 고상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고상하게'라는 표현은 '냉소적으로, 또는 편견이 없는 순수한 마음에서'라는 뜻이다.

(수정) 위대한 것에 관해서는 침묵하거나 위대하게(냉소적이게 또는 무구하게) 말해야 한다.

(원문) Große Dinge verlangen, daß man von ihnen schweigt oder groß redet: groß, das heißt zynisch und mit Unschuld. / Große Dinge(great things 위대한 것) verlangen(요구하다), daß man von ihnen schweigt(침묵하거나) oder groß redet(위대하게 말하다): groß(위대하다), das heißt zynisch(냉소적) und mit Unschuld(무구하게. Un-schuld 죄-없음).

2. (목차) 3권 1장 과학(학문, 인식)에 나타나는 권력의지 / (p17) 과학 = 학문(ex. 사회과학, 인문과학, 생활과학) / 자연과학 = 과학 / (p18) 정치와 경제학 = 정치경제학

3. (p24_#12) 생성은 어떠한 목표도 갖고 있는다는 통찰 ······> 생성은 어떠한 목표도 갖고 있지 않다는 통찰

4. (p31_#23) 붕괴. 이어서 생기를 돋우고 치유하고 차분하게 하고,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온갖 것이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 미학적으로 다양하게 위장하면서 전면으로 등장한다. ······> 붕괴, 이어서 되살리고 ~~ 

5. (p40_#37) 상반되는 것들이 자연적인 등급과 서열을 대체하고 있다. ······> 대립이 ~~~~ (*니체는 대립이 아니라 차이를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

6. (p40_#38) 쇠퇴의 한 표현으로서 니힐리즘 운동 ······> 쇠퇴=데카당스

7. (p44_#44) 기독교가 있으며다. 또다른 예로른 "진보"가 있다. ······> 기독교가 있으며, 또다른 예로는 "진보"가 있다. 

8. (p51_#53) 군집본능 = 무리본능 / '강자'(주권적 개인, 자기입법자)와 반대되는 유형으로서 '무리'(약자, 노예)

9. (p57,58_#55) 체질적 구성이 나쁜 자들과 실패한 자들 ······> (수정) 실패하고 망가진 자들, 찌질한 자들

얼뜨기들(청하)  / schlecht-weggekommen (원문. schlecht_질나쁜.열등한.저급한, weg-gekommen) /  the botched and bungled (엉망진창인 사람들. 루도비치) / the botched 잘못하거나 잘못 계획되어 실패한, 망가진 bungled 엉망, 실수 / the underprivileged (불우한 사람들. 카우프만)

10. (p60-_#56) 인간들을 체질할 어떤 가르침 ······> 가려낼 (*aussieben 체질하여 가려내다, 골라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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