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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 탈근대적 니힐리즘의 극복

 

니체 철학과 탈근대 철학

1) 차이에 대한 두 가지 접근 : 승인과 생산

- 탈근대 철학자들로 분류되는 이들은 대부분 근대 철학이 동일자나 보편자를 사유의 전제로 삼아 중시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차이 개념을 철학적 주제로 부각시킨다. 그러나 차이 개념에 대한 다양항 접근방식이 있는 만큼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모두 동일한 철학적 결론을 공유한다고 볼 수는 없다.

- 니힐리즘을 극복하려고 했던 니체의 문제의식에 입각해서 차이에 대한 다양한 사유들을 조망해 보자면 탈근대 철학자들의 사유는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차이를 ‘승인’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차이를 ‘생산’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다.

- 먼저 차이의 승인을 강조하는 이들은 다양한 차이들이 동일자의 이름으로 희생되어왔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차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은 동일자에 의해 소외된 타자들의 존재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차이를 무조건 승인해야 한다는 생각은 차이 자체가 고정되고 불변된 것이라는 견해를 전제로 한다. 이 경우 서로 다른 존재자들 간에는 아무런 관계맺음도 가능하지 않다. 즉 차이를 승인한 후에는 서로 무관심한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이질적인 타자들이 서로 소통하고자 할 때는 다시 서로가 공유하는 최소한의 동일성을 상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때 최소한의 동일성을 상정하는 것은 동일성의 철학이 반복해서 제기하는 문제지형 속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차이의 승인에서 차이의 회피로?

- 탈근대 철학자들이 모든 관점이나 판단의 기준이 상대적이라고 끊임없이 강조하는 데에는 차이가 동일성에 포섭되는 것에 대한 깊은 우려가 들어 있는 것이다. 모든 견해와 입장이 상대적이라는 주장은 차이를 철저히 긍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일성을 가정하지 않았을 뿐 결국 차이의 소거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차이를 동일성에 포섭시키는 철학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 존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에 의하면 다양한 가치들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포괄적인 해결책을 추구할 경우 새로운 가치들의 갈등과 전쟁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롤스는 인종이나 민족, 성 등의 문제가 서로 다른 정의의 원칙들을 요하며 하나의 포괄적인 원리를 마련할 수 없는 문제임을 인정하는 것, 즉 철저히 상대적인 문제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 그의 정치적 자유주의는 차이를 철저히 인정하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주장이 최종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차이의 문제들이 합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면 정치적 영역에서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해소할 수 없는 차이의 문제를 정치적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이기보다는 질서의 유지와 안정성의 확보를 위해서 중첩적 합의의 가능성이 큰 문제들만을 정치적으로 다루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안정성의 문제는 정치철학의 핵심”이므로 안정성을 해치는 차이의 문제들은 정치영역에서 ‘회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 미국의 탈근대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주체성을 구성하는 차이(경제적, 성적, 인종적)들은 각 개인의 사적인 차원의 문제들이기 때문에 공적인 정치적 영역에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 로티는 차이를 통해 자기를 창조하는 작업, 즉 새로운 주체화 활동을 아이러니스트의 활동이라고 부르면서 이 주체화 활동은 철저히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 그러나 로티가 주체성을 구성하는 차이의 예로 들고 있는 경제적 차이, 성적 차이, 인종적 차이는 결코 공적 차원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다른 이들과 차이나는 자기창조의 작업을 사적 영역에 국한하라는 견해는 차이에 대한 어떤 현실적 고려도 배제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3) 왜 모든 사람의 삶이 예술작품이 될 수 없는가

- 차이는 사적인 차원에서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견해는 암암리에 공적영역에서의 무관심과 무책임을 양산한다.

- 차이의 승인만을 강조하는 것은 이미 차이를 고정화해 서로 다른 존재자들 간에는 어떤 관여나 상호작용도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판단의 상대성을 강조하는 철학적 입장에는 차이를 실체화하는 태도가 전제되어 있다. 이미 앞 장에서 확인했듯이 일체의 실체화는 수동적인 니힐리즘으로 귀결된다. 실체화되는 대상이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라고 할지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 탈근대적 니힐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근대적 사유를 비판하는 새로운 논리가 필요하다. 이 논리는 차이의 철학의 또 다른 경향, 즉 차이를 생산의 문제로 보는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 들뢰즈는 차이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정식화하는 데 영원회귀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영원회귀 사상을 통해 차이의 생산 문제를 고찰한다.

 

2. 니체의 차이 개념에 대한 들뢰즈의 이해

1) 변증법 비판과 영원회귀

변증법 辨證法(변증법은 서양 문명에서 최초로 체계를 갖춰가면서 발달한 논리적 사고 중 하나다.)

1. 사물이 운동하는 과정에서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으로 인해 자신을 부정하게 되고, 다시 이 모순을 지양함으로써 다음 단계로 발전해 가는 논리적 사고법(思考法).

2. 문답(問答)을 통해 진리에 이르는 방법.

 

- 들뢰즈는 변증법이 차이를 동일자에 포섭하여 무력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논리라고 규정하면서 변증법 비판을 차이의 철학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다. 들뢰즈는 변증법의 주요 특징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 첫째, 변증법의 논리를 통해 무한한 차이들은 두 개의 대립으로 변질된다. 변증법은 대립을 찾아내는 것을 주된 임무로 삼는다. 그러나 변증법적 대립의 논리에는 단순화의 논리가 들어있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차이들은 고양을 위해 단 두 개의 차이인 대립으로 환원된다. .... 변증법의 대립은 단순화를 통해 만들어지는 “차이의 환영”에 불과하다.

- 둘째, 변증법의 논리는 원한의 노예적 논리이다. 니체에 따르면 운동에 대한 두 가지 발상이 가능하다. 고귀한 주인도덕의 발상과 비천한 노예도덕의 발상이다. “고귀한 도덕이 자기 자신을 의기양양하게 긍정하는 것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면, 노예의 도덕은 처음부터 ‘밖에 있는 것’, ‘다른 것’,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부정한다. ... 노예도덕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먼저 대립하는 어떤 세계와 외부 세계가 필요하다.”(도덕의 계보 14:367) 들뢰즈가 보기에 변증법적 운동은 대립하는 외부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니체가 말한 노예적 운동의 전형이다.

- 대립을 통해 차이나는 개별자들은 자신을 하나의 동일자 A’으로 재발견하게 된다. A는 대립을 통해 존재하는 A’을 운동의 과정에서 역투사한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A를 부정함으로써만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원한의 운동이다.

 - 변증법적 대립 개념에 대한 들뢰즈의 분석은 우리가 변증법적 사회 모델의 잘못된 전제와 그 전제를 고수하게 만드는 병리학적 정조를 포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전제는 차이는 악한 것이라는 것이며, 그 전제의 병리학적 정조는 차이에 대한 공포이다.

- 변증법은 다양한 대립을 이항대립으로 단순하게 환원할 뿐만 아니라 차이들이 나타나는 조건을 적대나 대립의 조건으로 일반화한다.

 - 들뢰즈는 ‘니체와 철학’에서 니체의 차이를 통해 비로소 새로운 차이 개념이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니체는 부정, 대립, 모순의 사변적 요소를 긍정의 대상이자 향유의 대상인 차이라는 실천적 요소로 대체한다. ......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의 기쁨’, 즉 차이의 향유, ...... 변증법주의자들이 말하는 부정의 노동을 공격적이며 경쾌한 새로운 개념적 요소로 대체한다.” ......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이러한 니체의 차이 개념을 “부정 없는 차이”라고 부르며, 이 개념들을 통해 대립을 전제하지 않고서도 차이를 사유할 수 있다고 본다. ...... “부정 없는 차이”는 한 사물이 미규정성 속에서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드러내는 차이로서, 대립에 대한 본질적 의존 없이 운동, 변화, 생성을 포착하려는 개념이다.

 

2) 이중긍정과 영원회귀

- 들뢰즈에 따르면 변증법은 모든 규정을 부정으로 간주하고 부정을 통해 운동과 변화를 파악하려 한다. 따라서 차이의 철학이 부정으로서의 규정을 철저히 거부하려면 긍정적 규정에 근거한 운동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들뢰즈는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에서 긍정에 근거한 운동의 양식을 발견한다. 영원회귀는 “이중의 긍정”(긍정의 긍정)으로서 차이를 생산하는 반복운동이다. 이는 변증법의 “이중부정”을 대체한다.

 - 영원회귀는 어떤 의미에서 차이의 긍정이자 이중긍정인가?

- 첫번째 긍정은 우연의 긍정이다. ...... 우리가 우연을 긍정할 때만 생성의 사건, 한 번의 운동이 발생한다. 차이의 반복 운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긍정의 되풀이되는 반복운동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 두 번째 긍정은 덮쳐오는 ‘필연’의 산같은 흙더미에 우연이 묻혀버리는 것을 구제하는 긍정이다. 들뢰즈는 바로 이러한 긍정을 ‘이중긍정’이라고 표현한다. ...... 이중긍정은 과거 속에 묻힌 우연을 다시 태어나게 함으로써 차이를 되돌아오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 긍정은 부정을 통한 긍정이나 부정을 위한 긍정이 아니라 언제나 긍정 그 자체로서 실행되는 것으로 딱 한 번 실행될 때조차 이중의 긍정이다.

 

 3) 차이의 반복과 영원회귀

영원회귀에 대한 들뢰즈의 또 다른 핵심적 규정은 “영원회귀 안의 반복은 질적이거나 외연적이지 않고 다만 강도적이다”이라는 점이다. 이 규정을 통해 그는 니체의 영원회귀가 동일자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의 반복이며 생산임을 밝히고 영원회귀 개념을 통해 차이의 존재론을 확립하고자 한다.

- 강도는 연장과 질을 생산하는 원천이며, 질적 차이에 대한 긍정 그 자체를 차이의 긍정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강도론의 요점이다.

- 강도는 외연량과 같이 분할가능한 것도 질처럼 분할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 강도는 질처럼 분할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중요한 특징으로 갖는다. 강도량은 분할된다. 그러나 “본성을 바꾸지 않고서는 분할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강도량은 분할불가능하지만, 이는 어떤 부분도 분할에 선재하지 않고 또 분할되면서 똑같은 보성을 유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 강도는 나눔의 운동은 가능하지만 언제나 본성의 변화를 동반한 채로만 가능함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다이너마이트 니체』 고병권 p.159

니체가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라는 말로 의미하고자 했던 바는 동일한 궤도의 순환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의 것 즉 ‘탈선’을 뜻한다. 세계는 파도치는 바다처럼 확정된 양으로 이루어졌다 해도 계속 다른 형상으로 밀려온다. ‘동일한 것’으로서의 세계는 어떤 누락도 없다는 의미에서 동일한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현재화된 정체성만이 아니라, 현재화되지 않은 모든 가능성들을 하나도 누락하지 않은 채로, ‘동일한 것’이 나에게 밀어닥치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 현재의 정체성이란 나에게 돌아온 무한한 가능성들 중 일부만이 특정한 방식으로 실현된 것뿐이다. 그러므로 니체가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에서 말한 ‘동일한 것’은 ‘가능성들 전체’라고 해야 한다.

 

- 차이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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