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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인문지능-철학] 철학 final 에세이

유경 2019.04.01 21:05 조회 수 : 124

질문: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삶이 좋은 삶인가?

 

쭈뼛거리며 수유너머 공간에 앉아있던 첫 시간. 왜 청인지에 와서 철학을 배우려고 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답은 금방 내 마음속에 떠올랐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왜 사나 싶어서요...” 하루하루 비슷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방향성을 찾아야 앞으로의 인생을 (좀 더) 잘 살지 않을까, 의미 있게 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철학 공부를 통해 탐색해보고 싶었다.

‘삶을 위한 철학 수업’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인 ‘자유’에 대해 이진경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그간 내가 갖고 있던 자유라는 개념이 틀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신선했다. 일하러 가기 싫을 때 혹은 내가 맡은 직무를 하고 싶지 않을 때 일터 대신 나를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이국적인 먼 곳으로 훌쩍 떠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일하러 가는 것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자유일 수 있다니. 또한 귀에 익어 여러 번 즐겨 듣는 음악 대신 생소해도 새로운 곡과 장르를 시도해보고 점차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 기회를 자신에게 주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강연을 듣고 책을 읽은 후 마침 중고로 구매한 128G의 MP3에 이전 주인이 넣어 놓은 다양한 노래들을 적어도 1분은 들어보고 넘기자는 약속을 스스로 만들고 지키기도 했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진정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냐는 ‘삶을 위한 철학 수업’ 열여섯번째 강의 질문에는 사실 아직 제대로 답할 자신이 없다. 매일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조는 아이들을 마주할 때, 나와는 성향이 다른 (때로는 내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학생들을 ‘이끌어야’ 할 때, 나의 부족함을 수업 도중 절절히 느껴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도 퇴근 후 더 나은 수업을 만들기 위해 수업 준비에 빠져들고 몰두하여 노력하기보다는 유투브 비디오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볼 때, 교사로 근무하는 것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이며 내가 정말로 잘할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네모 공간에 나 자신을 감금시켜가며 겨우겨우 합격하여 얻은 직장을 떠나 내가 교직보다 더 잘할 수 있고 더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진다.

청인지에 오기 전, 퇴근 후 꾸벅꾸벅 졸면서 들은 철학 강의에서 나에게 남은 한 마디는 바로 사르트르의 유명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지금 여기 살아 숨 쉬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나를 규정하고 있는 것들 (한국인, 여자, 고등학교 선생 etc.)보다 더 우선하는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를 규정하고 있는 것들을 언제든지 재정의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 강의를 들은 후 친한 친구가 자신의 처지에 대해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도 이러한 마음을 바탕으로 하여 ‘네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상황도 바꿀 수 있지 않겠냐, 결국 선택은 너의 몫이며 현실이 싫다면 적극적으로 박차고 나가라’는 충고를 종종 건넸다. 괴로움을 호소하지만 주어진 현실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사람들의 사정을 깊이 공감하진 못했다.

나이와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나의 이런 신념이 어쩌면 너무나 순진했거나 다수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무리한 것을 요구할 수도 있기에 틀렸을 수도 있다고 반성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맑스는 생활양식과 사회적 관계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주목했다. 여전히 나는 우리의 선택에 의해 인생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진 않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지 중 많은 것들이 우리가 속해있는 환경의 영향을 받았으며 결국 우리가 지금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어떻게 처리하냐와 주위의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된다는 것을 매일 느끼고 있다.

감옥에서 소련의 붕괴로 인한 세계관의 붕괴를 경험하셨던 이진경 선생님이 우리 세대에는 어쩌면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한 거대한 세계관의 충돌을 경험하실 수 있어서 오히려 부러웠다는 충한 튜터님의 말씀을 듣고 초기에 떠오른 생각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어쩌면 완벽과는 매우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과 수의 사람들이 평화와 안락함을 누리는 지금을 위하여 윗세대 사람들은 치열하게 살다 간 것 아닐까?’ (이게 헤겔의 목적론적 생각일까요?) (물론 나는 평탄한 인생을 산 축에 속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아직 남아있는 개선되어야 할 점을 아주 미약하나마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바꾸어 나가고 싶다. ‘정상’인 ‘나’와 ‘비정상’인 ‘그들’을 나누고 소통 없이 지내 오해와 증오를 만들어내거나 단순히 나와 다른 이들을 참아내는 ‘관용’의 정신을 가지기보다 이진경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함께 즐겁게 잘 살기 위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힘을 기르고 싶다. 그래서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민폐보다는 도움이 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지금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 내게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이것이 지금의 내가 느끼는 ‘나’의 삶의 방향과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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