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건의 철학과 분열분석
소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콩트: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nouvelle은 단편(short story)이나 중편(novella), roman은 장편(novel).
1. 사건과 계열화
1)사건이란 무엇인가
-사물의 상태와의 대비
‘앨리스는 작다’, ‘앨리스는 크다’는 사물의 상태를 의미하는 반면 ‘앨리스가 버섯을 먹고 커졌다’는 사건이다.
-사실과의 구별
채플린이 들고 있는 붉은 깃발은 트럭과 접속되면 ‘주의!’, 시위대와 접속되면 공산주의를 의미한다. 즉 하나의 동일한 사실이 무엇과 이웃하며 어떤 관계를 이루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 ‘사건’이 된다.
-사고와의 구별
사고가 났을 때 경찰과 기자는 시체보다 그 이웃항이 관심사다. 사건은 사건화하는 선, 상이한 사물들을 연결하고 상이한 신체들을 연결하는 계열화의 선을 통해 정의된다.
2)점적 사유와 선적 사유
사물의 상태를 하나의 점으로 보자면 사건이란 두 점을 잇는 선으로 표시할 수 있다. 점에 의해 절단되는 선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뉜다. 하나는 점을 통과하는 요소들이 획일적으로 적용되고 선분성의 요구를 강제하는 선분, 하나는 개개의 분자적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유연한 선분. 그리고 기존의 선에서 고유한 기울기를 가지며 빠져나가는 탈주선이 있다. 이탈의 성분 클리나멘으로 정의되는 이 선은 관성, 타성, 중력에서 벗어나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을 창조하고 생성한다.
2. 소설과 사건
소설도 콩트도 ‘사건화’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설 속의 현재란 과거와 연속적인 것으로써 의미를 갖게 되고 현재의 사건이 사건으로 성립하는 것은 바로 그 과거
의 어떤 것에 잇닿아 있기 때문이다.
예) 라쇼몽_ 하나의 동일한 시체를 둘러싼 네 가지 상이한 시점(사건)이 나란히 공존, 사실과 사건은 다르며 사건화는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다.
-콩트는 현재진행형의 어떤 요소들이 장래의 사건에 결부, 그 방향으로 현재를 몰고 간다.
예) 암스테르담의 뱃사람_ 실시간으로 사건이 발생하고 결국 살인이 일어나는데 어떤 연유로 이 지경이 됐는지 설명
하지 않는다.
-후설의 시간성을 구성하는 지향성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은 어떤 궤적을 그리는 운동을 구성한다. 현재에 과거의 어떤
것을 ‘다시 당김’하거나 현재에 미래의 것을 ‘미리 당김’으로써.
예) 영화_ 정지된 이미지 24장이 1초 동안 재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반복할 때 그것은 활동하는 이미지로 인식된다.
3. 세 가지 삶, 세 가지 선
헨리 제임스의 [철장 안에서] 속 세 가지 상이한 삶의 방식을 통해 알아보는 세 가지 선.
-경직된 몰적 선분성의 선
소설 속 주인공 전신수는 명확한 선분적 선을 따라 산다. 정해진 계급과 위치에서 순서와 숫자로 이루어진 반복적인 일상, 약혼자 야채장수와의 결혼과 그 후의 삶 역시 예측 가능한 ‘미래’로 장래는 있지만 생성은 없다. 경직된 몰적 선분선의 선은 남들과 다름없는 평균적인 삶, 다양한 습속에 따른 경직된 삶, 자의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동일하게 반복하는 몰적인 삶을 통과하는 선이다.
*몰(mole)은 ‘분자적인 것’과 대비되는 것으로, 개별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통계적 평균에 의해 표시되는 것과 동일하게 움직인다고 가정되는 분자들의 거대한 집합체다.
-유연한 분자적 선분성의 선
몰 단위로 서술되는 운동 내에서 개개 분자들의 운동은 배제되고 포착되지 않고 지각 불가능하다. 그것은 몰 단위의 경직성을 벗어나 유연하게 움직이며 서로 인접한 분자들끼리 영향을 주고 받고(미시적 전염) 몰적 동질성을 벗어나 유연한 흐름을 형성한다. 분자적 선분은 양자적인 흐름을 갖는다. 그것은 몰적인 것을 교란하고 빠져나가는 탈영토화의 양자처럼 존재하거나 터널링하는 양자처럼 몰적인 성분의 영향을 받지만 그것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선분을 만들어내 어긋난다.
전신수의 고정된 일상에 부유한 부부의 암호화된 전보(기폭제)가 등장한다. 전신수는 그들의 비밀에 매혹되고(미시적 전염) 약혼자와 함께 하는 삶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삶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러나 유연한 분자적 선분성의 선이 경직된 선분성보다 더 좋은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전자는 후자보다 유연하지만 그만큼 불안정하고 위험하며 죽음의 선, 무력화의 선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몰적인 선분의 벽을 돌파하지 못할 경우 그것에 포섭되어버린다.
*양자이론에서 양자들은 입자이자 파동이다. 벽에 부딪히는 경우 일부는 튕겨나오고 일부는 그것을 통과한다(터널링).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양자의 특징 때문에 위치와 운동량 및 에너지와 시간은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될 수 없다.
-탈주선
주인공은 유연한 선분성 내지 흐름의 선 안에서,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일종의 양자의 최대치(스스로가 원해도 더 이상 멀리 나갈 수는 없는)에 이른다. 탈주선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지점이다. 기존의 몰적 선분을 흔드는 진동이나, 그 벽을 넘는 유연한 양자적 흐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선을 그리는 것, 기존의 선분적 삶에서 벗어나는 출구를 발견하는 것, 비록 다시 새로운 몰적 선분이 되고 말지라도 새로운 방향성을 갖는 선을 그리는 것이 그것이다.
전신수는 새로운 선을, 제 3의 선을 기다렸다.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경우에도 다른 선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일종의 탈주선을. 이 선은 모든 선분들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으며, 차라리 선분적인 두 계열의 폭발처럼 존재한다.
M님이 왜 8장 전반부를 발제하겠다고 했는지 비로소 납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